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도서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2등_김병석
일 년 전, 작년 초여름 무렵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온몸에 원인불명의 두드러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살아오면서 피부 트러블로 고생했던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무더위 등 환절기 환경변화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피부 트러블은 심해져만 갔고 동네 피부과를 찾았지만 상태는 더 악화될 뿐이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동네병원 여러 곳을 전전한 후 대학병원까지 찾아가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피부병의 명확한 원인을 제시하는 곳은 없었고, 병원마다 진단명과 처방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는 동안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갔다.
김정선 작가의 <인문약방>을 읽으며 지난 1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삶은 물론,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 준 피부병의 기억이 떠올랐다. 김정선 작가는 ‘고통에는 언제나 의문부호가 붙는다.’고 말한다.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고통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이유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고통의 근원에 대해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나’ 그리고 ‘세상’과 만나게 된다. 이는 삶과 관련된 다양한 진실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현대 의료 시스템의 부작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고통에 대한 성찰 없이 통증의 단면만을 포착하여 객관화하고 이를 진통제와 마취로 제거한다는 방식은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고통을 양산해 내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는 물론 사회적, 문화적 원인도 철저하게 배제된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고통이 제기하고 있는 질문과 호소를 무시함으로서 우리는 통증의 근원적 해결은 물론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치도 끌어낼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고통이 내게 던진 질문을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면서 주위 전문가에게만 의지하려고 했던 내 지난 1년이 떠오르면서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현대는 ‘셀프-메디케이션’의 시대라고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진정한 의미에서 ‘셀프-메디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셀프’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그 실질은 유명 브랜드에 충성하거나 의료 전문가를 맹신하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남의 조언에 눈 감고, 귀 닫는 독불장군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저자의 ‘셀프-메디케이션’을 위한 제언에서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춤>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둘이 있어야 출 수 있는 춤이 있듯이 ‘셀프-메디케이션’ 시대는 혼자서는 절대 열어갈 수 없다.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 담기지 않는다. 때론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마치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고,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인간의 삶과 같다. 여기서 ‘셀프-메디케이션’의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각자는 하나의 고독한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고통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된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고통의 따뜻함과 가치에 대해 긍정하고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우리는 삶에 대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 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불분명한 현실의 경계를 향해 손을 뻗어 우리가 그토록 잡고자 했던 진실의 조각은 어쩌면 이것 아닐까? 우리 각각은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그러한 우리가 이루는 공동체도 완전하지 않지만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의 삶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더 나아진 삶”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 말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닐까? 비록 세상의 흐름을 쫓아가지는 못할 지라도 그 방향만 정확하다면 말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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