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치유하는 시간
3등 - 강평옥
나는 하루 평균 스무 통이 넘는 업무 전화를 고객, 관계사, 내부 직원들과 한다. 사무실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출장, 휴가 중일 때도 예외가 없다. 전화를 끊고 나면 자료를 확인한 후 피드백하느라 운전 중 신호대기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정차한 뒤 업무를 보느라 마음이 급하고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일하다 생긴 머리, 목, 어깨 통증에 손쉽게 진통제를 찾는다. 중년이 되면서 일이 점점 힘에 부치고 회복 탄력성도 떨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비타민만 먹었는데 건강에 대한 불안감에 이제는 좋다는 영양제를 아침마다 한 주먹씩 털어먹고 있다. 『인문약방』의 저자 일리치 약국 김정선 약사는 산업화로 인한 습관이 병을 만들고 있으니 진통제, 영양제만 너무 믿지 말고 스스로 치유해보라고 말한다. 약국 명으로 가져온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는 모두가 산업화, 전문가로 인한 풍요를 이야기하던 1970년대에 성장을 멈추고 자율성을 확장할 것을 주장했다. 내가 풍요라고 믿고 붙잡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내 몸에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힘든 몸과 마음의 치유에 필요한 것은 풍요가 아니라 풍요와는 다른 결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통증, 몸의 위험 신호
몸의 이상 사태가 발생하면 우리 몸은 통증이라는 강하고 확실한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통증은 일상의 발목을 잡는 방해꾼으로 간주하고 발견 즉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내 몸의 위험 신호를 보내는 작은 불빛으로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이다. 김 약사는 일상을 양보하기 싫어서 작은 ‘아픔’도 수용하지 못하고 사소한 부작용을 무시하다가 중병을 얻거나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중독되는 위험을 말한다. 되돌아보니 머리, 목, 어깨 통증은 내 몸이 항상성을 찾아가며 내 뇌에 과로했으니 쉬라고 보낸 신호였다. 나는 약으로 몸의 위험이 아니라 위험 신호를 제거하고 문제의 원인이 된 과로하는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아프면 약부터 찾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많은 현대인은 몸이 항상성을 찾아갈 때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산업화, 병의 치료 방식 & 원인
컨베이어벨트처럼 빡빡하게 돌아가는 회사에서 아파서 갑자기 휴가를 쓰면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또 고객들을 기다리게 하는 불편을 주면 고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통증은 몸에 위험 신호를 보내지만, 일상에 돌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몸의 항상성은 뒷전이고 일단 효과 빠른 약을 찾게 된다. 효과 빠른 센 약은 몸 어느 곳인가에 부작용의 흔적과 씨앗을 심어 놓는다. 병의 치료 방식뿐만 아니라 병의 원인도 많은 부분 산업화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김 약사는 산업화 이전에는 절대적으로 못 먹어서 영양실조가 있기는 했어도 일상 먹거리가 독으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SNS에 올라오는 인기 식당의 메뉴들은 설탕, 간장, 기름 범벅에, 칼로리는 높고 영양소는 낮은 음식이 대부분이다. 또 산업화는 우리 스스로 음식을 준비하고 여유로운 식사를 하는 시간을 깎아 내리게 한다고 한다. 차린 음식보다는 외식과 배달 음식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사이 질 낮은 음식으로 몸에는 독이 쌓인다.
양생, 느린 속도와 쉼표
이 책에는 ‘느린 속도’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김 약사는 친구들과 일리치 약국을 열고 함께 양생을 공부하고 시간을 오래 들여 책 처방과 약 상담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산다고 한다. 나는 많이 벌려고 애쓰고 많이 쓰느라, 바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돈 버느라, 그걸 또 쓰느라 과로, 과식으로 병이 들고, 번 돈으로 약을 먹고, 복귀해서 다시 돈을 벌고 있다. 내 몸 차원에서 보자면 병 주고 약 주고 돈을 버는 ‘병-약-돈’의 삼각 트라이앵글을 만든 셈이다. 약의 오남용과 지나친 의존은 산업화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시쳇말로 메뚜기도 한철이니 젊을 때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나이는 벌써 중년이고 여전히 사회 초년생과 경쟁하듯 살고 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인문약방』을 읽고 일상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일을 얼마나, 어떻게 줄일지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식의 고민이야말로 또 하나의 ‘효과 빠른’ 알약 하나를 찾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반응하는 리듬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는 리듬을 가져보고 싶다. 내가 기다리고,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더라도 말이다. ‘더 열심히’가 아니라 ‘가는 방향’을 묻기 위해 일단은 일상의 속도를 늦춰보고 싶다. 내 몸이 나의 뇌에 보내는 다양한 신호를 느끼고 반응하며, 멀어졌던 내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길을 ‘천천히’ 만들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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