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서 : 이반 일리치 강의
3등_레토
일리치의 <학교없는 사회>를 몇 년 전에 세미나에서 읽었습니다. 저에게 일리치는 너무 당연해져 버려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학교는 가야한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권위적인 학교를 견디기 힘들어했던 저는 중학생 때 일찍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몇 년 동안 저와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이 좋은 점수를 받기위해, 좋은 학교를 가기위해, 좋은 인생을 살기위해 노력하는 동안 저는 아무것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신청하게 된 세미나에서 또래 청소년들과 (그 중에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다니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학교 없는 사회』를 만났습니다. 학교에 안간 지 오래되어서 내가 학교에 대해 나눌 말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 세미나는 제가 참여했던 세미나 중 가장 인상 깊은 세미나가 되었습니다. ‘가치가 제도화된 것’! 일리치의 말들은 제가 스스로 결여되었다고 생각하는 것(학교졸업장)이 정말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인상 깊게 읽었던 일리치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올해 일리치 세미나를 신청했고 사람들과 같이 『이반 일리치 강의』를 읽었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학교, 교육뿐 아니라 일리치가 다룬 다양한 주제들을 읽게 됐습니다. 교통, 의료, 그림자노동, 전문가 등등. 이 세미나의 시작 책으로 『이반 일리치 강의』를 읽었는데, 여기서부터 저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하’의 순간보다는 ‘정말 그런가?’라는 질문이 자꾸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통수단의 지나친 발전이 사람들의 자율을 해친다거나, 병원을 자주가고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거나. 정말 그런가?, 하며 좀 더 근거를 들어 주길 바라며 일리치의 다른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읽기 급급했으며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제가 일리치의 책을 이해하는데 경험치가 부족한 것도 같습니다. 같이 세미나를 하는 다른 사람들은 저와 조금 다른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이 자가용차를 가졌으며 직장인이며 4, 50대여서 병원에서 몇 군데 병을 진단받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20대이며, 집에 차를 사고 유지할 돈이 없어서 차가 없고, 어머님의 병원불신(?^^)으로 병원을 가는게 더 낯설게 느껴집니다. 혼자 책을 읽다가 세미나 가면 동학들의 자동차에 대한 경험, 주변 사람들이 겪은 병원에서 있었던 일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습니다. (짧은 거리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 차가 없어졌을 때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 어려워진 것. 부모님이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있었던 일.) 그렇게 들었음에도 제게 일리치는 이해보다는 질문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면서 읽기전이라면 눈치도 채지 못하고 지나갔을 일에 문득 질문을 다시 꺼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일리치가 제게 남긴 것이 있습니다. 동학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이따금 제가 가난하구나 느꼈습니다. 차를 너무 많이 이용한다며, 물건을 너무 많이 산다며 자책하는 사람의 옆에서 가난이라는, 익숙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일리치의 말에 따라, ‘필요’한 것들이 결여된 것을 가난으로 정의된다면 그 ‘필요’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차, 정신건강을 위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돈, 배우고 싶을 것을 배우기 위해선 필요한 학원비. 건강에 좋은 음식과 영양제. 저에게는 이런 것들이 없고, 부족했습니다. 가난을 제 발을 묶었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구매할 돈이 없으니까 그것을 할 수 없다고만 생각해왔습니다. 이 생각은 강력해서 다른 방식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일리치와의 만남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가난과 결여의 느낌을 새롭게 보게 도와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회가 되면 일리치를 읽을 것입니다. 일리치가 쓴 수많은 책들과 여러 이야기들이 모두 흥미로워 보이고, 제 생각들을 바꾸어 줄 것 같습니다. 동학이 이 책, 『이반 일리치 강의』가 일리치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짧은 책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면서 ‘정말 일리치의 말이 맞는지’, 그리고 제가 당연히 믿고 있었던 것들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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