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이우의다락방]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에릭 호퍼의 삶

“나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로 나서야만 한다. 도시마다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도시마다 자기 도시가 최고라며 나에게 기회를 잡으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에릭 호퍼'는 사실 굉장히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는 평생 떠돌이 노동자로 살면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의 틀이나 철학자의 계보를 벗어나 오직 독서만으로 그만의 독특한 사상을 구축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철학이라는 생각보다는 인생 꿀팁을 알려주는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강의실이나 교과서에서는 평생 보지 못할 생생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길 위의 철학자>는 그가 자서전처럼 자신이 겪은 일들과 자신만의 철학을 적어놓은 책이다.

에릭 호퍼는 1902년에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사회 철학자이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후 더 이상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려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열정을 온 몸으로 느끼고 죽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는 아주 깊이 고뇌하여 머릿속에서 생각들을 짜내는 그런 류의 철학가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북적북적하게 끼어들어가 있을 때 생각이 잘 난다고 썼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매우 놀랐다. 나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생각이 번쩍 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혼자서 가만히 있다가 생각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방랑자’ 생활을 하며 도서관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한다. 도서관에서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돈이 안 드는 공부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에릭 호퍼가 돈이 없어서 길 위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돈이 없어서 길에서 떠돌아 다녔던 것은 맞지만, 돈이 생긴다면 당연히 정착해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에릭 호퍼가 살았던 시대는 금융 공황이 있었던 시대인데, 돈이 생겼음에도 정착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했다.

방랑자 생활을 했다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지하철역에서 자는 등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표현을 좋게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에릭 호퍼가 살던 곳은 왠지 귀티 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에릭 호퍼는 자신이 지내던 길에는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고 했는데 요즘 시대에는 오렌지가 싸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렌지를 연상하면 자연히 백화점 식품코너에 있는 과도 포장된 비싼 오렌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에릭 호퍼가 살던 곳은 깔끔하고 좋은 곳이라고 마음대로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렇게 써 보니 말도 안되는 거 같지만.)


에릭 호퍼의 질문 1 : 사람들은 왜 돈과 위력에 끌릴까?

에릭 호퍼는 특히 ‘돈의 가치’나 위력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돈이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 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170쪽)


이 말은 내 양심을 찔렀는데, 나도 문제가 생기면 다 돈 탓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이 생기면 “아, 이 돈만 있었더라면! 그러면 다 잘 할 수 있었단 말이야!” 라며 돈 탓을 한다. 물론 그 문제의 시작은 돈에 관한 것이었겠지만, 그것을 잘 조절하지 못한 것은 그들 자신의 탓이었다.

이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쌩초짜인 내가 보기에도 좀 그럴싸해 보이는 주제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문제 삼고 문제가 되는 주제이니까. 하지만 만약에 에릭 호퍼가 돈에 집착을 하고 소유욕을 느꼈더라면, 그는 이런 주제를 다루지도, 그만큼 멋진 말들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것을 가져야겠다.’라는 소유욕이 생기면 계속 커지기만 하고 결국엔 뿌리를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예전에 아빠 골프 클럽 친구 분들과 제주도 여행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거기서 가위 바위 보로 5만원을 걸고 내기를 했는데, 모두가 정말 열정적이었다. 5만원을 호텔 TV에 붙여 놓고 두 명씩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토너먼트로 올라가는 식이었다. 나는 그 때 4학년이었기 때문에 돈에 대해 아주 잘 알진 못했지만 저걸 가져야겠다는 생각만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저걸 갖지 못하면 무척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 5만원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저걸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쉬웠지만, 그 생각을 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마음을 통째로 비워야 가능한 것일 텐데, 나는 도무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릭 호퍼는 그런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만약 그에게 집착과 소유욕이 있었더라면 ‘길 위에서의’ 철학자의 삶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번 결심해서 길에서 살아보겠다고 나갔다가, 부드러운 시트가 깔려있는 폭신한 침대가 그리워져서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고, 다시 한 번 굳게 결심해서 나갔다가 이번엔 병이 생겼다는 핑계로 돌아오고, 또 ‘이번엔 진짜다!’ 하고 나갔다가 일주일을 못 견디고... 아마 이런 것이 반복되지 않았을까 싶다.

 

집을 떠나 황야로 들어간 이들이 누구이던가? 안락한 곳을 더나 일부러 고난을 찾아가는 인간은 드물다. 성공을 거둔 사람은 제자리에 안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거주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뿌리가 뽑히는 고난이다. 그렇다면 누가 황야와 미지의 것을 찾아 떠나겠는가? 파산한 이후에 결코 대단한 뭔가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과 능력은 있지만 너무 충동적이어서 일상의 고된 노동을 견디어 내지 못하는 사람들, 술이나 도박, 여자 등 주색잡기의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들, 법을 피해 다니는 도망자와 전과자 등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80쪽)

 


애초에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어느 말짱한 사람이 길거리에서 살면서 철학을 하려고나 할까? 그런데 에릭 호퍼는 왜 길로 나왔을까? 그만큼 그에게 길 위에서 산다는 것이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엄청난 무언가가 아닌 사소한 추억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혹시 그에게는 길 위가 더 편안(?)했던 것일까?

 


에릭 호퍼의 질문2 :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 문장은 내가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하는 일에는 항상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그저 쓸모없는 일로 취급될 뿐이다. 책을 읽건 공부를 하건 운동을 하건 간에 그 일을 하는 데에는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와 줄 ‘이 일을 하는 의미’가 필요하다. 하지만 에릭 호퍼는 우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일이란 것은 없다는 슬픈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우리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나의 꿈이 아닐까 싶다. 내 꿈은 의사인데, 나는 그 일이 거의 모든 사람한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에릭 호퍼의 말에 의하면 이 일은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 꿈은 그저 내가 겉치레를 위해 이루고 싶었던 꿈인 걸까?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의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의사라는 직업에 부여한 의미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이 일을 하면 나도 칭송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이 있었다. 그렇다면 의사가 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면 이제 나는 의사가 하기 싫어질까? 그렇지는 않았다. 살짝 부풀어 있던 자만심에 바람이 빠졌을 뿐, ‘의미’에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의사가 하고 싶다.

에릭 호퍼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은 없으니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기를 바라며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인가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로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할까?

에릭 호퍼는 나무는 위로 자라는데 왜 뿌리는 아래로 자라는지가 궁금해지자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책을 봤다고 한다. 요즘이야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지만, 그 때는 인터넷이 이렇게 활성화되지 않은 시대였으니 책을 보는 것이 아마 최선이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얼마 전 부터 에릭 호퍼와 좀 비슷하고 특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전자기기(자동차, 핸드폰, TV, 노트북 등등.)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알고 싶어진 것이다. 왠지 이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채 쓰기가 좀 꺼려질 때가 종종 생겼다. 답은 다 정해져 있긴 하지만, 책에서 찾아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105쪽)


에릭 호퍼는 유명한 사회철학자이다. 그렇다면 그는 철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근본적인 시작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철학이라고 하면 이생에 관해 고뇌하는 고독하고 살짝 4차원적인 사람을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에릭 호퍼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일상생활 속에 철학이 스며들어 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도 철학을 배우긴 배운 것 같다. 학교에서 도덕 같은 과목이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과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 철학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니, 도덕이 철학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은 어떤 길이 옳고 어떤 길이 옳지 않은지 답을 정해준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며 옳은 길로만 살아가기를 강조한다. 하지만 에릭 호퍼가 말한 철학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가 살아 온 인생을 옳고 틀리다로 정의하기엔 너무 복잡했다. 우리의 인생도 단순히 옳고 틀리다로 정의하며 살아가기엔 너무 복잡하다. 우리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길이 아니라, 그 길이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며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길을 만들기 위해 철학이 필요한 것 같다.

 


에릭 호퍼가 생각하는 철학은 주로 자신의 문제와 사회의 여러 문제, 또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서 결론을 내는 것 같다. 꼭 자신이 생각한 것에 대한 결론을 내는 것 같아서 뭔가 좀 사이다를 날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쓴 책으로 유명해져서 돈을 꽤 번 후에도 길 위에서 사는 ‘방랑자’ 생활을 그만두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길 위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싶었다. 원래 철학은 도서관 같은 곳에 책을 엄청 많이 쌓아놓고 앉아서 고뇌하는 것 아니었던가? 적어도 나는 철학이 그런 것이라고 여태껏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에릭 호퍼는 방랑자이자 철학자였다. 그것도 길 위에서 철학을 하는!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철학에 대한 생각이 좁은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길 위에서 방랑하며 하는 철학이란 것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나름 재미있어 보였다.

사실 에릭 호퍼가 살아왔던 곳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길 위’였지만, 한 편으로는 조금 부럽기도 했다. “따스한 햇살과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나무가 줄지어 있는 캘리포니아.” 그는 자신이 방랑하던 곳을 이렇게 표현했다. 솔직히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아직도 캘리포니아가 이런 모습이라면, 나도 한 번쯤은 캘리포니아 길바닥에 나앉아 살고 싶어졌다. 철학도 좀 해보면서~ ㅋㅋ

 

글_이우(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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