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土 - 지루한 오후, 우주선이 필요해
오후 2시, 이따금씩 소곤거리는 전화 소리만 들릴 뿐, 모든 것이 고요하다. 사람들도 오늘까지 해야 할 업무들에 말없이 열중할 뿐이다. 왼쪽 중간 벽에 얼룩을 뒤로하고 휑하니 걸려있는 시계는 아무도 보지 않는 초침을 톡톡 묵묵히 돌리고 있다. 계단 옆 엘리베이터도 위 아래로 두어번 움직이지만, 내리는 사람은 드물다. 청소 아줌마만 쓰레기통을 들고 이리 저리 휩쓸리고 있는 먼지들을 쓸어 담고 있다. 저기 구석에는 누가 흘려났는지, 물이 홍건이 젖어 있다. 30분 전부터 지난해 사업계획 자료만 여러 부 뽑아내고 있는 컬러프린터는 어제 들여온 예쁜 복사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걱걱, 똑같은 소리만 토해낸다. 누가 이 자료를 뽑아내고 있는지 둘러보아도 아무도 눈짓하지 않는다. 모두다 제각기다.
이 지루한 오후, 천정을 뚫고 내려오는 우주선 MOOL60을 맞이하러 엘리베이터 옆 비상구로 간다. 좀 늦었다. 어제 교신한 내용에 따르면 오늘 사무실을 내방하여 나의 지구 운영 방식에 대해 점검하고, 화성으로 그 결과를 송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높은 점수를 받아, 화성에 있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구 생활 40년. 화성인 수명이 평균 400년인걸 생각해볼 때 십분의 일의 생애를 지구에 바쳤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허둥지둥 영접장소로 갔더니, 아까 그 아줌마가 그곳에서 청소를 한다. 저리 비켜서라고 말해주고 주문을 외운다. 아줌마가 눈이 둥그레지면서 무슨 일이냐며 의아해한다. 올라울라쿨라킬라...올라울라쿨라킬라..천장이 뚫리고, 부서지면서 가느다란 빛이 길게 나오더니, 금새 부장실 금고만한 아담한 우주선이 내려온다. 어, 그런데..그 뒤에 전선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털이 덥수룩한 아저씨도 같이 내려온다. “아, 차장님! 물이 새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전선들 틈에 송곳이 끼어 있더군요. 이 놈이 녹슨 배수관을 건들었습니다. 이제 땜질해 놓았으니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일주일동안 고생시켰던 그 놈의 물이 잡히는 순간이다. 부장님 기뻐하십시오. 드디어 잡혔습니다. 이 지루한 기토의 오후, 우리는 우주선이 필요하다. 올라울라쿨라킬라.
_ 강민혁(감이당 대중지성)
우리는 어떤 우주와 만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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