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土 - 미운 오리 새끼의 흙 떠나기
회사 사람들과 행주산성으로 거하게 술을 마시러 갔다. 오리구이와 산채 나물들이 푸짐하게 나온다. 으레 그렇듯이 주고받는 술잔에 얼굴이 금세 발개진다. 부장이 오리 요리론으로 장광설이 길다. 아마도 친척 중에 오리 요리집을 하는 사람이 있는 가 보다. 그러더니 누군가는 일요일 집 앞 내천 산책 중에 애들과 본 오리 이야기를 과장 섞어 가며 한다. 부장 말에 조응하는 허접한 꼴이라니. 그 옆에 있던 사람, 짐짓 전문가 연(連)하며 예전에 부친이 시골에서 오리를 키우던 이야기를 펼친다. 허참, 행주산성까지 와서 무슨 오리 얘기를 이리도 많이 한단 말인가. 이들과 같이 있으면 이 세상이 오리로 가득한 듯하다. 술 취한 친오리파 바보들이다. 술도 취하고, 나에겐 별다른 오리론도 없는지라 화도 치밀어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와 뒷마당에 가본다. 하늘에 달이 밝다. 달빛 사이로 조그만 내천이 흐르고 오리 몇 마리가 보인다. 꽥꽥, 꺽꺽, 욱욱 소리 질러 본다. 오리들이 뒤뚱거리며 저리 달려간다. 조금 후련해지는 것 같다. 조금 앞으로 발을 디디며 겁을 줘본다. 그 순간, 오리가 난다. 아, 오리가 난다. 달 위로 날아간다. 오리가 나는 걸 생전 처음 본 것 같다.(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애들과 많이 보았었다) 미운오리가 백조가 된 듯 했다. 스스로 풍족하다고 만족해하며 흙에 붙어 있는 자는 흙이 될 뿐이다. 흙이 덮어준 중력의 옷을 벗고 훨훨 날아 떠나려는 자야말로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흙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부장이며, 또 그 옆에 닥지닥지 붙어 있는 사람들처럼 될 수 없어! 나도 달려가면서 꽤-꽤깨깨깨깨거리며 날개짓을 하고 날아오르려 해본다. 나는 흙을 떠나는 오리다.
_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 9월은 기유월(己酉月)입니다. 9월에는 기토 특집이 준비되어있으니~ 전국에 계신 기토 여러분! 채널 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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