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 지은이 인터뷰
1. 책에서 ‘감이당 대중지성’을 통해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만나셨다고 적고 계신데요. ‘감이당 대중지성’은 어떤 프로그램인지, 그리고 많은 고전들 중에 『천 개의 고원』을 고른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중지성’이란, 1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언제든! 고전을 만나 지성을 연마하고 삶의 지혜를 터득해 가는 ‘세대 공감 네트워크’를 말해요. 대중이 함께 모여서 여러 고전을 읽으며 옛 성인의 삶에서 지혜를 배우고 나눕니다. 읽고 배운 것으로 ‘글쓰기’와 내 삶을 연결하여 ‘우정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읽기’와 ‘쓰기’를 삶의 비전으로 삼아, 자신만의 ‘밥벌이’ 즉,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이 대중지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천 개의 고원』을 ‘골랐다’기보다, 말 그대로 ‘만났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세상 모든 인연이 필연이면서도 우연이잖아요. ‘감이당’과 접속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몇 해 동안 여러 강의와 세미나를 듣게 되었어요. 거기다 대중지성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스승들과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사실 공부와는 별로 인연이 없었던 저로서는 ‘감이당’에서의 만남, 이별이 전부 우연적이었어요.
『천 개의 고원』도 마찬가지였죠. 저는 어떤 계획을 갖고 ‘아! 이 텍스트를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저를 관통해 갔던 철학과 고전은 전부 우연한 마주침이었습니다. 『천 개의 고원』은 2018년 대중지성 메인 텍스트였고, 4학기가 끝나면 헤어질(?) 운명이었는데, 느닷없이 글을 쓰게 된 거예요. 글을 쓴 지난 1년간 책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우연히 마주친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천 개의 고원』을 만나게 된 것이 필연이었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2. 책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를 통해 선생님께서 속해 있는 청년 세대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요. 오늘날의 청년들이 들뢰즈-가타리의 사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들뢰즈-가타리에게서 배운 가장 인상적인 개념은 ‘도주’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으로부터의 도주인가? 바로 ‘자본’입니다. 제가 사는 시대는 전부 자본을 중심으로 삶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최근 뉴스 보도에서 ‘영끌’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어요. 최근 20~30대 청년들이 은행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아파트를 장만하더라고요. 그리고 아파트 시세가 올랐을 때, 팔아 버리는 거죠. 일종의 부동산 투기예요. ‘영끌’을 하는 사람들은 제 주변에도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죠? 집이 팔리지 않으면요? 은행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청춘 에너지를 전부 노동에 쏟아야 해요. 저 또한 영끌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천 개의 고원』으로 글을 쓰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사실 이밖에도 자본이 중심이 되는 일들이 많잖아요. 넓은 아파트는 물론이고, 고급 차를 소유해야 하고 스위트홈도 꾸려야 해요. 모든 관계망이 전부 자본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를 이루고 있는 자본의 배치에서 ‘어떻게 달아날 것인가’를 제시해 줘요. 그런데 도주와 도망을 혼동하면 안 돼요. 자본을 버리거나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밟고 서 있는 자본의 시대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거예요. 고전과 철학을 통해 우리 삶의 방향과 속도를 조금씩 바꿔보는 거죠. 자본이 만들어 배치를 맹목적으로 믿어 버리면 한없이 결핍에 시달려야 하고, 열등감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도주는 나를 이루고 있는 배치에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는 키워드입니다.
3. 책에서 『천 개의 고원』을 만나고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의 삶의 태도가 변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바뀐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부를 하면서 바뀐 점은 ‘가치관’인 것 같아요. 기존에 갖고 있던 견고한 가치관들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런데 더 많이 바뀐 점은 글을 쓰면서 ‘신체’가 바뀌어 간다는 겁니다. 단지 책을 ‘읽고’ ‘쓰는’ 행위가 ‘신체’ 그 자체가 변하게 해요. 내가 내 삶을 주제로 글로 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려면 저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하거든요? 제 욕망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지 묻고 답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내 삶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가 나오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식탐이 아주 강한 사람입니다. 먹는 것 앞에서는 매번 무너졌어요. 배가 불러도 먹고 또 먹고. 주변 관계들도 전부 먹고 마시는 관계뿐인 거예요. 점점 살이 찌더니 몸이 무거워지고 결국 병에 걸려 버렸어요. 글을 쓰면서 깨달았죠. “식욕을 제어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구나.” 그때부터 운동을 조금씩 했고, 밥도 조금씩 덜 먹었어요. 그랬더니 신체가 조금씩 변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는 거예요. 공부가 사유는 물론 신체를 바꿀 수 있다니! 전 이 지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4. ‘대중지성’으로서 어려운 철학 원전을 공부하고 책을 쓰셨는데요. 처음 고전이나 철학 원전 등 어려운 책들에 도전하는 독자들에게 조언이 될 만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 개의 고원』 말고도 어려운 철학책이 매우 많습니다. 어렵고 난해한 철학책을 읽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책과 친해지는 겁니다. 책을 사물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말도 걸어보고, 질문도 해보고, 답도 얻어 보면서 친해지려고 해야 돼요. (그러자면 책을 꼼꼼히 읽어야겠죠?^^) 우리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그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많이 구하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천 개의 고원』을 처음 읽어 나갈 때, 너무나 막막했어요. 리좀, 도덕의 지질학, 리토르넬로, 전쟁기계 등. 들뢰즈-가타리의 난해한 개념들을 어떻게 뚫고 나갈까... 매일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천 개의 고원』과 관련된 참고서와 강의를 매일 들으면서 어떻게든 이 책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고전과 철학을 공부했다면, 다음은 책에서 배운 지식과 지혜를 내 삶에 도구로 사용해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망치나 못을 사용하는 것처럼요. 단순히 읽고, 아는 것만으로는 고전과 철학을 공부했다고 할 수 없어요. 반드시 자신의 삶에 적용을 해 보아야 돼요. 그래야지만 진짜 내 삶의 방향과 속도가 바뀌고 삶의 태도가 바뀌어요. 제가 생각하는 고전과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삶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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