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이우의 다락방] 폴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다 같이 게을러지자!

폴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다 같이 게을러지자!


우리에게는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며, 무슨 사건에 참여할 때는 어느 정도 긴장감도 느껴야 한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깊숙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 집단의 일원으로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자신의 일을 몸소 창조적으로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외부에서 주어지는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우리의 모든 근육과 감각을 사용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라건대, 많은 사람이 동료들과 함께 정말 건전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기획하고 행동할 시간이 필요하다.
- 폴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15쪽


‘열심히’와 ‘게으르게’의 차이

왜 우리는 열심히 살려고 할까? 꼭 열심히 살아야만 하나? 이 책은 꼭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처럼 게으르게 늘어져 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왜 인생을 열심히 사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열심히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같다.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이나 편견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인 걸까? 어쨌든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열심히 살지 못하면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거야'라는 생각을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사는 것을 일종의 우상으로 여겼다. 동화책에서 ‘열심히 하면 꼭 잘 될 거야’ 같은 내용을 봐서 그런 걸까?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 엄마한테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봤다. 엄마는 '나는 적당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살면 안 돼. 마음에 열이 나게 사는 게 열심히 사는 건데 그러다 잘못하면 심장에 불날라.'라고 하시며 적당히 살아야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솔직히 ‘열심히 살기’와 ‘적당히 살기’, 그리고 ‘게으르게 살기’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게으르게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을 나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게으르면서 열심히 살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라파르그가 말한 게으름이라면 열심히 사는 것과 서로 극과 극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관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폴 라파르그는 노동자들은 충분한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가를 즐기는 것이 일종의 휴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최고의 시간은 여가시간이니까. 하지만 휴가는 여가를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휴가는 우리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일정한 기간만을 휴식시간으로 갖는 것인데, 폴 라파르그가 말하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이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휴가는 우리를 게으를 수 없게끔 만드는 것 같다. ‘이만큼만 일하면 나는 쉴 수 있어.’라는 생각을 심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제대로 휴가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휴가 동안에도 ‘이 휴가가 끝나면 이제 출장이 있다’, ‘앗, 집에 난방을 안 끄고 나온 건 아니겠지’ 같은 생각이 나니 말이다. 즉, 휴가로는 진정하게 여가를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휴가를 방학으로 바꾼다면 나도 그런 적이 있다. 방학에 어딘가에 놀러 가면 항상, 무조건 하나를 빼먹는다. 아주 중요한 물건으로! 예전에 인도에 갔을 때는 모기 기피제를 까먹어서 이상한 향이 나는 기피제를 사야 했고, 제주도에 갔을 때는 세면도구를 빼먹어서 새로 사야 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완벽한 방학은 항상 물 건너가고 계속 그 빼먹은 물건 하나만 생각났다. 그거 없어서 살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완벽한 방학이 물 건너 갔다며 항상 다음을 기약한다.

우리는 ‘곧’, ‘이것만 끝나면...’ 등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미루면서 언젠가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시간이나 다른 것들에게 쫓기기만 하지, 막상 현실에는 진짜로 그런 일을 이루어 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폴 라파르그는 누구인가?

이 책의 저자인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 1842~1911)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자이다. 처음에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써서 게으르게 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1883년에 발표된 책이다. 책의 내용은 그저 사람들이 게을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여성 문제, 추상적인 개념, 노동 등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이 일들이 문제가 되리라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잘 풀어 썼다. 그는 1842년에 쿠바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프랑스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그가 처음부터 사회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잠시 의학을 공부하였지만,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이라는 무정부주의자를 따르게 되면서부터 정치학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는 마르크스(그 사람 맞다!!)의 딸과 결혼해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70세가 되어 운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아내와 함께 자살했다고 한다.

사실 내가 프랑스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뭐든 라파르그와 좀 연관시켜보려고 내가 유일하게 아는 ‘파리 코뮌’이랑 혹시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찾아보았다. 시대는 맞았고, 나름 연관도 있어 보였다. 왜냐하면 파리 코뮌이 사회주의 이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라파르그가 살았던 시대는 어땠을까? 그가 태어나기 전, 나폴레옹 1세(1769~1821)가 사람들이 너무 많은 노동 시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노동 시간에 관하여 헛소문을 퍼트리고 사람들이 시위를 일으키게 한 다음, 시위에 나온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라파르그가 살던 시대에는 나폴레옹 3세(1803~1873)가 대통령이었다가 황제가 되어 정치를 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반항하는 자들에게는 폭력을 휘둘렀다.

그것은 일이나 작업이 아니라 고문이며, 게다가 6~7살 난 아이들에겐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 매일 매일의 기나긴 고문이 방적 공장 노동자들을 소진시키고 있다.” - 42쪽 
이처럼 병적인 노동 숭배 때문에 거의 야수화된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정도로 성장할 수가 없었다. 즉 모든 사람이 곧바로 일자리를 얻으려면, 조난당한 배에서 식수를 나누듯이 일을 똑같이 할당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일부 제조업자들은 자본주의적 착취를 원활히 하기 위해 오랫동안 하루 노동 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할 것을 요구해 왔다. - 69쪽

 

폴 라파르그


1800년대의 프랑스 자체가 노동에 찌들어 있던 시대인 것 같다. 이 시대에는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로 학자들이 사람들을 일하도록 부추겼다. 이에 반대를 한 사람이 라파르그였다. 라파르그가 이 책을 쓰기 전인 18세기 중후반에 산업 혁명이 일어나서 도시 지역에 공장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그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사람 많이 필요했고, 자본가들이 무산계급을 엄청난 시간 동안 노동을 착취했다. 그래서 라파르그는 이에 반대하는 생각을 책으로 풀어 쓴것이다.

 

게으름은 농땡이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온갖 형태의 지적 타락을 가져오는 동시에 모든 생명체를 기형으로 만드는 원흉이다.” - 28쪽


모두가 열심히 살고 있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지금은, 솔직히 열심히 살기 싫어도 괜히 뒤처지거나 다른 사람 취급 받기가 싫어서 게을러지고 싶은 사람도 열심히 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게으르고 싶은 나 자신을 일 잘하고 잘나가는 사람하고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그냥 다같이 게으르면 안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같이 게으르면 눈치 보는 일도 없을 테고, 너무 바쁘고 열심히 사느라 하지 못한 일들도 실컷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 같이 돈도 벌지 않으니 괜찮을 거고! 경제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없어지니 비록 나라가 가난해지는 문제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러니 일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한 게으름이란 주말 우리의 모습이었다. 침대에서 밍기적거리고, 뒹굴거리는 거!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란 걸 곧 알게 되었다. 비록 폴 라파르그가 사람들에게는 게으를 권리가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여기서 게으름이란 우리가 즐기는 게으름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다. ‘내가 드디어 엄마에게 내가 게으를 수 있는 이유를 댈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런 류의 게으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며, 무슨 사건에 참여할 때는 어느 정도 긴장감도 느껴야 한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깊숙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 집단의 일원으로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자신의 일을 몸소 창조적으로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외부에서 주어지는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우리의 모든 근육과 감각을 사용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라건대, 많은 사람이 동료들과 함께 정말 건전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기획하고 행동할 시간이 필요하다. (p.115)

위에서 라파르그가 한 말은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한 것들인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은 뭐든 따라가기 바빠서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혼자서 있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람들 속에 북적북적하게 껴 있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고 하고, 창조적인 일은커녕 유행을 따라가기 바쁘다. 그리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지만 주체적으로 즐기지는 못한다.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뭐든 하려고 한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혼자서는 인생이 재미가 없다고(??) 밖에서 쇼핑을 하며 노는 것이 자신이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했다. 나도 확실히 쇼핑을 하거나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에 껴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이건 나의 허무함을 채워주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위에서 라파르그가 말한 대로 가만히 멈추어 바라볼 시간, 혼자 있을 시간, 그리고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에 내가 라파르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나는 내가 나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가지 않아서 더욱 실천할 수 있는 것 같다.

라파르그는 사람들이 강제적이고 추악한 노동을 하는 것을 비판했지, 농땡이 치며 놀기를 바라진 않았다. 나는 게으름을 피운다고 하면,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집순이처럼 집에 처박혀 어지르며 더럽게 노는 것을 연상했다. 하지만 폴 라파르그는 그런 것을 주장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인간답게 여가를 즐기며 여유롭게 살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막상 ‘게을러지자’라고 말하면 게을러지지 못한다. 오히려 일을 하려고 하지. 일종의 워커홀릭인 게 아닐까? 어쨌든 사람들은 모두 일을 하느라 바쁘다. 그러니까, 시간이 남게 되면 뭐든 해야 된다고 느끼는 거다.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일만 해 왔으니까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폴 라파르그는 게으름을 실천하기 위해 노동 시간을 규제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생산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이처럼 시시한 2시간의 감소만으로도 영국의 생산성이 10년 동안 거의 1/3가량 증가된 점으로 미루어보아 법적으로 하루 노동 시간을 3시간으로 제한하면 얼마만큼의 숨막힐 듯한 속도로 프랑스의 생산량이 증가하겠는가. - 71쪽


여기서 라파르그가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 제안한 노동 시간은 3시간이다. 사람들이 너무 노동에 목매이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도 못하니 노동 시간을 제한하라고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일이 아닌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 나는 비록 노동을 해보진 않았지만, 3시간 정도의 노동은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3시간은 너무 적다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사람들이 워커홀릭이 된 이유는 정해진 기간 동안 구르면서 일하는 대신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 시간이 줄면 수입도 줄어든다. 사람들은 수입이 끊기니 마음이 놓이지가 않아 계속해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워커홀릭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가에 대한 혼란이 올 것 같다. 계속 일만 해왔기 때문에 멀뚤멀뚱 있기만 하지, 정작 게으름을 실천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게으름을 위해 노동을 규제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워낙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사람들은 게으름을 노동보다 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게으름을 위해 노동을 줄일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게으름을 위해 노동을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노동을 규제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니 생각은 좋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 같다.

 


즐거운 공부를 위하여!

폴 라파르그는 아이들의 자살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생산성 증가를 위해 아이들에게 압박을 주어서라고 말하는데 이건 정말로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이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공부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결국 그 미래라는 것도 생산성에 끌려 다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꿈이나 다른 미래들도 어차피 자본주의 안에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결국 내가 그렇게 원해서 되고 싶다는 의사도 직업이고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의 일종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 미래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는 나으니까. 나는 거의 독재정치에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통제 되는 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나는 폴 라파르그가 비판하는 것처럼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깔려있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내 친구들도 그런 것 같다.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고 했는데 내 친구들도 다 비슷비슷하다. 노동을 공부로만 바꾼다면 말이다. 내 친구들은 워낙 자기 주도적이어서 강요를 받으며 공부하진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는 막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교육열이 높은 엄마한테 끌려 다니면서 학원에 다니는 친구는 없다. 그리고 나도 그렇지 않은 것에 아주 감사하고 있다.

노동을 하며 임금에 시달리는 것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다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를 원망하게 될 수도 있다. 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해서, 그리고 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마음에서. 그러니 좀 쉬엄쉬엄 하며 게으름이란 것도 좀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지’ 같은 이상한 말들을 생각하며 너무 노동이라는 단어에 발이 묶이지 않도록.

공부도 즐겁게 원해서 하는 거면 좋지만, 누군가의 강요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끌려 다니면서 하면, 그 순간부터 공부는 어쩌면 라파르그가 말하는 노동이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지만 억지로 하게 되고, 하고 싶은 게 아니더라도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냥 하는 것 말이다. 이런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과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맞춰가다 보면 더 즐거워질 수도 있으니까.


모든 일을 게을리하세
사랑하고 한 잔 하는 일만 빼고
그리고 한껏 게으름 피우는 일만 빼고
-Lessing

 

글_이우(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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