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12) _구체성에서 개념화로(3) _ 손자와 노자, 병가와 도가
항상성과 변화의 종합으로서의 『주역』, 『노자』, 『손자』
청나라 말의 유명한 학자 위원(魏源)은 「손자집주서」(孫子集注序)에서 말했다. “『주역』(周易)은 병법을 말한 글인가? (「문언전」文言傳에서 건괘乾卦의 상구효上九爻를 풀이하면서) ‘항(亢=끝極, 혹은 오만함)이란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보존하는 것만 알고 망하는 것은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움직이면 후회한다. 나는 이 말에서 병법의 실상을 본다. 『노자』(老子)는 병법을 말한 글인가?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견고한 것을 공격하는데 물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나는 이 말에서 병법의 모습을 본다. 『손자』는 병법을 말한 글인가? ‘백번 싸워 백번 이긴 것은 훌륭한 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일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병을 굴복시키는 것이 훌륭한 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일이다. 그러므로 용병을 잘 하는 사람은 지혜롭다는 명성이 없으며 용맹스런 공적이 없다.’ 나는 이 말에서 병법의 정수를 본다. 그러므로 경전에서의 『주역』, 제자백가에서의 『노자』, 병가에서의 『손자』에 대해 말한다면, 그들의 도는 모두 세상의 존재를 포괄하고 그들의 마음은 모두 우주를 비추며 그들의 기술은 하늘과 인간을 합치며 항상성과 변화를 종합한다.”[易, 其言兵之書乎? ‘亢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所以動而有悔也, 吾於斯見兵之情. 老子, 其言兵之書乎?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者莫之能先’, 吾於斯見兵之形. 孫武, 其言兵之書乎?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故善用兵者, 無智名, 無勇功’, 吾於斯見兵之精. 故夫經之易也, 子之老也, 兵家之孫也, 其道皆冒萬有, 其心皆照宇宙, 其術皆合天人綜常變者也.]
청나라 말, 위기가 닥쳐오면서 전통적인 글읽기에서 벗어나 부국강병을 목표로 간절하게 고전을 읽는 선비의 모습이 역력하다. 『주역』에서 병법이나 군사의 유래를 끌어와 오랜 역사를 말하는 방식은 익히 봤던 일. 그러나 『주역』 자체를 병법의 고갱이를 설명한 글로 읽는 식견은 전례가 없다. 『노자』에는 병법에 관한 많은 글이 실려 있다. 병법에서 직접 인용한 글도 보인다. 국가통치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전쟁을 사고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손자』는 두 말이 필요치 않다. 『손자』를 병법의 정수라고 한데서 위원의 목적의식이 뚜렷이 드러나지만(결국 그는 『손자』 주석서를 쓰지 못했다) 『주역』이라는 경전과 『노자』를 불러와 『손자』와 연결고리를 만든 발상이란.
노자와 손자의 관련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익숙한 생각이다. 『노자』에 대한 설익은 독법이 평화사상으로만 알려지면서 반전(反戰)사상을 주로 언급하지만 노자가 전쟁에 깊은 식견을 가졌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도덕경』 76장에, “군대가 강하면 승리하지 못한다”[兵强則不勝]라고 했다. 군대가 강하면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강병으로만 세상을 다스릴 수는 없다. 무력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부를 수 없는 법이다. 이 말은 손자가 싸우지 않고 굴복시킨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69장을 보자. “용병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인이 되지 않고 손님이 될 것이며 나는 한 치를 전진하지 않고 한 자를 물러설 것이다.’ 이를 진 없는 진(원문의 行은 진을 친다[行陣]는 말이다)을 펼치고 팔 없는 팔을 걷어붙이고 무기없는 무기를 잡는다고 한다. 이러면 무적이 될 것이다.”[用兵有言:“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왕필본. 백서본에는 “用兵有言:“吾不敢爲主而爲客, 吾不進寸而退尺. 是謂行无行, 攘无臂, 執无兵, 乃无敵矣”로 되어 있는데 밑줄 친 부분이 도치된 백서본이 의미상 더 낫기에 해석도 백서본을 따랐다.]
주인과 손님[主客]은 『손자병법』 「행군편」에서 이미 본 단어다. 주인이란 적지에서 싸울 때 나를 기준으로 적을 말한다. 나는 객이다. 거꾸로 적이 내게 쳐들어올 경우 내가 주인이고 적이 객이다. 손자의 언어를 써서 보자면 노자는 외부인이 침입하더라도 방어하는 자리 설 것이며 남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전쟁상황을 감안하면 적이 침략했을 때 내가 오히려 객이 된다는 말이니 수동적이다. 수동성이 적을 이긴다니 노자다운 발상이다. 노자다운 역설로 가득한 문장이지만 형(形)보다 세(勢)를, 즉 드러내기[形]보다 감추는[勢] 술법임을 감지한다면 손자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옛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노자병서』(老子兵書)라는 책이 있다. 당나라 때 위징(魏徵) 등이 편찬한 『수서』(隋書)에는 경적지(經籍志)라는 비중이 큰 도서목록이 실려 있다. 자부(子部=제자백가) 병가(兵家)는 총 133부 512권의 목록이 정리돼 있다. 병가쪽 책이 133종이라니 놀랍다. 여기에는 바둑[碁]에 대한 책도 기록하기는 했으나 위진남북조시대에 도가가 성행하면서 병가와 결합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위징은 “군사는 폭력을 금지하고 난리를 평정하는 방법이다”[兵者, 所以禁暴靜亂者也]라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 병가 가운데 한 책이 『노자병서』(老子兵書) 1권이다. 제목만 존재하는 이 책은 이른 시기에 손자와 노자의 공통점을 파악하고 둘을 결합시킨 증거로 볼 수 있다. 손자와 노자는 가깝다. 그것은 손자에서 노자로 이어지는 사상계보를 그릴 수 있는 토대를 상상하게 한다. 사상사를 새로 읽을 수 있는 매력적인 테마가 아닐 수 없다. 손자가 단순히 군사운용 방법을 서술한 책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손자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손자병법』의 의의를 적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손자가 뛰어난 까닭은 다른 차원의 사고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손자 이후 제자백가의 사상은 당위(當爲)의 언어로 묶을 수 있다면 손자는 현실의 언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유가와 비교할 때 차이는 선명하다. 전쟁을 정치의 한 부분으로 보고 국가대사(大事)로 인식한 점에서 이견은 보이지 않는다. 손자는 국가대사이므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다.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기·속임수[詐]도 불사하며 적을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익[利]으로 상대를 유인하는 것이다. 적지에서 싸우는 것을 선호하기에 우리 병사가 살아남기 위해선 약탈도 꺼리지 않는다. 실제 전투뿐 아니라 적을 알기 위해선 간첩을 써서 정보를 수집해야 하며 이때 어둠의 경로에서 패를 벌이는 희생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속이는 일은 적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기 위해선 우리 병사들을 속여 목숨 바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엔 병사들이 목숨 걸고 싸우도록 하기 위해선 병사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역설이 숨어 있다. 천지를 알아야 하지만 이 역시 승리를 위한 계책의 일환이지 하늘의 뜻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손자에게 도덕이나 윤리적 생활은 사고에 들어와 있지 않다. 유가가 보기에 속임수는 정직과 반대이며 어둠 속의 작업은 마음속에 티끌만한 사악함도 용서치 않는 태도와 상반되며 약탈 같은 행동은 유가에서 말하는 왕자(王者)의 군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을 속이는 일도 꺼리는 판인데 우리 병사를 속이는 행동은 유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천지는 인간 삶의 윤리적 근원이거늘 천지를 알아 전투에 이용한다는 저급한 사고는 유가에게 혐오를 불러올 뿐이다. 나열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손자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다. 철학은 유물론적이다. 적과 지리를 상수(常數)로 두기에 자기중심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실의 유동성은 사고의 유동성과 한 몸이다. 손자는 체계적으로 숙고한다. 전쟁을 시작하는 계획부터 승리를 위한 전술적 사고까지, 국가의 경제상태에 따라 병력을 조직하는 것에서 현장의 지형지물과 식량조달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고는 냉철한 현실파악과 상황인식에 뿌리를 둔다.
전국시대라고 하는 역사적 상황, 전쟁이 일상화된 시대였다는 현실 조건이 손자의 사고를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만들었다 해도 손자의 탈(脫)관념적 사고는 이채롭다. 이후 사상가들의 저작이 쏟아져 나와 백가쟁명하는 시대에 진입해도 손자의 사상은 독창성에서 우뚝하다. 손자의 진면목은 현실성에 있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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