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리뷰대회 당선작

[한뼘리뷰대회 당선작] ‘앓다’에서 몸과 마음의 ‘만남’으로

by 북드라망 2022. 5. 26.

‘앓다’에서 몸과 마음의 ‘만남’으로

3등 - 탁금란

 


『아파서 살았다』는 ‘류머티즘과 함께한 40년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목만 보면 오창희 작가의 투병기로 착각할 만하다. 5부로 구성된 목차를 봐도 대학 2학년 스물한 살 봄에 류머티즘을 앓기 시작해서 명약을 찾아다니는 10년의 투병 생활, 인공관절 수술 후 병과의 동행을 인정한 10년의 삶, 그리고 자립을 위한 좌충우돌의 10년, 몸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10년을 보내고 있는 작가의 삶을 보여준다. 40년 동안 류머티즘과 고군분투한 저자의 삶이 무겁게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가의 삶에 동반 출연한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조카들, 외육촌 언니까지 확장되는 대가족의 서사가 있고, 작가를 건강한 삶의 주인으로 변하게 한 공부를 통해 만난 학인들과 스승, 책 속의 진리들이 있다. 이 책은 ‘산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안의 생명력을 북돋워가는 여정이라는 것. 그건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40년을 앓았던 류머티즘의 공이 크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깨달음의 여정’이다. 

 


대가족 서사시, 그리고 어머니의 신외무물(身外無物)
『아파서 살았다』는 오창희 작가의 대가족 서사시이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부모님과 형제들, 조카들, 그리고 보통은 누군지도 잘 모르고 지내는 외육촌까지 작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렇듯 잘 짜진 관계 그물은 안전망을 믿고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작가의 유머러스한 천성을 발휘하며 살게 하는 힘으로 짐작되었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이 책은 작가와 어머니의 ‘양생법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의 어머니는 참 단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병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전국으로 명약을 구하러 다니시며 지극정성을 다하고, 길어진 투병에도 먼저 흔들리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일상을 살아내시며 작가에게 삶의 지혜는 물론 죽음의 과정도 공유해주시고 가셨다. 그 어머니의 두 가지 양생법은 ‘신외무물(身外無物), 몸보다 소중한 건 없다’와 ‘어떤 상황에서도 어지간하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것’이었다. 작가는 어머니로부터 몸 관리하는 방법을 일상으로 듣고 살았다. 어머니의 부재에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라니 작가의 표현대로 어머니는 ‘살아 있는 텍스트’셨다. 

 

그에 반해 나는 몸이 귀하다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다. 몸 돌보기보다 내 앞에 닥친 일이 더 우선이어서 밤새우는 건 다반사요, 쉬는 날도 따로 운동하는 시간도 정해두지 않고 살았다. 기운이란 기운은 뭐든 끌어다 쓰기 바빴다. 늘 피곤한 상태였고 틈만 나면 누워있고 싶어졌다. 결국 통증의학과를 찾았고, 체외충격파 치료를 해야 했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야 했다. 임기응변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통증이 사라진 날의 숙면은 아침을 새롭게 했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아침부터 주방을 정리하고 밥상을 차리는 나를 보며 ‘몸에 따라 마음 씀이 이렇게 달라지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아프면 짜증스럽고 좀 살만하며 봄바람처럼 따뜻해지는 내 마음이 간사하게 여겨졌다. 통증은 내 마음의 지배자였으며, 그 어떤 것보다 강력했다. 몸의 한계에 갇혀서 그동안 입버릇처럼 말하던 정신의 지배력이 실종되었다. 이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 지점이지 싶었다. 어찌하면 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영향받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을 때, “신외무물(身外無物), 다른 어떤 것보다도 몸이 가장 귀하다.” 이 한마디가 나에게 호통을 쳤다. 

 


몸은 앓고 마음은 만났다.
책을 읽고 나서 가시처럼 콕 박힌 문장이 있었다. ‘몸은 앓고 마음은 만났다.’ 병에 걸려 고통을 겪는 ‘앓다’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생로병사의 굴레이자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몸이 앓게 되면서 마음도 함께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만났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느닷없이 시작된 ‘앓다’에서 ‘모른다’에 이르게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계속되는 몸의 변형과 수술, 여전한 통증, 몸은 변하고 있는데 처방은 변함이 없는 것에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몸을 탐구하게 되었다. 병을 보는 관점을 달리하고, 병과 거리를 두고, 공부의 재료로 삼았다. 


결국, 고통을 직면하는 그 순간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만남’의 순간이었다. 작가의 통증과 나의 통증은 결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 번이라도 내 통증을 직면하려고 애쓴 적이 있나 반문해보았다. 그동안 나는 몸을 혹사하면서도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대단한 견딤을 내세우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살았다. 『아파서 살았다』는 고통과 아픔을 만나라고 주문했다. 작가는 몸을 수행하는 도구로 삼아 탐구하면 병증을 일으키는 오래된 ‘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습’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침이 달라질 것이라고 오랜 경험의 충고를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