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공부하며 생각한 것들
-스티븐 호킹,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을 읽고-
과학은 뭘까?
나는 이 행성에서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았고, 물리학 법칙과 머릿속 생각을 이용하여 우주를 여행하며 살았다. 나는 은하에서 가장 먼 끝까지 가보았으며, 블록홀 안에도 들어가 보았고 시작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거슬러 가보기도 했다. 지구 위에서 나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 겪어보았고, 혼란과 평화, 성공과 괴로움을 모두 경험했다. (53쪽)
솔직히 내가 왜 과학책을 읽고 싶었는지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는 대답이 나온다. 내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인데,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과 수학을 잘해야만 한다는 말을 무척 많이 들었다. 그러니까 과학이나 수학을 잘해서 의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의사가 되고 싶기 때문에 과학과 수학을 잘해야만 되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두 과목 모두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좀 친해져 보기로 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 생전 읽어본 적이 없는 수학이나 의학, 과학 책들을 몇 권 빌려서 읽었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현대 과학과 의학의 문제점만 뽑아서 간추려 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규문에서라면 선생님이 뭔가 좀 다른 과학책을 추천해 주시지 않을까 해서 무작정 과학책을 읽겠다고 졸라서 읽게 된 책이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이었다.
이 책의 제목 위에는 지구와 인류에게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고 적혀 있었는데, 나는 딱히 희망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호킹이 말하는 ‘빅 퀘스천’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이 책의 소제목을 보고 너무 재밌어 보여서 쭉 읽어버린 것 같다.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우주론과 양자 중력의 연구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갔지만, 21살 때 계단에서 넘어져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그는, 그 후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연구를 계속 하였다. 병세가 악화되어 기관지 수술을 한 후에는 얼굴의 움직임을 아용해 만들어진 문장을 전달하는 음성 합성기를 사용하여 소통을 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왕립 학회에 들어갔는데, 휠체어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활동했다고 한다. 2018년에 그는 루게릭병 투병에 따른 노화로 별세하였다. 이 책은 스티븐 호킹의 마지막 책인데, 그만큼 호킹이 자신이 일생동안 공부한 것을 다른 책들보다 쉽게 간추려 놓은 것 같았다.
우주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우주의 모든 지점은 똑같아 보이지만, 우주는 확실히 시간에 따라서 변하고 있다. 이 사실은 20세기 초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그때까지 우주는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하여 불변이라고 생각되었다. 우주가 무한한 시간동안 존재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면 대단히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만일 별들이 무한한 시간동안 복사를 했다면, 우주가 별의 온도에 이를 때까지 별들이 우주를 계속 데웠어야 옳다. (...)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관측한 결과, 즉 밤하늘이 검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82쪽)
나는 우주가 영원하거나 영원하지 않은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가 영원하면 영원한 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우주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사진으로만 봐 왔던 우주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말이다.
호킹은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며 우주의 원리와 법칙을 발견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과학적 원리로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짜로 처음부터 무엇인가가 있을 수는 없고, 그 처음의 것이 생겨나려면 그것에 대한 기반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생겨나는가? 옛날 철학자들은 이 처음의 것에 ‘신’이라는 존재를 집어넣어 하나의 원리를 완성했지만 신을 데려다 놓는다고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단 어떠한 것이 생겨나야 하므로 무에서 생겨나야 하지만, 그것들은 원자들로 계속해서 순환하니 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신앙과 과학을 함께 둘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비록 신을 믿지는 않지만,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법칙들, 그러니까 과학 법칙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신의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은 과연 소용이 없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우주를 설명함에 확률을 가져오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너무 완벽한 법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킹은 이와 반대되는 말을 하는데, 아무리 낮은 확률이지만 다양한 가능성이 우연에 우연을 거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에 우주를 반대로 응축시킨다면, 결국에는 어느 하나의 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주는 창조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확률에서 시작된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창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창조된 것이 있어야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무언가가 창조되려면 하나의 확률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 하나가 창조되기까지의 과정이 하나의 확률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두 가지가 같이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은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까?
우리는 진화의 필연적인 결말이 지적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일까? 인간 중심 원리는 이런 유의 주장들을 경계하도록 경고해야 한다. 진화는 사실 무작위적으로 일어난 과정일 가능성이 훨씬 크며, 지능은 수많은 가능한 결과들 중 하나일 뿐이다. (126~127쪽)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당연히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인간만이 도덕적 행위의 주체인 양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다른 존재들도 발전할 수 있을까? 과학도, 그리고 다른 것들도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인간 위주로 생각하게 되면 다른 존재들과는 대립하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계속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다면 인간중심주의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
요즘 ufo와 외계인들에 사람들의 이목이 많이 집중되는 것 같다. 외계인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되는 것 또한 맞는 일이지만, 호킹은 외계인의 유무보다는 우리가 왜 외계인을 외계인이라 부르는지에 관해 집중한다. 외계인이라는 것 자체가 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외계에서 온 생명체까지 사람이라고 칭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생명체는 우리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인간과 아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전에 미국에서 바이킹 호로 외계에서 생명체 탐사 활동을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바이킹 호로 에너지의 반응을 보는 것이라면, 외계에 사는 생명체는 다른 식으로 에너지를 생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에 인간을 기준으로 생각을 해서 에너지 반응을 찾는다면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만약에 사람을 기준으로 보는 것으로 과학을 발전시키지 않고 여러 다방면의 시선으로 보았다면 지금 과학이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사람들 다니기 편하라고 시멘트로 땅을 모두 덮고 그 위에 건물들이 줄줄이 있는데, 이처럼 인간만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모두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곳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미래를 알고 싶어 할까?
사람들은 점차 자연의 행동에 일정한 규칙성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러한 규칙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인 것은 천체의 행동이었다. 따라서 천문학이 최초로 발달한 과학이 되었다. (134쪽)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절이 순환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언제 무엇을 심고 수확할지 정했고, 매일 날씨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 또한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와 가능성이 있다. 법칙을 만들어 예측하면 되지만, 그 계산을 계량화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숫자라도 틀리면 결과가 확 바뀌게 되는데 그 경우의 수들이 너무 많아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일까? 미래를 알게 된다는 것이 정말로 답일까? 미래를 알게 된다면 생활이 더 편리해질 수도 있지만 과연 우리의 마음은 더 편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정보를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째서 지금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한국은 이미 충분히 잘 사는 나라이다. 한국인들은 주로 이미 넘칠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고 사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자신의 부가 나가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기를 꺼려한다.
미래로 시간여행은 가능할지 몰라도 과연 과거로 시간 여행은 가능한 것일까? 우리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는 순간 그 과거는 뒤틀려 버린다. 그러면 그 과거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가 아닌 아예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과거를 하나의 과정이라고 치면 현재가 과정을 통해 나온 하나의 결과인데 그 과정이 바뀐다면 결과인 현재도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만약에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그 과거를 바꿀 수 없다고 해보자. 과거로 와서 개입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럼 하나의 세계에 사는 일종의 인형에 불과한 것일까?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보면 결국 우리는 책에 나오는 하나의 등장인물과도 같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그저 책 속에 있는 하나의 것에 불과하고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한 일주일 동안 침울해져 있었는데, 만약에 우리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존재는 아마 신이 조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 호킹의 말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미래에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미래에서 과거로 여행을 온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시간여행은 현대의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역사 개입으로 역사가 바뀐다면 앞에서 말한 미래를 알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미래도 알 수 없고, 시간여행이라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면, 결론은 한 가지뿐이다. 현재에 살아야지 굳이 과거와 미래를 드나들어서 뭐하겠는가.
과학 vs 환경, 무엇을 선택할까?
지구는 우리에게 너무 비좁아지고 있다. 물리적 자원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고갈되고 있다. 인간은 지구에게 기후 변화, 공해, 기온 상승, 북극 빙하 감소, 삼림 파괴와 동물 멸종이라는 재앙 같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270쪽)
과학은 위에서 호킹이 말한 모든 여러 신기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져오고 있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과학으로 인해 우리는 삶이 정말로 풍요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 때문에 지구가 파괴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과학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과학이 모든 것을 가져다주리라 믿었고, 문명의 발전을 위해 지구의 생태를 파괴했다. 파괴된 것 또한 과학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우주를 정복하고 지구 온난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벌어진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우리는 문제를 만들기만 하고 정작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좋건 싫건 지구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학과 환경이 대립되는 것 같지는 않다. 과학은 환경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환경도 과학 발전에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환경 문제들이 과도한 과학 연구 때문에 생겨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환경과 과학이 함께 공존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 같다.
예를 들어 보자면, 원자력 또한 큰 과학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환경을 무척이나 많이 파괴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들로는 보관할 수 있을 뿐, 처리가 어려워 각국에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원자력은 현재 상용화되어 있는 기술 중 가장 고효율의 에너지 발전 방식이라 환경에 많은 문제를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원자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원전수를 방류한다고 하고, 러시아에서는 잠수함으로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고 있는데 결국에 이 모든 것들은 해양 생물은 물론 인간에게도 영향이 돌아올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말하지만 어른들 본인의 행동 또한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싸우지 말고 해결책을 찾고,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고, 욕심부리지 말고 함께 나누라고. 그런데 왜 지금 어른들은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구가 이렇게 된 것이 어른들의 탓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을 똑같이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진정으로 자신들의 뒤를 이을 자손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지금처럼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무시하려고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 같은 모든 문제들은 결국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초래한 것이고, 우리는 아직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멸종된 동물들을 다시 되돌리지 못하고, 파괴된 오존층을 복구하지도 못하고, 사막이 되어버린 숲을 복구할 방법도 알지 못한다면, 파괴하는 것이라도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과연 우주를 정복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일까?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지구가 멸망할 것 같으면 우주를 정복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결국 우주 정복은 지구 멸망에 대한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호킹은 우리가 우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는 혹시 모를 일에 대한 대비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구가 멸망하면 우리는 새로운 살 곳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터전은 우주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이 정복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이러한 미지와 의문투성이의 존재, 그러니까 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 우주를 정복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공존의 자세로 볼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복을 한답시고 우리는 많은 것들을 훼손시켰고, 공존을 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많이 행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택할까, 공존 아니면 정복? 호킹은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하는 것에 따라 달렸다고 말한다. 진짜로 그런 것 같다. 지나가버린 일은 쉽게 놓지 못하지만, 결국엔 뒤돌아 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지금을 살 뿐이지?
글_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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