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토己土: 자하-군자의 땅
자하가 공자에게 물었다. “‘어여쁘게 웃는 얼굴 보조개 귀여우며, 아름다운 눈 초롱초롱 반짝거리네. 흰 바탕에 채색 베푼 것이로다’라고 함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그러자 공자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무슨 선문답도 아니고 맥락 없이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은 대화다. 핵심은 보조개나 아름다운 눈, 화려한 채색도 기본적인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 바탕이 없는 화려함은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기초화장이 없으면 화장빨이 안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하가 “그럼 예禮는 뒤에 하는 것이로군요?”라고 하자 공자가 기뻐했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八佾 8)] 예라고 하는 것으로 드러난 것보다 예를 행하는 바탕이 되는 마음이 먼저라는 것. 자하는 공자 제자들 가운데 문학에 능한 인물이었다. 이때 문학이라고 하면 창작이 아니다. 옛 것을 알고 기억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문학의 핵심이다. 겉으로 드러내거나 하지 않고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창신의 길을 가는 것.
르네 마그리트, <백지수표>
이런 자하의 성품은 곧 기토다. 순박하고 부드러우면서 조용하고 자기주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넓은 평야와 같은 자애로움과 포용력을 가지고 남의 심정을 잘 헤아려 주고 신용과 효심 있는 중후한 인품. 대의와 중용을 지키며 성실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스타일.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고 사랑하는 끈기. 실제로 자하는 “도덕적으로 중대한 문제의 한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경미한 도덕문제에는 다소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子張 11)]”고 말한 바 있다. 土의 기운처럼 웬만한 실수도 다 받아줄 수 있다는 자하. 그러나 이런 성격 탓일까. 공자는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는 반면에 자하는 늘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평가한다. 한번은 자하가 노나라의 한 읍장이 되어서 정사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속히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지 말아야 하니, 속히 하려고 하면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子夏爲莒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子路 17)]” 자하의 병통이 늘 작은 것만 보는데 있음을 간파했기에 할 수 있었던 조언이다. 땅처럼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게 지나쳐서 도달해야할 곳까지는 가보지도 못하는 면이 많다는 지적.
기토에게 부족한 것도 바로 이거다. 흔들리지 않는 토대가 되어 그 위에서 모든 것들이 자라고 흘러가게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본바탕만 지키고 있다. 겉보기에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좀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매사에 의심이 많고 신경이 예민하고 까다로운 면이 있는 것도 기토의 모습이다. 땅처럼 고집불통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하가 공자 사후에 수많은 제자들을 기르는 비옥한 땅 역할을 하긴 했지만 공자는 자하의 이런 성향을 경계했다. 공자가 자하에게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雍也 13)]”고 조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저것 다 받아주고 넓게 공부하고 관계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묶어줄 수 있는 중심과 구심점 혹은 높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물을 길러내는 자애로움과 포용력 있는 삶이지만 그것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뛰어오를 수 있어야 하는 군자의 땅, 그 땅이 ‘비옥한 땅’이다.
_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자신의 중심점을 정하고, 그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지도를 가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명을 따라가되 매순간 다른 걸음을 연출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운명론은 비전탐구가 된다. 사주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한다. 그것은 정해져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어니라, 그 길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아는 만큼 걸을 수 있고, 걷는 만큼 즐길 수 있다. 고로, 앎이 곧 길이자 명이다!
—고미숙,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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