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가족, 가족으로부터의 탈주』
지은이 인터뷰
1. 근대적 가족의 문제를 나쓰메 소세키를 불러와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가 근대의 문턱에서 고민했던 내용들이 그의 가족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계신데요.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유신 시대에 태어나 성장하고 죽었습니다. 소세키는 일본 전통사회에서 서구 근대사회로 급격히 탈바꿈되는 그 교차지점을 관통하면서, 근대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생생하게 목도합니다. 더욱이 영문학을 전공했던 소세키는 최첨단 도시 런던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 차이를 더 절감합니다. 그러나 소세키는 어디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쪽은 자유가 없었고, 한쪽은 개인들의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을 따를 수 없었고, 근대화 속에 살아갔지만 근대를 추수(追隨)할 수 없었습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의 경계 지대에 놓였던 소세키는 온몸으로 분열과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고 저항합니다.
소세키가 이처럼 남다른 문명의식을 보였던 것은 메이지유신이라는 격변기를 횡단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이 시대를 더 민감하고 특별하게 감지케 한 것은 그의 가족사 때문입니다. 또한 근대 전환기의 문제를 가족, 화폐, 연애, 결혼이라는 주제를 통해 드러낸 것은 소세키의 개인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세키는 나이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형제도 많아 태어나자마자 양자로 갑니다. 얼마 뒤 다른 집으로 다시 양자를 갔는데,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본가로 돌아옵니다. 본가로 돌아온 소세키는 본가의 호적에 오르지 못한 채 양부모의 성을 따랐고, 친부모를 할아버지 할머니로 알고 삽니다. 큰형과 둘째 형이 병으로 요절하면서, 그제서야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세키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양부모가 친부모에게 양육비를 청구했기 때문입니다. 애정이 금전으로 환산되는 순간, 양부모와의 관계도 교환이자 대가가 되어버립니다. 소세키는 친부모도 믿을 수 없었고, 양부모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소세키는 양가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대와 그의 가족사는 묘하게 동형 구조를 이룹니다. 소세키는 친부모와 양부모, 일본과 서양 그 사이에서 분열하고 저항합니다. 금전이 우위가 되고 개인이 우위가 되는 시대! 가족도, 부부도 온전한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중구속 상태에 놓인 덕분에(?) 소세키는 근대전환기의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나쓰메 소세키가 서구적 근대와 일본의 전통적 사회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면서 얻은 결론을 선생님께서는 ‘자기본위’라는 개념으로 보고 계십니다. 이 ‘자기본위’가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떻게 근대를 돌파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 유학 시절, 문학에서 돌파구를 찾습니다. 서구문학이 보편문학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던 즈음, 소세키는 이런 논리에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소세키는 문학은 무엇이며, 어떤 것을 문학이라 하는지 탐구했습니다. 드디어 결론을 내립니다. 곡괭이로 광맥을 파고 또 파듯이, 문학뿐만 아니라 과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공부하여, 서구문학도 ‘로컬문학’이고 일본문학도 ‘로컬문학’이라는 사실을 규명합니다. 이 세상에 보편은 없습니다. 모두 ‘로컬’입니다. 그러니 저마다의 문학을 추구하면 됩니다. 절대 보편이나 절대 옳은 문학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합니다. 소세키가 그 궁극에서 발견한 개념이 ‘자기본위’입니다.
‘자기본위’는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기만의 방향이자,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개성입니다. 자기중심주의나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또는 민족주의와 같은 것도 아닙니다. ‘자기본위’는 일본문학도 서구문학도 아닌 절대적 차이를 가진 문학, 전통도 근대의 방식도 아닌 절대적 차이를 가진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문명 상태와 다양한 삶의 방향을 인정하는 것이자 어떤 차별화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세키의 ‘자기본위’는 단일하고 표준적이며 보편적이며 당위적인 모든 가치를 거부하는 가치입니다. 일본 전통사회의 부자유와 불평등도 단호히 거부하지만, 서구 근대사회의 개인들의 무한 경쟁도 거부합니다. 자유로운 개인, 그러나 공존과 공감과 소통하는 개인으로 살아가는 길, 그것이 ‘자기본위’의 길입니다.
3.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 중에서도 『도련님』을 통해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데요. 『도련님』이라는 작품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또 어떤 점에서 이 작품이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1906년에 소설 『도련님』을 발표합니다. 소세키의 소설 중 가장 통쾌하고 거침없고 발랄하면서 발칙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문제는 근대 가족과 학교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도련님은 부모와 형으로 구성된 가족의 일원입니다. 그렇지만 도련님은 가족과 결이 달랐습니다. 도련님은 거침없이 행동했고, 계산적이지 않았으며, 정직했습니다. 도련님은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부모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부모 자신들은 막무가내로 살면서 도련님에게 말 잘 듣고 모범적인 아이로 자라기를 강요합니다. 도련님은 이런 부모에게 자신을 맞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와 등을 져도 도련님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찍 죽은 뒤 도련님은 혼자 살기를 선택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에 취직하지만, 학교도 가족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적당히 봐주고 적당히 타협하는 걸 미덕이라 가르치는 근대의 교육제도 학교! 도련님은 겉으로는 교양과 매너를 갖추게 하는 학교, 그러나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도록 하는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탈주합니다. 정직하면 이용당하고, 나빠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사회’에 시원하게 하이킥을 날리는 도련님! 24살 도련님은 실정에 어두운 애송이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길들일 수 없는 ‘자유의 존재’입니다.
가족과 학교라는 닮은꼴 공동체에서 벗어나 도련님이 시도한 것은 새로운 가족의 구성이었습니다. 이는 핵가족과도 다르고 학교라는 이익집단과도 다른 공동체였습니다. 도련님이 가족으로 선택한 존재는 집안의 하녀였던 할멈 기요입니다. 할멈 기요는 곱고 올곧은 도련님의 성품을 알아본 인물입니다. 도련님 또한 고귀한 성품을 지닌 할멈을 신뢰했습니다. 도련님과 할멈은 혈연도 아니요, 사랑하는 남녀도 아니요, 신분적으로 종속된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도련님에 의해 탄생한 가족은 혈연도 나이도 신분도 뛰어넘는, 핵가족의 범주 안에서는 이해 불가능한 ‘연대’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의 미덕을 격려하며, 조건 없이 증여할 수 있는 관계! 소세키는 『도련님』을 통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자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100년 앞서 예고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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