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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손자병법』- 체계적인 글쓰기와 비유

by 북드라망 202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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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10)
구체성에서 개념화로(1) - 체계적인 글쓰기와 비유 



『손자병법』의 글쓰기 방식

 

『손자병법』의 뛰어난 면을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글쓰기 방식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비유를 어떻게 썼는가하는 문제다. 

글쓰기 방식은 매요신을 설명하는 가운데 요체가 다 나왔다. 『손자』를 통독하고 나면 제일 먼저 받는 인상은 중국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글인데도 체제가 정연하다는 느낌이다. 시기로 보면 『손자』보다 『논어』가 늦는데 『논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맹자』처럼 조리 있는 글조차 책 전체를 통괄하는 일관된 흐름을 감지하기 힘들다. 『손자병법』은 잘 짜여진 장편소설처럼 뚜렷한 테마가 저류하면서 책에 조직력을 부여한다. 유기적인 글쓰기방식은 내용소개에서 윤곽을 드러냈으므로 여기서는 흩어진 조각을 모아 정리하는 선에서 그치도록 하겠다. 


13편은 각자 독립된 주제를 집중적으로 논하면서 앞편이 다음 편과 맞물려 이어지며 앞편의 논지를 바탕으로 다음 편이 확장된다. 첫편이 계(計), 다음이 작전(作戰), 셋째 편이 모공(謀攻)인데 계(計)는 대계(大計)라는 다른 편명에서 보듯 전쟁에 관련된 총괄 계획을 말한다. 여기에 전투의 구체적인 양상은 언급되지 않는다. 전체적인 기획이 성립한 다음 작전에 돌입하는데 이때 작전은 적의 심장부로 들어가기 전 야전(野戰)을 말한다. 야전에서 승리해야 적의 두뇌, 수도로 진격해 성(城)을 공격할 수 있다. 이때 계획이 모공(謀攻)에 해당한다. 각 단계를 설정하고 그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앞의 임무를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는 존재할 수 없으며 뒷 단계는 앞의 일과 연계되어 진행된다. 13편이 이렇게 논리적으로 연결되고 필연성을 띄었기 때문에 독자는 좀 더 어려운 임무와 상황에 대비해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구체적인 개별 전투와 실제 전쟁이 전부는 아니다. 군사운용에서 적과 지형에 적응하고 이용하며 역습하거나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 까다로운 문제는 형(形)·세(勢)·허실(虛實) 등에서 다뤄진다. 형(形)·세(勢)·허실(虛實)은 개념이지만 경험에서 추출된 개념이기 때문에 현실과 접점이 넓다. 응용력이 커서 이를 완벽하게 장악할 때 군사운용은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거침이 없다. 뒤이어 지리가 언급되는데 현실전투와 개념의 토대 위에 설명하기 때문에 군사지리의 설득력과 효용은 크다. 손자의 마지막 두 편은 화공(火攻)과 용간(用間)이다. 두 편은 독립된 글로 봐도 무방하지만 화공은 어떤 전투에도 쓸 수 있는 범용성(凡用性)이 강하기 때문에 승리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로 읽을 수 있어 병법에서 떼어 놓을 수는 없다. 용간의 경우, 크게는 계(計)와 관련되고 작게는 화공을 쓸 때 내부에서 교란 역할을 하기도 하며 통상적으로 정보수집 임무이기 때문에 병법의 각 부분과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다. 얼핏 유기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병법 전반에 실핏줄처럼 깔려 있다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강조하지만 이른 시기에 손자와 같은 조직적인 글쓰기가 나왔다는 사실은 후대에 발전된 글쓰기에서 보더라도 여전히 배울 가치가 있으며 놀라운 일이다.            

 


손자의 비유

 

손자의 비유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다. 손자의 비유는 특별하기 때문에 주목해야 한다. 문장을 읽으면서 살펴보자.

“승리하는 사람이 백성을 써서 전쟁을 하는 것은 천 길 되는 계곡에 모아 두었던 물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 이것이 형이다.”[勝者之戰民也, 若決積水於千仞之谿者, 形也./形篇]

통상적인 의미에서 비유는 주된 생각을 표현한 다음 생각에 윤기를 더해 이해하기 편하도록 보조하는 역할이다.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다. 이와 다르게 자신의 생각이 비유로 곧장 표현되는 경우는 시에서 볼 수 있다. 손자는 시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비유를 쓴다. 그는 보조관념으로 비유를 끌어오지 않는다. 위의 인용문은 계곡에 물을 모아두었다가 터뜨린다는 말이 핵심이다. 형(形)이라는 까다로운 개념을 설명하면서 비유로 전체를 마무리하는 대담함. 이 비유가 빼어난 까닭은 형과 세(勢)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형과 세를 하나로 설명하고 이어지는 세(勢)편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손자는 “결적수”(決積水)라고 했다. “모아둔 물”[積水]을 “터뜨린다”[決]고 했는데 “모아둔 물”[積水]이 형(形)이며 “터뜨린”[決] 경우 세(勢)가 된다. 평지에 모아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천길 낭떠러지에 모아 두어야 그 형이 두려움을 주며 세로 변했을 때 아무도 감당하지 못한다. 형이라 말하고서 세까지 포괄해 언급했으니 독자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형에 강조점을 둔다면 저장[積水]만을 말해야 옳다. 이런 지적은 반만 옳다. 형은 세를 위한 것이고 세는 형이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가 형세를 선명하게 이미지화하면서 형세라는 심오함까지 전달했다. 손자의 비유는 섬세하다.    


다른 경우를 보자. 

“거센 물이 빠르게 흘러 돌을 떠내려가도록 하는 것이 세다. 사나운 새가 먹이를 상처내고 낚아채는 것이 절도[節]다....세는 시위를 당긴 화상과 같고 절도는 방아쇠를 당긴 것과 같다.”[激水之疾, 至於漂石者, 勢也. 鷙鳥之疾, 至於毁折者, 節也.....勢如彉弩, 節如發機./勢篇]

활쏘기에 빗대 세를 설명한 구절이다. 앞에서 저장한 물을 터드린다고 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기세를 활쏘기로 강화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발사된 화살. 기세와 활을 역동성으로 서로 연결된다. 물의 기세가 활의 빠르기로 변하면서 글은 활력과 세기[强度]를 얻었다. 상승하는 비유.  


유명한 비유를 들어보자.

“빠르기는 바람과 같고, 느리기는 숲과 같으며, 침략은 불과 같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산과 같고, 알기 어렵기는 그늘과 같고, 움직임은 우레와 같다.”[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難知如陰, 動如雷震./軍爭篇] 


앞에서 전체 편(篇)을 소개할 때 얼굴을 비췄던 문장이다. 앞에서는 빠르기가 바람과 같다는 말에서 멈췄지만 문장은 비유로 계속 이어진다. 비유가 탁월해 널리 알려준 글귀 가운데 하나다. 군사행동은 속임수로 성립한다는 원관념을 부연한 글인데 비유가 강렬한 인상을 남겨 원관념을 잊을 정도로 시적이다. 일본 센고쿠시대(戰國時代)의 명장 다케다 신켄이 이 문장을 좋아해 풍·림·화·산(風林火山) 네 글자를 자신 휘하 군대의 깃발에 썼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인용한 문장은 비유 대상으로 쓴 자연물과 원관념 사이가 한몸처럼 얽혀 직관적으로 이해된다는 강점이 있다. 잘 쓴 비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바람이며 산이며 숲이며 그늘같은 사물의 속성과 특장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원관념에 밀착시켰다.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비유로만 된 글인데도 비유인지 알지 못할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볼 문장이다. 

“처음에는 처녀와 같이 적이 문을 열도록 하고 나중에는 달아나는 토끼와 같이 적이 막을 수 없게 한다.”[始如處女, 敵人開戶;後如脫兎, 敵不及拒./九地篇]

「구지편」의 결론 부분에서 가져온 말이다. 결론 부분은 운문으로 씌여졌다. 인용한 문장에서 호(戶)와 거(拒)는 운을 맞춘 것으로 어(魚)부에 속하는 운을 쓴 것이다.(리링李零, 『전쟁은 속임수다』, p.696. 김승호 옮김, 글항아리, 2006/2012) 인용문이 재미있는 까닭은 처녀가 어떻다는 건지 언급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토끼는 날렵하게 움직여 들이친다는 뉘앙스를 바로 느낄 수 있는데 처녀는 이와 반대로 조용하게 얌전히 움직인다는 이미지를 품고 있다. 처녀와 토끼라는 다른 비유를 군사동작에 적용했다. 기발하다.  


정리하자면, 손자의 비유 사용은 대부분 편의 마지막에 보인다. 시처럼 사용하는 구문 자체도 그러하고 비유하는 대상과 혼연일체가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수사법으로 치부할 수 없다. 효과나 설득을 위해 의식적으로 동원하는 장치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상을 설명할 때 비유를 동원하는 것을 보면 비유는 글쓰기의 핵심인 것 같다. 있으면 매끄럽지만 없어도 되는 보조도구가 아니다. 반드시 비유여야 글이 된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의식적으로 쓰지 않는 글쓰기의 힘 같다. 중국의, 나아가 동양의 고전 글쓰기에 비유가 본질적인 요소로 작동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전을 읽는 독자들이 비유의 근원적인 힘을 체득해 반복하기 때문이 아닐까.   
비유가 글쓰기의 본질임을 간파해 후대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장자다. 장자적 글쓰기는 비유의 글쓰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물일체라는 고도의 추상적인 사상을 호접몽을 통해 설명한다. 나비 비유는 그 자체로 주제가 된다. 나비를 빼면 글 전체가 무너진다. 비유 없는 장자의 글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장자의 비유는 글의 본질이다. 장자가 없었다면 후대의 문학은 얼마나 메말랐을까. 그 원조가 손자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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