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유럽은 꼭 원주민의 땅을 ‘소유’해야 했을까?『그들이 온 이후』를 읽고

* 새연재 <이우의 다락방>은 '고전비평공간 규문'(qmun.org)에서 활동하는 십대 청년 이우님이 '규문각'의 도서 중 100권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세상을 다 알아버린’ 15세(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반삼십’^^) 이우님의 은밀하고도 왁자지껄한 다락방을 기대해 주셔요!

*이우의 자기소개 // "안녕하세요. 저는 나이로는 중2가 되었지만 학교는 가지 않아 중학생이라고 하기 좀 뭐한 중학생 엄이우라고 합니다. 처음에 규문에 오게 된 계기는 청소년 수업이었습니다. 근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오다 보니까 나이 많은 친구들도 생기게 되었고, 책도 몇 권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몇권을 읽기 시작한 게 글쓰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쓰고 있더라고요! 사실 처음에 학교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간적인 결정이었지만 해보니  괜찮아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로 갈 생각이 전혀 없어졌고요!"

유럽은 꼭 원주민의 땅을 ‘소유’해야 했을까?
『그들이 온 이후』를 읽고


1. 그들이 온 이후,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이 온 이후』는 유럽이 일으킨 원주민 대학살을 기록한 책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콜럼버스가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에 상륙한 1492년부터다. 콜럼버스는 그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만들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원주민들은 생활권을 뺏겼고, 땅과 관련해서 유럽인과의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서양인의 ‘인디언 대학살’은 1600년대부터 약 400년 동안 계속해서 일어났다. 1600년대 초반에는 좀 잠잠했으나, 중반부터 다시 유럽의 학살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1637년을 시작으로 피쿼트 전쟁, 비버 전쟁, 필립왕 전쟁 등 여러 번에 걸쳐 계속해서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들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유럽이 갑자기 쳐들어 온 것이라고 해야 할 만큼 동등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일방적으로 유럽이 원주민들을 침략한 것이었다. 그 때는 사람의 수, 무기, 여러 물자들 외에도 그들이 원주민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었다. 유럽인들에게 총이나 폭탄이 있었다면, 원주민들에게는 창이나 활, 도끼 같은 것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수로 이루어져 있던 원주민 부족과는 달리, 침략자들은 상당수의 조직화된 군사들을 이끌고 원주민들을 침략했다. 그들은 노인, 여성,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아댔다. 그 와중에 살아남아서 도망쳤던 원주민들이 학살이 끝나고 인디언 거주지로 돌아왔을 때, 미국의 총을 맞아 죽은 원주민들의 시체는 기괴하게 얼어붙어 있었다고 한다. 유럽은 원주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상당한 넓이의 땅을 뺏었다. 한마디로 땅을 소유해서 그 땅에 있는 자원들을 가져가려는 그들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전쟁을 치르고도 남아있는 원주민들을 여러 번에 걸쳐 다시 학살했다. 그리고 결국 원주민은 원래의 10%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을 치르고, 승리한 쪽이 패한 쪽의 모든 것을 가져가고. 하지만 유럽이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에 있는 자원만을 원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면, 같이 공존하며 살거나 나눌 수는 없었을까? 게다가 애초에 원주민에게는 땅이 누군가의 소유라는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유럽인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을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으려고 했다.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까?

이 책을 쓴 저자는 워드 처칠이라는 토착민이다. 토착민이라고 해서 굉장히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닌 사람일 줄 알고 검색해 보았는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옷 스타일부터 헤어스타일까지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겉모습과 다르게 책을 쓰는 스타일은 감정도 딱히 들어가 있지 않고 기록처럼 덤덤하게 적어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문장 중간 중간에서 유럽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온 이후』의 부제목은 '인디언 절멸사'이다. 그런데 사실 이 부제목은 잘못됐다. 우리는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인디언’, 즉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인디언이라는 칭호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인도로 잘못 알고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칭해야 할까? 아메리칸 원주민이라고 칭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유럽 사람들이 남들이 잘 살고 있는 땅을 빼앗고 점거해서 형성된 국가인 것이다.


 2. 유럽인들의 폭력성

이 책의 제목대로라면 아메리칸 원주민은 절멸했다. 유럽인들에 의해서. 도대체 아메리칸 원주민과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알기로는 유럽은 그 당시에 아메리카 땅을 차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칸 원주민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읽기로는 아메리칸 원주민과 유럽 사이에는 꽤 많은 협상이 있었다. 주로 땅이나 돈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830년에 있었던 '뉴에코타 협약'이다. 이 협약은 매우 유명한 것이어서 책에서 보고 바로 ‘아, 들어본 이름이다’싶었다. 이 협약의 대략적인 내용은 원주민의 토지와 미시시피 강 쪽의 토지를 교환한다는 것이었다. 이 협약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나중에 ‘눈물의 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협약은 대다수의 아메리칸 원주민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유럽인들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졌다. 유럽인들은 체로키족들을 강제로 이동시켰고, 원주민들은 이 사건을 ‘우리가 울었던 길’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가기가 싫고 억울했으면 ‘울었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사실 그 상황에서 아메리칸 원주민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유럽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고 아메리칸 원주민이 미국이 제시한 것에 대해 반항을 했다가는 바로 죽였을 테니까. 나도 직접 겪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잘은 모르겠지만 힘들었으리라는 것은 알겠다. 분명 유럽인들은 아메리칸 원주민을 인질로 묶어두며 때리고 밀치고 온갖 학대를 다 했을 거다.

특히 화가 났던 것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원주민에게 전염병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사실이다. 유럽이 퍼뜨렸다는 것은 유럽인들은 이미 그 전염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또 피해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았다는 것인데 ‘일부러 고통을 느끼게 하려고’ 퍼뜨렸다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이 전염병은 천연두였는데 약 1520년부터 400여 년 동안 41차례나 퍼졌다고 한다. 천연두 외에도 홍역, 장티푸스, 콜레라, 성홍열, 늑막염 등 수십 가지 전염병이 더 전파되었다. 이런 전염병이 퍼진 결과, 아메리칸 원주민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내가 겪어 본 전염병은 아직 메르스나 코로나 19밖에 없다. 그리고 심지어 걸리지도 않았다. 지금은 과학이 많이 발전해서 전염병을 방지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지만, 원주민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 때는 그렇지 못했다.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전염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원주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슬픔? 안타까움? 아니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해 했을지도 모른다.


3. 땅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다

유럽인들은 꼭 사람을 죽여서 땅을 차지해야만 했을까? 음... 같이 공존하며 살 수는 없었을까? 아메리칸 원주민이 원래 그 곳에 살고 있는데, 유럽인들은 그 땅을 원한다. 그리고 아메리칸 원주민은 땅을 누구의 소유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메리칸 원주민도 같이 사는 데는 반대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 같이 공존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 유럽인들이 모든 것을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다니 좀 슬펐다. 소설처럼 내가 과거를 바꾸는 능력이 있다면 역사를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를 좀 더 평화롭게 바꿔 놓을 수 있을 텐데 싶었다.

사람이 이미 살고 있는 땅에 쳐들어와서 원래 살던 사람들을 해치고 땅을 차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는, 예를 들어 내가 집에 살고 있는데 강도가 쳐들어와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뺏고 집까지 뺏어서 그 강도가 차지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유럽인들은 ‘강도’였던 것이다. 이런 침략을 당하고 살해당하고 쫓긴 원주민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땅이 누구의 소유도 아닌 어머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에 쫓겨났으니 억울하면서도 슬픈 감정이 대부분을 차지했을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땅을 어머니라고 칭하리만치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니, 아마도 어머니를 뺏기는 것과 비슷한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써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들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시애틀 추장 외, 류시화 엮음.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더숲, 27쪽)

 

아메리칸 원주민에게는 애초에 땅이 누구의 소유라는 개념이 없었고,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을 사고 팔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대지는 자신의 일부분이었다. 아메리칸 원주민에게 깊은 의미인 대지를 두고 거래를 요청하다니. 처음에는 만약 땅이 원주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유럽인들이 알았더라면 땅을 강제로 뺏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목표에 있었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치워버렸다. 원주민은 유럽에게 그런 ‘치워버려야 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시애틀 추장한테 푹 빠져버렸다. 지금 현대 사람들은 대지를 콘크리트로 덮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환경에 맞지 않아서 자주 볼 수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동물들과 공존하며 살았었고 이것들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나의 상상을 넘어선다.


4. 유럽의 역사와 원주민의 역사는 같을까?

이 아메리칸 원주민과 유럽 사이의 역사는 이긴 자인 유럽의 관점에서 쓰여졌으니 분명 빠진 부분이 많을 것이다. 유럽이 강제로 행한 행동들 때문에 피해를 본 원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 말이다. 유럽이 ‘우리는 인디언을 위해 보호구역을 만들어주고, 생필품도 넉넉히 제공했다. 이제 그들은 안전한 보호구역에서 살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정당한 가격을 주고 산 땅에서 살 것이다’라고 역사에 기록해 놓았다면, 아메리칸 원주민은 ‘우리는 얼마 전 흰 얼굴 추장이라는 사람이 강제로 이동시키는 바람에 여러 부족들이 사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폭력으로 우리를 다루었고, 짐승을 보듯이 취급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신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우리들을 대하는 그들 나름의 표현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기록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메리칸 원주민도 거의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니, 유럽이 써 놓은 기록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유럽과 아메리칸 원주민 사이의 역사 어딘가에는 왜곡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유럽인의 시점에서 쓰여진 영화나 다큐를 보면 주인공인 백인은 용감하고 정의롭고 멋지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주인공인 백인을 괴롭히는 원주민은 거의 언제나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호전적으로 표현되는 것과도 같이. 예를 들어 내가 본 영화 <내 심장을 운디드니에 묻어다오>는 원주민 학살 사건인 ‘운디드니 학살’에 관한 내용이다. 백인의 오만함과 원주민의 슬픔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내가 아는 좋은 인디언은 모두 죽은 인디언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백인 지휘관이 원주민 추장(?)한테 한 말인데 ‘살아있는’ 원주민한테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 잔혹했다.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었느냐 또한 문제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이 얼마나 반성을 하느냐이다. 그 외에도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원주민과 토착민에게 한 일들은 어마어마했다. 아메리칸 원주민과 토착민들에게 현상금을 붙여 붙잡아다가 집단 학살을 저지른 것, 그들에 관한 악설을 여기저기에 왜곡되게 퍼뜨려서 ‘나쁜 사람들’로 취급되게 한 것, 사람이 아닌 양 마음대로 다루는 것 등등. 어쩌면 이런 행동들을 저지른 대가가 유럽이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로 인한 피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아메리칸 원주민과 전쟁을 했다는 것 치고는 원주민이 너무 맥없이 당했다. 아메리칸 원주민은 굉장히 전투적으로 자랐고, 많이 걸어서 체력도 무척 좋다고 알고 있는데... 아메리칸 원주민이 유럽인들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총기인 것 같다. 유럽은 원주민들을 공격할 때 총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원주민들은 도끼나 창, 화살 같은 무기들밖에 없었다. 이런 무기들로는 유럽에 맞서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부분에선 확실히 유럽이 발전이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인권 존중’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단 그들은 ‘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그 이후의 잔일들은 나중에, 언젠가는 해결하거나 그냥 알아서 해결되도록 놔두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그런 유형인 것 같다. 그 때문에 아무리 발전이 많이 되었고 뛰어나다고 해도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강하더라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말로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럽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강하다’는 전제 하에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고 전쟁을 벌였던 것일까?

 


이 책을 보며 ‘이 유럽이 내가 알던 그 유럽이 맞나?’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신사적이고, 무엇이든 잘 갖추어져 있고, 발전이 많이 되어 있는 곳. 내가 생각한 유럽은 이런 모습이었다. 왠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천국일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신사적이긴 무슨. 모두 무언가를 ‘소유’ 하고 싶다는 마음 앞에선 무릎을 꿇게 되는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갖기를 강하게 갈망하고 내가 이것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폭력적이게 되기 마련이다. 유럽이 땅을 두고 이런 심정이었던 걸까.

만약에 대학살이 없었더라면, 유럽과 아메리칸 원주민 사이의 관계가 좋아서 공존을 했다면 어땠을까? 서로 좋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데 유럽이 그런 마음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물론 만약에 유럽이 관계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아메리칸 원주민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두 쪽 모두 동의했다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뒤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다. 유럽인들과 원주민이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통합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만약에 그럴 수 있었다면 지금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글_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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