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삶
동양고전 공부를 내 전공으로 삼겠다는 뜻을 가상하게 여긴 우응순(나의 고전공부 사부님) 샘과 문탁 샘이 매달 장학금을 챙겨 주셨다. 학교 다닐 때도 못 받아 본 장학금이었다. 검증할 성적도 공부의 결과도 따지지 않는 장학금이었다. 그 장학금은 때로는 생활비로 충당되었고, 또 어느 해는 중국으로 떠났던 수학여행 경비가 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그리스로 수학여행을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선뜻 마음을 내지 못했다. 어느 날 문탁 샘이 부르더니 그리스 가서 많이 보고 배우고 오라며 여행 경비를 챙겨 주셨다. 너무 뜻밖이라 어쩔 줄을 몰랐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난생처음 친구들과 보름 동안이나 그리스를 싸돌아다닐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오래오래 추억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알음알음으로 나의 살림살이를 보살피는 친구들 덕에 다달이 백만 원을 못 버는 빠듯한 벌이에도 ‘잘’먹고 ‘잘’살았다.
나의 도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2020년 나는 처음으로 매달 백만 원을 따박따박 벌게 되었다. 공동체 밥상의 매니저 활동으로 오십만 원, 인문약방 활동으로 오십만 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변수 때문에 외부 강의가 전무해진 상황이라 이 결과가 더 소중하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도전은 비단 ‘백만 원으로 소박하게 살기’나 ‘자본주의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실험’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습득하는 과정이었고 끊임없이 ‘나’라는 자의식이 ‘시련’을 겪는 시간이었다.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지만 견딜만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도전, 백만원 벌기> 118-119쪽, 나은영 지음
나은영 선생님의 공동체 활동 이야기를 읽다보니 20대를 빡세게 보낸 나의 연구실 생활이 떠오른다. 나 또한 감이당이라는 공부 공동체에서 생활했다. 감이당도 문탁넷과 비슷하게 배움을 중심으로 모여 “앎과 삶의 일치!”라는 구호 아래 자신의 삶을 바꾸자는 비전으로 활동한다. 첫 회사를 퇴사하고 워킹홀리데이를 대신 택한 곳이 바로 연구실이었다.(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기특하기는 하다?!) 그 당시 나의 상태는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이 흐르는 심약한 약해진 상태이며, 학자금 빚이 3000만원 정도 있었다.(그 안에 들어있는 가족에 대한 원망은 또 얼마나 컸는지!)
분명 공부를 하러 갔는데 돈을 다시 벌어서 빚을 먼저 갚아야한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140만원 정도 받는 한 대학의 연구보조 일이었는데, 매달 100만원씩 갚아나갔다. 연구실에서 언니들과 더부살이하고, 함께 밥을 먹고, 늘 도시락을 싸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일년에 한 번 이상은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연구실에 오시는 다른 지역에 계신 선생님들을 뵈러 가기도 하고, 루쉰을 배우고 중국으로, 나쓰메 소세키를 공부하고 일본으로, 또 미국에 있는 연구실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부해서 좋았던 것은 헛헛하지 않았다는 거다. 일상을 살아가며 드는 느닷없는 ‘불안’의 감정을 그때그때 글쓰기를 하며 해소했고, 함께 그 길을 가는 스승님들 그리고 친구들이 있었기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정말 ‘잘’먹고 ‘잘’살았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하며 공동으로 생활하는 일이 마냥 즐겁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하기 때문에 나의 소소한 행동조차 ‘사건화’되고 그렇기에 수시로 “나라는 자의식”이 올라온다. 더부살이 하는 언니들과 종종 부딪치는 것은 물론이요, 매 학기마다 해야하는 글쓰기는 또 왜 이렇게 안되는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나의 습관을 의심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은 더 나아진 내가 될 지 탐구하는 과정은 꽤나 재밌었다. ‘나’라고 생각하는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니 더 넓은 세계와 만나는 것 같았다. 그 즐거움으로 여전히 10년째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공동체에서 찐하게 공부하는 동안 감정이 남지 않게 이야기하는 법, 몸과 마음을 잘 보살피는 법, 돈을 잘 쓰는 법, 밥하는 법 등등을 배웠다.
지금은 경기도 한구석에서 치열하게(!) 육아하는 현장으로 생활공간이 변했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여전히 나는 남편과 회의를 하고,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일어나는 분노를 다스리는 중이다. 육아를 하면서부터 뭔가 혼자만의 방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주변에 사는 친구들과도 일상과 공부를 함께하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지속적으로 마음을 둔다면 언젠가 이런 나의 바람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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