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방약은 ‘연대’
3등_박현정
“행복해지는 약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인문약방』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약방문을 두드려보았다. 이 약 복용법은 책 속에 있는데 사람마다 복용법이 달라질 수 있다. 시중에서 파는 ‘한 알’ 만병통치약처럼 효과 빠른 약제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 느린 약방이다. 『인문약방』은 현직 약사가 들려주는 병과 삶, 앎에 관한 이야기책이다. 『인문약방』 제목처럼 사람(人)과 공부(文)에 관한 처방전이 많았다. 현대인의 병증 치료제로 ‘약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커져갔다. 나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서 걱정스럽게 듣는 말이 있다. 행복해 보이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상담을 권유받아 심리상담도 받았다. 그러나 그 때 뿐이었다.
연말 연초를 지나면서 머릿속을 채우는 단어가 있었다. ‘고단해, 고단해’ 이 고단함이 ‘번아웃’일까? 번아웃(burn out)의 사전적 의미는 에너지를 소진하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해서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나는 일에 치중한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 멘토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스펙보다 연대’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내가 일만 잘하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부정적으로 보는 거야. 짜증나!’ 멘토를 미워하는 내 감정은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트 탔다. 나는 감정 소모도 심하고 뒤끝도 있다. 공동체에서 일과 관련된 동료들의 평가를 들을 때면 과민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말에 수긍이 갔다. 그때부터 ‘나는 일만 보는구나,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않는구나,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행복하지 않구나, 어떻게 해야 하지?’ 그동안 나는 일만 돌보느라 공부, 친구, 공동체를 소외시킨 것이었다. 그런 삶이 도리어 나를 소외시키는 것인 줄 몰랐다.
‘통즉불통, 불통즉통’ 내 병증은 사람과 통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빚 청산, 자립이라는 생계를 위해 일에만 몰두해 왔다. 저자는 일보다 ’공통‘이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된다고 했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권위 있고 안정적인 약사라는 전문직을 떠나 문탁공동체에서 공부하면서 삶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나라면? 약사는 평생직업이다. 이 책에서는 삶을 길러서 좋은 삶으로 살아가는 양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읽고, 쓰고, 알고, 앓아가는 모든 과정이 삶을 기르는 약이 되는 약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문탁에서 ‘공유지가 뭘까? 공동체란 뭘까? 친구란 뭘까?’를 고민하며 공부해 나갔다. 도반들과 함께 하는 기획세미나, 양생프로젝트활동을 하며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그리고 더 큰 공동체’로 관점이 확장되어가면서 연대라는 우정을 나누며 개인을 넘어서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삶의 방식을 배우고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환대는 우정에 기댈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고, 친구에게 자리(역할)을 주는 것이며, 새로운 우정으로 확장하는 내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것이다. (김정선 지음,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북드라망, 163쪽)
저자는 공부하는 동안 마음은 충만해졌는데 먹고 살 길은 보이지 않아 다시 약사가 되었다. 그런데 공부하는 자신과 약사라는 권위를 가진 전문가로서 일을 하는 자신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괴리감을 <이반 일리치>는 산업화와 성장이 사람들의 자율성을 뺏고 무언가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생계를 위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스펙에 의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저자는 그 발걸음을 멈추고 ‘학學·업業·수修·행行’이라는 근사한(가까이에서 구해야 한다) 양생 실천활동을 했다. 점심 먹은 후 산책하는 ‘점심 산책’과 ‘멍 때리고 걷기’ 실천법에서 나는 공동체 친구들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점심 산책이나 걷기를 권유할 때면 ‘바쁜데 왜 자꾸 걷자는 거지? 시간만 낭비되는데’라며 공동체원들과 몸과 마음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외면했다. 나는 일과 능력에는 가까워지고 우정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과와 보상이 즉각 주어지는 일에 내가 홀려있는 동안 공동체 친구들은 ’멍때리고 걷기‘처럼 느린 속도에서 다른 차원의 사유를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홀로 걷는 걸음을 멈추고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 걷고 싶다. 내가 갖춘 스펙이 내 힘으로 갖춰진 것이 아님을 알겠다.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타자의 존재. 공동체 친구들이다. 나의 처방 약은 ‘스펙이 아니라 연대’.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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