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9) - 『손자병법』의 주석
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주석가들을 일별해 보았으니 실제 주석을 볼 차례다. 예문을 들어본다.
1. “삼군의 많은 군대가 반드시 적의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패하지 않는 것은 기정(奇正), 이것 때문이다.”[三軍之衆, 可使必受敵而無敗者, 奇正是也./勢篇]
○ 조조: 먼저 적에게 나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 정(正)이며 뒤에 나가는 것이 기(奇)다.
○ 이전: 앞에서 적을 감당하는 것이 정이고 옆으로 군사를 출동하는 것이 기다. 삼군을 거느렸으면서 기병(奇兵)이 없으면 적과 싸워 승리를 다툴 수 없다. 한나라 때 (오초칠국吳楚七國 의 난이 일어나) 오왕(吳王) 비(濞)가 군사를 이끌고 대량(大梁)으로 들어갔다. 오나라 장군 전백록(田伯祿)이 오왕을 설득하며 말했다. “군사를 집결해 서쪽으로 가면서 다른 기병의 방도[奇道]가 없으면 공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신이 바라건대 오만 명을 거느리고 따로 장강[江]과 회수[淮]를 따라 위로 올라가 회남(淮南)과 장사(長沙)를 점령하고 무관(武關)으로 들어가 대왕과 만나고자 합니다. 이 또한 한 가지 기(奇)입니다.” 오왕이 따르지 않았다. 마침내 주아부(周亞夫)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런 경우 정(正)만 있고 기(奇)는 없는 것이다.
○ 두목: 풀이가 다음 문장에 보인다.(두목은 손자의 다음 문장에 보이는 기정에 자신의 견해를 밝혔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 가림: 적과 싸울 때는 정공법의 진[正陣]을 쓰고 승리를 가질 때는 기병(奇兵)을 써서 전후좌우가 모두 호응할 수 있어야 언제나 싸워도 이기고 패배하지 않는다.
○ 매요신: 움직이는 것이 기고 고요한 것이 정이다.[動爲奇, 靜爲正.] 고요함으로 적을 기다리고 움직임으로 승리한다.
○ 왕석: 본문의 필(必)이라는 글자는 필(畢, 모두)자가 되어야 한다. 글자가 잘못됐다. 기정(奇正)은 순환하며 상생(相生)하기 때문에 우리 편이 모두 적의 공격을 받더라도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
○ 하씨: 군사의 모습은 수없이 변해[軍體萬變] 어지럽고 혼돈스럽지만 정(正)이 아닌 것이 없으며 기(奇)가 아닌 것이 없다. 군사를 의(義)로 일으킨 것은 정이며 적을 맞이해 변화에 맞게 움직이는 것은 기다. 나의 정(正)은 적이 보고 기로 여기도록 해야 하며 나의 기(奇)는 적이 보고 정으로 여기도록 해야 한다. 정이 기이기도 하며 기가 정이기도 하다. 무릇 용병을 하는 사람은 기정(奇正)을 모두 가져야 하며 기정이 없이 이겼다면 요행으로 이긴 것이며 함부로 싸운 것이다. 예컨대 한신(韓信)이 배수진을 치고 군사를 이끌고 산을 따라가 조(趙)나라의 깃발을 뽑아 나라를 격파했을 때, 배수진을 친 것은 정(正)이고 산을 따라간 것은 기(奇)다. 한신이 또 임진(臨晉)에 대규모 병력으로 진을 치고는 나무 항아리를 이용해 하양(夏陽)을 따라 안읍(安邑)을 습격해 위왕(魏王) 표(豹)를 생포했을 때, 임진에 진을 친 것은 정이고 하양을 따라간 것은 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적의 공격을 받고도 패하지 않는 것은 기정을 말한다. 『울료자』(尉繚子)에, “여기 막야(鏌鎁)검의 날카로움과 코뿔소의 견고함을 가지고 삼군의 무리가 기정(奇正)하는 법을 지녔다면 천하의 누구도 그 전투를 당해내지 못한다”라고 했다.
○ 장예: 삼군이 많은 군사 개개인 모두 적의 공격을 받았는데도 패배하지 않는 것은 기정을 잘 썼기 때문이다. 기정에 대한 설명은 여러 사람마다 다르다. 『울료자』에는, “정병은 앞을 귀하게 여기고 기병은 뒤를 귀하게 여긴다”[正兵貴先, 奇兵貴後]라 했고, 조공(曹公)은, “먼저 적에게 나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 정(正)이며 뒤에 나가는 것이 기(奇)다”라 했으며, 이위공(李衛公)은, “군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이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기다”[兵以前向爲正, 後却爲奇]라고 했다. 이런 의견은 모두 정을 정으로 보고 기를 기로 본 것이어서 기정이 서로 변하며 순환하는[相變循環] 뜻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당태종(唐太宗)만이 이런 말을 했다. “기(奇)를 정(正)으로 만들었는데 적이 이를 보고 정이라 여긴다면 우리는 기로 적을 치고, 정을 기로 만들었는데 적이 이를 보고 기라 여긴다면 우리는 정으로 적을 친다. 기와 정을 섞어 한 가지 법으로 만들어 적이 헤아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以奇爲正, 使敵視以爲正, 則吾以奇擊之;以正爲奇, 使敵視以爲奇, 則吾以正擊之. 混爲一法, 使敵莫測.] 이것이 가장 훌륭한 설명이다.
※ 기정이 중요한 개념이긴 하나 파악하기 쉽지 않아 주석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장예의 의견을 참고할 만하다.
2. “무릇 전쟁은 정공법으로 적과 싸우고 기발함으로 승리한다.”[凡戰者, 以正合, 以奇勝./勢篇]
○ 조조: 정(正)은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이고 기(奇)는 군사가 옆에서 적의 준비 안 된 곳을 치는 것이다.
○ 이전: 전쟁에 속임수가 없으면 적을 이기기 어렵다.
○ 두우: 정은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이고 기(奇)는 군사가 옆에서 적의 준비 안 된 곳을 치는 것이다. 정공법으로 적과 싸우고 기발한 변화로 승리를 얻는다.[以正道合戰, 以奇變取勝.]
○ 매요신: 정을 써서 적과 싸우고 기를 써서 적을 이긴다.
○ 하씨: 예를 들자. 전국시대 때 염파(廉頗)가 조(趙)나라 장군이 되었다. 진(秦)나라는 소문을 내 이간질을 했다. “진나라는 오직 조괄(趙括)이 두려울 뿐, 염파는 상대하기 쉬우니 곧 항복할 것이다.” 때마침 염파의 군대에는 병력손실이 많아 자주 패해 성벽을 굳건히 하고 싸우지 않았다. 또 진나라의 이간질하는 말을 듣고 조괄이 염파의 자리에 앉게 됐다. 조괄은 군대에 도착,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는 패배한 척 도망가다 두 기병(奇兵)을 펼쳐 조나라를 공략했다. 조나라 군사는 승리를 쫓아 추격해 진나라 성벽에 도달했으나 성벽이 견고하게 막아 진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진나라 기병(奇兵) 2만 5천이 조나라 군사의 뒤를 끊고 또 5천의 기마병이 조나라 성벽 사이를 끊어버리자 조나라 군사는 둘로 갈라져 식량길이 끊어졌고 조괄은 끝내 패배했다.
또 다른 예. 수(隋)나라 때 돌궐이 요새를 침범하자 양제(煬帝)는 당나라 고조[唐高祖]와 마읍(馬邑) 태수 왕인공(王仁恭)에게 명령을 내려 군사를 이끌고 국경을 지키게 했다. 때마침 오랑캐가 마읍을 침략해 인공(仁恭)은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 두려운 기색이 있었다. 고조(高祖)가 말했다. “지금 임금은 멀리 계시고 고립된 성에 지원은 끊겼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 않으면 온전히 살아남기 어려울 거요.” 이에 직접 정예 기마병 4천을 선발해 성 밖으로 나가 유격대로 활동하면서 형편에 따라 머물고 음식을 해 먹으면서 수초(水草)를 따라 쫓아다니며 돌궐과 똑같이 행동했다. 오랑캐의 척후 기병을 보면 날쌔게 달려가 사냥할 뿐 가벼이 여기는 것 같았다. 오랑캐와 마주치게 되면 적의 앞뒤로 진을 치고 활 잘 쏘는 군사로 별동대를 만들어 활을 당기고 대기하도록 했다. 오랑캐는 예측을 할 수 없어 감히 결전을 벌이지 못했다. 이 기회에 기병(奇兵)을 풀어 적을 치러 달려가 특륵(特勒, 고위관직)이 탔던 준마를 빼앗고 천여 머리를 베었다.
또 다른 예. 당 태종(太宗)은 정예병 천여 기(騎)를 선발해 기병(奇兵)으로 삼고 모두 검운 옷에 검은 갑옷을 입히고 좌우 두 부대로 나눠 큰 깃발을 세우고 기병대장 진숙보(秦叔寶), 정교금(程齩金)에게 각각 통솔하도록 했다. 적을 만날 때마다 태종은 몸소 검은 갑옷을 입고 선봉에서 통솔해 기회를 엿보고 전진해 적의 기세를 꺾을 때 항상 적은 수로 많은 적을 공격해 적의 무리가 겁을 먹었다.
또 다른 예. 오대(五代)시대 한(漢) 고조(高祖)가 진양(晉陽)에 있을 때 곽진(郭進)이 그에게 가서 의지하자 고조는 곽진의 재목을 훌륭하게 여겼다. 때마침 북쪽 오랑캐가 안양성(安陽城)을 도륙해 이에 곽진을 보내 공격해 함락시키자 오랑캐들이 도망가 곽진에게 방주자사(坊州刺史)를 맡겼다. 오랑캐 왕이 길에서 죽자 고조는 정형산으로 기병(奇兵)을 출동시켰고 곽진은 사잇길로 명북(洺北)에 먼저 진입해 하북(河北)을 평정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기(奇)를 써서 승리한 자취다.
○ 장예: 양군이 대치할 때 먼저 정병을 써서 적과 싸우고 천천히 기병(奇兵)을 출동해 옆을 때리기도 하고 뒤를 치기도 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백(鄭伯)이 연(燕)나라 군사를 막을 때 삼군은 앞에 배치하고 숨긴 군대는 그 뒤에 배치하는 것이 이런 방법이었다.
※하씨가 예를 많이 들어 설명해 이해하기 편하다.
까다로운 개념일 경우 주석가들은 다양한 설명으로 이해를 돕는데, 이에 비해 다음 구절은 간단한 구절인데도 주석가들이 다른 견해와 해석을 보인 경우다.
3. “자주 벌을 주는 것은 곤궁해서다.”[數罰者, 困也./行軍篇]
○ 이전: 곤궁하면 자주 벌을 주어 병사들을 힘쓰게 만든다.[勵士]
○ 두목: 사람은 힘이 곤궁하고 피폐하면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주 벌을 주어 두렵게 만든다.[懼之]
○ 매요신: 사람들이 피폐해 명령을 받지 않으면 자주 벌을 주어 위엄을 세워야 한다.[立威]
○ 왕석: 군사들이 피곤해 정신 차리고 삼가지 않으면 자주 벌을 주어 위협하는 것이다.[脅之]
○ 장예: 힘이 다해 병사를 쓰기 힘들기 때문에 자주 벌을 주어 군사를 두렵게 만든다.[畏衆]
(○ 두우: 자주 형벌을 내리는 것은 명령과 지침이 해이해지고 옮겨지지 않아서다. 이것이 피폐한 군대다.)
“먼저 난폭하게 굴고 나중에 군사를 두려워하는 것은 최악으로 정밀하지 못한 것이다.”[先暴而後畏其衆者, 不精之至也./行軍篇]
○ 조조: 먼저 적을 가볍게 보았다가 나중에 적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으로는 싫어한다.
○ 이전: 먼저 가볍게 보았다가 나중에는 두려워하니 이는 용맹해 보이지만 강하지 않은 자이니 매우 정밀하지 못한 것이다.
○ 두목: 적을 헤아리는 것이 아주 정밀하지 못하다.
○ 가림: 명령과 지침이 분명하지 않고 군사들도 정예병으로 훈련되지 않으면 이런 처지의 장군은 먼저 강한 폭력으로 군사를 처벌하는데 군사들이 엇나가면 두려워하니 가장 나약한 경우라 하겠다.
○ 매요신: 엄한 폭력을 먼저 쓰고서는 나중에 군사가 이탈할까 두려워하니 군사를 훈계하는 벌이 가장 정밀하지 못한 것이다.
○ 왕석: 적이 난폭한 행동을 먼저 하고서는 나중에 군사들이 이탈할까 두려워하니 장군된 자가 매우 정밀하지 못하다.
○ 하씨: 관대함과 사나움은 서로 보완해 주는 관계로 장군의 일 가운데 정밀하게 해야 한다.
○ 장예: 먼저 적을 가볍게 보았다가 나중에 두려워한다. 혹은 이렇게 말한다. 먼저 아랫사람을 매서운 폭력으로 통솔하다 나중에 군사가 자신을 배반할까 두려워한다. 이는 위엄을 사용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매우 정밀하지 못하다. 때문에 앞 문장에서 자주 상을 주고 자주 벌을 주는 것을 가지고 말했다.
(○ 두우: 병사들에게 갑작스럽게 폭력을 먼저 쓰고서는 나중에 자신을 배반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장군이 매우 정밀하지 못한 것이다.)
※ 인용한 두 구절은 연속되는 문장이다. 「행군편」에 속했으므로 적의 행동을 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는 법을 제시한 경우다. 앞의 문장은 적이 피폐한 증거로 벌주는 행위를 파악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그러한 벌의 효과가 무엇일까를 두고 주석가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시비의 문제가 아니기에 흥미로운 읽기가 가능하다.
두번째 구절은 폭력 사용의 대상을 누구로 볼 것인가가 해석을 갈라지게 한 경우다. 「행군편」은 전체적으로 적의 동정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적 내부 움직임을 읽는 것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왕석이 주어를 적(敵)이라고 명시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가림에서부터 초점이 정확해지고 이후 해석이 제대로 된다. 두 문장 모두 십일가주 원문에는 두우의 주가 실려 있지 않아 해당 부분을 보충했는데 (그래서 괄호를 쳤다) 두우의 주는 정확하다.
주석을 길게 인용했다. ‘기정’의 경우 개념과 실제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허실과 결합해 설명할 때 헷갈리기 쉽기 때문에 주석가들의 여러 의견을 다 제시했다. 토대가 마련될 경우 응용과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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