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7)
『손자병법』의 구성과 내용④ 화공(火攻)~용간(用間)
12) 화공편(火攻篇): 화공은 문자 그대로 적을 불로 공격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기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화공은 수공(水攻)보다 효과적이라는 전제하에, 그리고 긴 역사를 가졌다는 전통(?) 강조를 잊지 않는다. 불은 가장 원시적인 무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첨단의 무기이기도 하다. 군대의 물리적 힘을 화력(火力)이라 하지 않는가. 효과도 클 뿐 아니라 바람과 결합했을 때 위력은 두려움을 일으키며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입힌다.
손자는 첫 문장에서 불 공격의 목표를 거론한다. “화공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을 불공격한다. 둘째, 식량을 불공격한다. 셋째, 보급품을 불공격한다. 넷째, 무기창고를 불공격한다. 다섯째, 땅굴을 불공격한다.”[凡火攻有五:一曰火人, 二曰火積, 三曰火輜, 四曰火庫, 五曰火隊.] 마지막 ‘화대’(火隊)를 두고 논란이 있다. 대(隊)가 무엇이냐가 문제인데 무리라는 뜻에 집중해 군대무리로 보기도 하고(이때는 화인[火人]과 겹친다), 물건의 집적으로 보기도 하는데(이때는 화치[火輜]나 화고[火庫]와 겹친다) 현대 연구가의 의견을 따라 대(隊)를 수(隧)로 보아 성(城)을 공격할 때 땅굴을 파고 침입하는 적으로 보았다.
화공은 당연히 날씨와 지형에 깊이 관계되므로 병음양(兵陰陽)과 붙어 다닌다. 비 오는 날 화공을 쓸 수 없으며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에 화공을 생각하기 어렵다. 또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공격하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격을 퍼붓기가 쉽고 효과적이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대한 연구도 빠질 수 없다. 병음양을 연구한 술수가(術數家, 자연과학과 미신의 결합. 당시의 미신을 오늘날의 소위 과학에 견주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의 견해와 역할이 중요하다. 예기치 않게 당대의 천문에 대한 견해가 보여 흥미롭다.
손자는 결론에서 말한다.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얻을 게 아니면 병사를 쓰지 않는다. 위태롭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이익에 부합하면 움직이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멈춘다.”[非利不動, 非得不用, 非危不戰....合於利而動, 不合於利而止.] 이 말은 화공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전쟁 일반에 대한 재천명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철저하게 국가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사고한다. 이어지는 마지막 글에서 임금이 분노한다고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국가대사라는 전제가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 용간편(用間篇): 용간의 ‘간’(間)은 간첩을 말한다. 첩자(諜者)라고 하면 우리말 ‘간첩’에 씌워진 섬뜩한 이미지가 덜어질까. 스파이(spy)라고 말을 바꾸면 사고가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에이전트(agent)라고 하면 터놓고 얘기할 수 있으려나. 함의는 다 같건만 드러나는 말에 따라 이미지는 천양지차다. 그러나 말이 무엇이건 상대가 존재하는 한 적국이건 동맹국이건 정보수집은 피할 수 없다. 스파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춘추시대라는 이른 시기에 첩자라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건 예사롭지 않다.
손자는 간첩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설파한다. “적과 서로 수년간 버티면서 하루의 승리를 얻으려 다투는데 벼슬과 백금을 아까워하며 적의 실정을 모르는 것은 어질지 못함의 최고이며 사람들의 장수가 아니며 임금을 돕는 게 아니며 승리하려는 임금이 아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임금과 현명한 장수가 움직이면 적을 이기고 공을 이루는 것이 남들보다 두드러진 까닭은 먼저 알기 때문이다.”[相守數年, 以爭一日之勝, 而愛爵祿百金, 不知敵之情者, 不仁之至也, 非人之將也, 非主之佐也, 非勝之主也. 故明君賢將, 所以動而勝人, 成功出於衆者, 先知也.] 손자는 “무릇 십만의 군사를 일으켜 천리의 출정길에 나서”라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막대한 전쟁비용과 백성들의 부담, 생계에 지장을 주는 등 전쟁경제학을 말한 뒤 이어지는 문장이다. 전쟁을 국가대사라고 거듭 강조했는데 그 말은 상당 부분 전쟁이 가져오는 국가의 경제적 부담을 가리킨다. 경제적인 측면을 보더라도 용간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라는 말이다. 국가 전체가 걸려 있기에 임금까지 거론했다. 현실성이 절실한 발언이다. 수년간 버틴다고 말했으니 이미 손자시대에 전쟁규모가 크게 팽창한 상태임을 알겠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증언이다. 손자의 통찰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먼저 아는 일은 귀신에게서도 얻을 수 없고 일에서 조짐을 파악할 수도 없고 도량형으로 증명하듯 얻을 수도 없다. 반드시 사람에게서 얻어야 적의 실정을 안다.”[先知者, 不可取於鬼神, 不可象於事, 不可驗於度, 必取於人, 知敵之情者也.]
손자의 이 말은 중요하다. 손자는 정보의 직접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귀신도, 점치는 역(易)도, 도량형의 정확성도 정보를 얻는 일과 아무 상관없다. 오직 사람에게서 얻어야 한다. 대단한 현실감각이다. 손자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가 이 문장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먼저 아는 일의 중요성은 알겠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어떠할까? 정보를 얻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으면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도 없을 터, 아니 중요성만큼이나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먼저 알기, 즉 정보의 속도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야 가능하다.
문장은 바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간첩을 쓰는 데엔 다섯 가지가 있다. 인간, 내간, 반간, 사간, 생간. 다섯 간첩을 함께 활용하되 그 방법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이를 신기(神紀)라 하니 임금의 보배다.”[故用間有五:有因間, 有內間, 有反間, 有死間, 有生間. 五間俱起, 莫知其道, 是謂神紀, 人君之寶也.] ‘인간’(因間)은 적국의 일반 백성을 간첩으로 매수해 쓰는 것. ‘내간’(內間)은 적국의 관리를 매수해 쓰는 것. 고위직일수록 더 좋다. ‘반간’(反間)은 이중스파이. 적의 간첩을 매수하는 것이다. ‘사간’(死間)은 우리 스파이가 거짓 정보를 적에게 주는 것을 말한다. 거짓이 드러나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死)라는 말을 썼다. 버리는 패라고 할 수 있다. ‘생간’(生間)은 임무를 완수하고 생환한 우리 스파이. 다섯 종류는 적과 아군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고 위아래의 정보를 모두 수집하며 거짓정보까지 활용한다는 점에서 입체적이다. 이 가운데 이중스파이가 가장 귀중하다는 점을 지적할 것도 없다. 아무도 모르니 신령스럽다고 했다. 보배라는 말은 상투어가 아니다. 뒤에 이런 말이 보인다. “성스럽고 지혜롭지 않으면 간첩을 쓸 수 없고 어질고 의롭지 않으면 간첩을 부릴 수 없으며 미묘하지 않으면 간첩의 진심을 알 수 없다. 미묘하고 미묘하다, 간첩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非聖智不能用間, 非仁義不能使間, 非微妙不能得間之實, 微哉微哉, 無所不用間也.] 왜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중스파이를 쓰고 다섯 간첩을 죄다 동원하는데 상대방이라고 가만있겠는가. 우리 스파이가 이중첩자가 아닌 줄 어이 알겠는가. 미묘할 수밖에. 인자한 마음으로 품어야 하지만 아닌 경우에는 의로운 태도를 보여야 하며 지혜로운 정도를 지나 성스러울 정도의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파이의 마음을 어이 읽겠는가. 손자는 환상을 품지 않는다. 인자함을 인간다운 윤리감각이니 하는 따위의 추상적인 생각으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간첩 일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먼저 들은 사람은 간첩과 말한 사람 모두 죽여야 한다.”[間事未發而先聞者, 間與所告者皆死.] 이 말은 냉혹한 표현이 아니다. 문장은 문자(聞者)를 먼저 쓰고 고자(告者)를 뒤에 써서 호문(互文) 형식인데 스파이로 발탁된 사람이며 이 사실을 말한 사람, 들은 사람 모두 처형해야 한다는 말이다. 손자에겐 현실을 모르는 인간들이 늘어놓는 꾸밈이 없다.
손자는 결론에서 역사의 선례를 가져와 논지를 보강한다. “옛날 은나라가 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지(伊摯)가 하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나라가 흥할 수 있었던 것은 여아(吕牙)가 은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임금과 현명한 장수가 최고의 지혜를 간첩으로 쓴다면 반드시 큰 공을 세운다.”[昔殷之興也, 伊摯在夏;周之興也, 吕牙在殷. 故惟明君賢將, 能以上智爲間者, 必成大功.] 이지는 실존인물 이윤(伊尹)을 말하고 여아는 여망(呂望)으로도 알려진 강태공(姜太公)을 말한다. 은나라의 유명한 재상과 주나라의 개국공신을 손자는 간첩이라 부른다. 최고의 지혜를 가진 사람[上智]으로 인용한 것이지만 간첩으로 파악한 것은 분명하다. 성인(聖人)과 짝할 수 있는 인물을 간첩이라니. 넓게 보면 손자는 간첩을 음모가(陰謀家), 그러니까 병가(兵家)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유가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놀라운 시각이다.
이윤과 여아를 간첩으로 판단하는 「용간편」을 읽으면 한비자의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는 길이 열린다. 이사가 한비자에게 자살을 권해 죽도록 하는 장면은 사마천의 「한비(韓非)열전」에 보인다. 이를 두고 지식인이 지식인을 탄압해 죽이는 시초로 보기도 하고 아까운 지식인이 사라지는 역사적 장면으로 보거나 하는 식으로 흔히 읽는다. 헌데 한비를 한(韓)나라의 간첩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훗날의 진시황에게 한비를 간첩으로 보내 음모를 도모한 것으로 보는 견해다. 진나라 측에서 이를 간파하고 음모를 분쇄했다는 독법인데 이런 해석은 손자의 용간(用間)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사기』를 읽어 보자. “이사와 요고가 한비를 해치려고 헐뜯으며 말했다. ‘한비는 한나라 공자 중 한 명입니다. 이제 왕께서 제후들을 통일하려 하시는데 한비는 끝까지 한나라를 위하지 진나라를 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본심입니다. 지금 왕께서 그를 쓰지 않으시고 오래 억류해 두었다가 돌려보내신다면 이는 그 자체로 후환을 남기는 일입니다. 법을 어긴 것으로 그를 죽이는 게 낫습니다.’ 진왕은 그렇다고 생각해 관리에게 한비를 넘겨 조를 다스리도록 했다.”[李斯姚賈害之, 毁之曰:“韓非, 韓之諸公子也. 今王欲幷諸侯, 非終爲韓不爲秦, 此人之情也. 今王不用, 久留而歸之, 此自遺患也. 不如以過法誅之.” 秦王以爲然, 下吏治非.] 사마천의 글에는 주어가 이사(李斯)와 요고(姚賈)로 되어 있는데 『전국책』(戰國策)에는 다른 버전으로 자세한 얘기가 실려 있다. 『전국책』에서는 한비가 요고를 출신이 비천해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는 말로 도발하며 요고를 교묘하게 모함하는데 요고가 이를 빼어난 말솜씨로 디펜스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말전쟁-구강액션이 벌어지는 진경이 펼쳐지는데 문제는 한비가 말더듬이라는 것. 한비는 도발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그만 사라지고 요고의 발언이 압도적이다. 『전국책』은 요고의 뛰어난 현실논리를 보여준다. 사마천은 윤곽만을 두루뭉술하게 보여 준다. 자신의 처지와 겹쳐진 한비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였을 것이다. 한비와 요고의 대결은 진나라와 한나라의 국력 차이와 두 나라 사이의 불균형이 신하 사이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권력을 배경으로 한 삶과 죽음의 은유로도 읽을 수 있다. 글전쟁이었다면 한비가 좀 더 발언권을 갖지 않았을까. 사마천의 글만으로는 간첩혐의에 대한 맥락이 선명하지 않다. 『손자병법』의 용간을 염두에 두고 『전국책』과 나란히 읽으면 한비를 간첩으로 몰아가는 그네들의 계략이 허튼짓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번거로워 보이지만 13편을 길게 정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편 하나하나를 개괄하면서 전체의 윤곽을 잡아주고 주요 개념을 드러내 다음 장에서 설명할 때 낯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손자의 글이 일관된 목적을 가지고 구성됐음을 보여주려고 해서다. 손자를 읽어 보면 소개한 것보다 훨씬 더 논리적임을 실감할 수 있다. 내 요약은 거친 윤곽만 그린 데 불과하다.
『손자병법』을 읽고 나면 여러 생각이 든다. 전쟁을 대한 손자의 의견은 현대에도 응용 가능할까? 혹은 얼마나 유효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현대전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대규모 병력이 이동해 일정 지역을 두고 화력을 집중해 보병 중심으로 벌이는 재래식 전쟁은 한국전쟁으로 끝났다. 첨단전쟁으로 변한 현대의 드론전쟁 시대에 손자의 쓰임새는? 모든 고전 읽기에 걸려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손자의 사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일어난 현대에 얼마나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손자의 사고는 얼마나 보편성을 가질까?
전통시대에 손자의 호소력은 상당했다. 손자가 구상한 병법은 춘추시대 전차 중심이고 해군은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병제(兵制)가 커지고 더 정비된 후대에도 문인들에게까지 영감을 주었다. 주석가들이 연이어 나왔던 이유이다.
글_최경열
'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자병법』- 체계적인 글쓰기와 비유 (0) | 2021.12.24 |
---|---|
『손자병법』(9) 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0) | 2021.12.10 |
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8) _ 『손자병법』의 주석가들 (0) | 2021.10.28 |
『손자병법』의 구성과 내용③ 구변(九變)~구지(九地) (0) | 2021.09.17 |
『손자병법』의 구성과 내용② 형(形)~군쟁(軍爭) (0) | 2021.09.10 |
[자기만의고전읽기] 『손자병법』(4) - 구성과 내용① 계편~모공편 (1) | 2021.09.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