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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설수설

[행설수설] 티벳 불교의 윤회

by 북드라망 2023. 1. 18.

티벳 불교의 윤회



반복되는 생과 욕망
환생은 불교에만 있어요. 환생의 원리는 굉장히 논리적이에요. ‘육신은 죽어서 지수화풍으로 흩어진다.’ 그러면 인간이 했던 정신활동은 물질로 다 환원 되는 게 아닌데 어떻게 될까요? 영혼이 뭐죠? 서양의 유일신 종교는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간다.’ 이렇게 일회성 윤회와 비슷해요. 그래서 연암은 기독교를 처음 만났을 때, ‘불교 윤회설의 끄트머리와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여러 번의 윤회가 아니에요. 천국에 가고 지옥가고 그러면 끝나죠. 그런데 조금 아쉽잖아요. 왜냐하면 천국은 커 보이지 않으니 밀도가 낮을 것 같고, 지옥은 너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독교는 연옥이라는 것을 창조해요. ‘연옥에서 대기 중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한 번의 생에서 판가름나요. 그런데 부처님의 생애는 천만 억겁 번을 반복했다고 표현돼 있어요. 겁이라는 것도, 겁나 길어요. 하하. 히말라야에 선녀가 일 년에 한 번씩 내려와서, 자신의 아주 부드러운 비단 드레스로 한번 쓰윽 스치고 올라가요. 그 다음, 또 일 년 뒤에 한 번 더 내려와서 반복해요. 그런 방식으로 히말라야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겁’이에요. 정말 생각하기도 싫죠. 근데 ‘겁’도 아니고 ‘억겁’이에요. 부처님은 천만 억겁의 생 동안 모든 걸 보시한 존재라고요. 그러니 깨달음에 이르지 않을 수가 없겠죠. 그것이 바로 인도의 윤회사상이거든요. 그러면 윤회는 무엇인가. ‘이 정신활동이 남아서 그게 새로운 육체를 만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정신활동은 주체 없이 탐(貪),진(瞋),치(癡)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어떤 육체를 만나면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거죠.



그런데 현대인은 자꾸 자기 전생을 주체 중심으로 찾아요. ‘내가 지난 생에 뭐였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지난 생에 무엇에 탐착했는가’가 중요해요. 그러면 윤회 자체가 사실은 죽음의 연속이잖아요? 그래서 괴로움인 거예요. 애착을 하고 또 하고, 지난 생에 만나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인간을 만나고 또 만나고. 못 헤어지고 있는 거죠. 지금의 불교 윤회설은 엄청나게 잘못됐어요. 윤회란 주체가 없는 욕망들의 끊임없는 변전(變轉)이에요. 내가 (바로) 그 욕망을 컨트롤 하는 존재잖아요. 컨트롤 되지 않는 건 기억이 안나요. 통찰은 나의 시공간을 면밀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능력이 커지면, 시공을 넘을 수 있는 거죠.


시공을 넘는 마음
깊은 명상에 들어가서 마음이 시공을 넘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은 지금의 달라이라마에게도 꽤 많은 일화가 있어요. 심지어 제가 읽었던 책에는 한국의 어떤 사람이 평생 병명도 모른 채 너무너무 아팠대요. 그런데 어느 날 꿈에 달라이라마가 나타나셔서 어루만져줬는데 그날 나았대요. 이게 말이 돼요? 그분은 달라이라마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달라이라마였던 거죠. 그런데 티벳 사람들한테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이 있었던 거예요. 달라이라마가 현존한 거죠. 물론 달라이라마가 직접 한 일은 아니에요. 자기는 기억하고 있지 않아요. 부처님이 달빛이라고 하면, 달은 늘~ 달로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천 개의 강에 비추면 그게 부처의 그림자인 거예요. 천개의 강에 다 빛이 나는 거죠. 강에 비친 그림자가 부처의 실체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이 또한 현존이죠.



‘달라이(Dalai)’ 라는 말은 몽골에서 온 거고 ‘라마(Lama)’는 산스크리트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티벳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뭐라고 할까요? 바로 ‘쿤둔(Kundun)’이예요. 그럼 쿤둔은 티벳어로 뭘까요? ‘현존성’이에요. ‘언제 어디서든 나와 함께하는 존재’, 그게 지혜의 영역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정치, 경제, 문화’는 우리의 의식에서, 주로 욕망의 흐름 속에 구성된 세계에요.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가 없죠. 앞선 예시들을 무속이다 뭐다 하는데, 우리는 그 밑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어요. 내 의식 너머의 세계로 계속 들어갈 수 있다면, 마음은 시공의 경계를 넘는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티벳 사람들이 그 엄청난 고난에도 달라이라마에 대한 진심을 놓지 않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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