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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평범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상(相)

by 북드라망 2022. 11. 29.

‘평범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상(相)

 

이렇게 즉비(卽非)는 이름이나 개념을 좇아가지 않는 순간을 말한다. 나도 감이당에서 인문학 공부를 통해 ‘즉비’의 순간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과거에 나는 ‘잉꼬부부로 토끼 같은 자식들을 가지면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것이고 이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상(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목표로한 가정의 형태가 완성되었을 때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행복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견해가 진정한 삶의 목표라고 생각했다가 이혼으로 잉꼬부부가 해체되자 무척 괴로웠다는 점이다. 그런데 인문학 공부를 통해 ‘행복하고 단란한 4인 가정’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우리의 뇌에 심어진 일종의 이미지임을 알게 되었다.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가정의 모습은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다’하는 것을 안 그 순간이 즉비(卽非)였다. 이렇게 내가 집착한 견해가 허상임을 알게 되자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괴로움이 조금 사라졌다. 부부는 따로 보면 한 사람의 여자이거나 남자이다. 또 한 사람의 여자가 자식이 있으면 어머니가 되고 자식이 없으면 독신이라 불린다. 이렇게 관계에 따라 생긴 개념과 이름은 명칭일 뿐 실체가 아니라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즉비’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말하자면 행복한 가정을 원하여 즐겁게 사는 것도 좋은 일이고 인연이 바뀌어서 다른 형태로 사는 삶 또한 충만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와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세상에 자꾸 얽매이고 고착한다. 특정한 상(相)에 얽매이고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을 깨주는 것이 즉비이다. (『대중지성, 금강경과 만나다』, 4장 머무는 바 없는 한없는 자비, 이여민 지음, 북드라망, 139-140)

 


보통 ‘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인자하신’ 아버지? 삶의 어려움을 겪을 때 조언해주시는 아버지? 하지만 나는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상’을 버린 지 오래였다. 나의 아버지는 다른 분들처럼 ‘평범’하지 않으셨다. 회사에 꾸준히 나가시지 않으셨고, 집에 머물러 있는 날이 많으시며, 어렴풋이 들려오는 각종 돈과 관련된 소식(문제)들. 고등학교 때 급식비가 밀리고 집에 쌀이 떨어질 정도로(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90년생이다^^;;) 우리 집의 쉽지 않은 재정 상태는 아버지를 원망하게 했다. 더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그 와중에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내가 인문학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도록 안 좋은 마음을 내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또한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아버지를 싫어했던 세월이 훨씬 더 많았기에!


그렇게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근근이 유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연락이 오면 받고, 아버지의 자립을 위해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이기 때문에, 좋은 마음을 내려 애써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 앞에서 쓰러지신 걸 이웃분이 발견하셨단다. 그 후,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셨는데 쓰러지신 지 2~3시간 정도 지난 것으로 보이며 생존 가능성은 20~30%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음 날, 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뵙지는 못하고 보호자에 내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돌아왔다.

 


며칠 뒤, 상황은 급반전! 아버지께서 회복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거동도 전부 가능하시고 곧 퇴원하신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소식이었다. 한편, 아버지가 병원에 계신 사이 아버지 댁에서 서류가 발견되었는데 많이 불어난 대부업체의 빚과 사채 관련 서류였다. 빚은 거의 1억 정도 ‘사채’라고 적힌 연락처가 10개가 넘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재정적으로 독립이 힘든 상태셨고, 그 빚과 사채가 나에게까지 넘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사고를 치신 아버지, 그리고 어떤 애정도 애증도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아버지와 관계를 더 이상 이어 나가기 힘들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뵈러 가기로 한 전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밥을 먹어도 괜한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다. 나만 너무 잘 먹고 잘사는 거 아니야?란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아버지께 이제 더 이상 연락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기 전에 겪는 이 마음의 불편함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본다. 불교에서 말하는 “애별리고”. 헤어짐이 갖는 원초적인 슬픔이었던 걸까? 그러다 문득, ‘그냥 다른 아버지와 딸의 관계처럼 지냈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계속 생각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야 문제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이런 ‘평범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라는 상(相)에 갇혀 있는 한, 나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인용문에서처럼 이 또한 “행복하고 단란한 4인 가정”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본주의를 벗어난 가족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홍보문구를 만들고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해왔음에도, 내 안에는 여전히 어떤 이미지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지성, 금강경과 만나다』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을 원하여 즐겁게 사는 것도 좋은 일이고 인연이 바뀌어서 다른 형태로 사는 삶 또한 충만한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중년인 남자로 바라보기로 연습해 본다. 실제로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연락을 받은 후, 그냥 아버지의 상황 자체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홀로 계시며 쓰러지신 상황이나, 주변에 당장 돌보아줄 자식이 없는. 어쨌든 관계는 늘 인연에 따라 변할 뿐이고,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붙잡고 있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개념, 이미지가 아닐까? “‘응무소주’應無所住, 상相에 집착하지 않아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무아無我의 지혜”(같은 책, 141쪽)를 터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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