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
우리가 화성에 가더라도 지구에서와 같은 감각기관을 사용하는 한, 늘 보고 느끼던 방식으로밖에 화성을 경험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처마 밑 거미줄 위의 거미가 빗방울을 맞을 때나 500년도 넘은 고목의 가장 높은 가지가 일출과 일몰을 맞이할 때처럼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2010)에 나오는 것처럼 곤충과 식물, 각각의 존재가 느끼는 저마다의 세계가 지금 이 순간에 함께 공존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세계는 단일한 방식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그래서 매 순간은 한없이 풍요롭다. 프루스트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 하나의 참된 여행, 회춘의 샘에서 목욕하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 다른 한 사람의 눈이 아닌 백 명이나 되는 남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그들 저마다가 보는 백 가지 세계. 그들 자신인 백 가지 세계를 보는 것이리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 오선민, 북드라망, 29쪽)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이나 계속되는 지루한 일상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질 때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나 또한 그랬다. 길지는 않지만, 정규직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을 때, ‘집-직장-집’의 단조로움이 지겨워질 무렵 여행을 떠났고 퇴사 후 퇴직금으로도 곧바로 제주도로 훌쩍 떠났던 내가 아니었던가. 아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인 사람들이 아주 답답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대신 유튜브에서의 여행 콘텐츠를 둘러보며 대신 힐링하고 있었을 터! 하지만 이제껏 많지는 않더라도 여기저기를 다녀보았지만, 여행이 곧 ‘일상’이 되지는 않았다.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그 ‘순간’만 즐겁다고 느꼈을 뿐, 돌아오면 지루한 생활을 견뎌야 했다. 사실 여행하고 나면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패턴이 늘 비슷했기 때문인데 '맛집-쇼핑-호텔'로 이어지는 코스가 어느새 반복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줄어드는 통장잔고! 나는 그 돈을 메꾸기 위해 또다시 일해야했다.
평범하고 반복된다고 느끼는 일상, 또 여행에 가더라도 더 이상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인용문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늘 보고 느끼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기 때문이 아닐까? 문제는 외부 대상이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고 세상을 해석하는 ‘내’가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매번 지루하다고 느끼는 일상도, 여행지가 시시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모두 동일한 패턴으로 인식하는 나의 인식체계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다른 눈”을 갖게 될 수 있을까? 프루스트가 말하는 것처럼 “다른 한 사람의 눈이 아닌 백 명이나 되는 남의 눈”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어떤 새로움을 찾아 여행지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문득, 몇년 전 『곰숙씨가 사랑한 고전들』의 고미숙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사람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고. 그래서 매번 새로운 것을 찾아다닌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강조하셨다. 매일 새로운 나, 곧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할 수 있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역시나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의 저자다운 답변이셨다!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문장이 콕 마음에 박혀 하루가 다르게 보일 때가 있었다. ‘나’에 집착하지 않고 남편을 또 아이를 이해해보려고 애써본 적도 있다. 물론 잠깐이지만 말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지금까지의 여행은 나를 채우는 과정이었던 듯하고(뭔가 FLEX 하는 느낌이 강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은 나를 비우는 훈련인 듯하다. 후자가 훨씬 가볍고 즐거웠다. 나를 덜어내는 공부는 여러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작동했고, 서로를 연결해주었다. 여전히 늘 ‘나’로 되돌아오지만, 이제는 나만의 감각기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또 “곤충과 식물, 각각의 존재”의 눈으로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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