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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청년, 연암을 만나다』 지은이들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0. 11. 19.

『청년, 연암을 만나다』 세 명의 지은이들 인터뷰

 

 

1. 책 제목이 ‘청년, 연암을 만나다’입니다. 제가 독자라면, 도대체 어떤 청년, 무얼 하는 청년들이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고 글을 쓴 것일까…가 가장 먼저 궁금할 것 같습니다. 세 분 청년 선생님들은 어떤 분들이신가요? 또 세 분은 어떻게 한 팀이 되어 연암의 글을 읽게 되신 건가요?

 

저희는 ‘남산강학원’이라는 공부공동체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청년 백수들입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책 읽고, 글 쓰고, 세미나 하고, 일하고, 청소하고, 밥 먹고, 산책하며 일상을 보냅니다. ‘공부’공동체이기에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공부‘공동체’이기에 일하고, 청소하고, 밥을 하는 등 일상의 모든 것을 함께 꾸려 나갑니다. 그러다가 종종 싸우기도 하고요.

  

지금은 이렇게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하고 있지만,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다 다릅니다. 국문학과인데 글을 못 써서 온 친구, 학문을 하고 싶어서 학교 대신 공동체에 온 친구, 일만 하다 죽기는 싫어서 회사를 관두고 온 친구. 이 셋이 모여 동양철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불과 ‘작년’의 일입니다. 동양철학을 공부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피라미들이 책을 내다니! 저희 스스로 참 놀랍습니다!

  

각자 다른 시기에 이 공동체에 와서 공부를 하다가, 저희 셋은 ‘남산강학원’의 청년프로그램을 통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데요. 저희는 다른 무엇도 아닌 ‘공부’로 자립이란 걸 해보겠다고 야심차게 모인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운이 좋게도 18세기 조선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의 글로 동양철학 공부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엄두도 못 냈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동고동락 세미나(동양고전을 공부하는 남산강학원의 대표 세미나프로그램)’의 중년 샘들은 함께 공부하는 벗이 되어 주셨고, 튜터인 문성환 선생님은 무지한 저희의 등불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인연으로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전습록』과 『대학』, 연암과 18세기 조선 문사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벗들과 선생님과 함께 『맹자』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2. 이 책은 지금 21세기의 청년, 그것도 공부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이 조선 후기의 연암을 스승으로 삼아 그에게 글쓰기나 공부법만이 아니라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법까지 배워 간 것으로 보입니다. 공동체 생활에 연암의 사유가 어떤 도움이 되셨나요?

 

원자연: 21세기와 18세기의 시간 차가 무색할 만큼 우리가 맞닥뜨리는 문제는 여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비슷한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만 잃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매번 비슷비슷한 다짐만 할 뿐이었죠. 그런데 연암을 만나고, 구체적인 삶의 지혜들을 배워간 것 같아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유치하고 쪼잔한 일들이 많은데, 저는 살면서 이런 일들을 정면으로 겪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런 사건을 마주하는 법부터, 날카롭게 상황을 보는 법, 또 이런 일들에도 마음을 아낌없이 다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자기 이익만을 주장하고 텃세 부리는 지방 아전들을 대하는 연암의 태도에서 유연함과 단호함을 배웠고, 친구와 절교한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연암에게서 덕으로 벗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렇게 우리가 만들어 내는 감정도 매 순간 생겨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주하는 사건을 정성스레 대해야 하고, 또 그 결과가 어떻든 다음 사건을 마주하면 될 뿐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렇게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변화무쌍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저에게 정말 많은 지혜를 선물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이윤하 : 저는 늘 무언가 되고 싶었고, 제가 무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암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에 질문을 계속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연암은 과거를 포기하고도, 아니 포기해서 잘 살아버렸으니까요. 연암은 대신 벗들과 함께 공부하고, 글 쓰는 삶을 삽니다. 그 삶엔 일절 군더더기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를 해치는 일도 아니고, 주변 사람을 진정 아끼는 일인 것 같았어요.

  

출세 대신 누군가의 벗이 되기를 자청하는 연암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해 쓰면서 저는 좀 더 제 주변과 땅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가 ‘될’ 게 아니라 일단 같이 살아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제가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다영 : 우선 연암처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예를 들어, 연암은 한 고을의 현감이 되어 구휼활동을 할 때, 임금의 은혜로 부자 영감이 되어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연구실의 공동주방이 떠올랐는데요. 연구실에 상주하는 청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밥당번을 합니다. 보통 20인분 정도를 준비하는데, 저는 별생각 없이 그냥 해야 하는 일로 여겨왔던 것 같아요. 식사 인원이 많으면, 고되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런데 연암의 모습을 보고, 저도 밥당번을 할 때 연암처럼 ‘내가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할 기회를 얻었구나’라고 느껴보려 하면, 기쁘게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어요. ‘시간 안에 준비해야 한다’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도 함께 들고요. 연암의 사유는 저에게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3. 책에서 보면 『연암집』을 함께 읽으며 『연암집』에서 “‘이건 읽어야 돼 목록’을 짜고, 차례로 한두 편씩 뽑아 함께 낭송도 하고 어떻게 읽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이건 읽어야 돼 목록’은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뽑으신 건가요? 이 책뿐 아니라 연암의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꿀팁이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동고동락’ 세미나에서 『연암집』을 다 읽고 난 뒤, 한 번만 읽기에는 아쉽다는 마음에 몇 편이라도 다시 읽기 위해 ‘이건 읽어야 돼 목록’을 아주 주관적으로 뽑았습니다. 그래서 꿀팁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책에 낙서가 많은 글을 골랐습니다! 이런 글들은 읽으면서도 재밌었고, 세미나 시간에도 이야기가 많이 나온 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벗들과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취하여 운종교를 거닌 기록」,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백영숙에게 증정한 서문」, 연암의 애틋한 정이 읽히는 묘지명들인 「맏형수 공인 이씨 묘지명」, 「맏누님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 「홍덕보 묘지명」 등이 있었습니다. 이 글들을 읽으며 저희는 연암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깊이 감동했었지요.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소단적치인」, 「창애에게 답함」도 뽑았었고요, 연암의 ‘사이’철학을 읽을 수 있는 「낭환집서」도 꼭 목록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또, 한 번 읽는 것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층적인 글들도 다시 읽어보려 했습니다. 그런 글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게 읽히는 맛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능양시집서」, 「주공탑명」, 「초정집서」 등이 있지요. 

  

사실 『연암집』은 거의 두세 쪽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디를 펼쳐도 부담 없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조금씩 음미하며 읽어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4. 세 분 각자 이 책의 어느 글을 쓸 때 가장 힘이 드셨나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자연 : 저는 연암의 「애오려기」를 가지고 쓴 <나‘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애오려기」를 마음으로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애오려기」를 보면, 자신의 팔목을 잘라내는 것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킨 여인이 나옵니다. 연암은 이 글의 끝에서, ‘자신을 사랑하기를 이 여인과 같이한다면, 사랑할 바를 아는 사람’이라고 덧붙입니다. 자신의 몸을 해치는 일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니, 자신의 신념을 위해 한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었으면 괜찮았을까? 머리카락 정도면? 저 자신의 ‘몸’은 끔찍이 생각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그 어떤 기준도 없이, ‘나’와 관련된 것이면 무조건 아끼려고만 들어요. 연암도 이 글에서 ‘자신의 것이라면 털끝 하나 내어놓지를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저 또한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몸만 챙길 줄 알았지, 윤리적으로 어떤 것이 나에게 이로운 일인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지금을 사는 우리는 윤리적 기준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일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어요. 특히 ‘나’만 알고, ‘내’가 중요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더욱요.

 

이윤하 : 힘들었다기보다는 쓰기 어려웠던 글이 있는데요, 연암의 「공작관기」를 가지고 쓴 ‘읽기, 만물의 빛을 만나는 일’이라는 글입니다(정말 쓰기 힘들었던 글은 결국 책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공작관기」(孔雀館記)는 연암이 말년에 지방 수령으로 있을 때 관아의 기문으로 쓴 글이에요.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연암이 청나라에 갔을 때 공작 세 마리를 본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광채가 무척 아름다워서 연암은 깊은 인상을 받고, 그곳에서 만난 선비들의 글을 공작의 빛깔에 빗대어 평해 줍니다. 그 후 연암이 조선으로 돌아온 지 5년이 지났는데, 만나본 적 없는 청나라 선비 하나가 연암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공작관’(孔雀館)이라는 글씨를 보내왔습니다. 연암은 ‘관’(館)이라고 이름 붙일 데가 없어서 글씨를 그냥 둡니다. 그러다가 15년 정도 지난 뒤, 수령이 되어 지낼 관아가 생겼을 때, 책들 속에서 우연히 이 글씨를 발견하고는 관아에 걸고 「공작관기」를 지었습니다.

  일단 아쉽게도 이 오묘한 이야기의 흐름을 제 글에 다 담기가 어려웠습니다. 대신 연암이 말하는 읽기에 대해서 써보았는데, 그 주제도 다루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읽기’ 자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읽고 쓰다 보면 그만큼 연암의 글에 녹아 있는 글쓰기와 읽기에 대한 철학을 더 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남다영 : 저는 「민옹전」을 쓸 때 가장 힘이 들었는데요. 「민옹전」에서는 청년 시절 우울증을 앓았던 연암이 괴짜 노인 민옹을 만나면서 어떻게 병을 치유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저는 ‘연암을 낫게 한 민옹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을 생각해 보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민옹과 연암의 만남인데, 민옹에게만 눈이 가서 ‘연암은 어떤 마음으로 민옹을 대하고 있었는가’는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점을 놓치고 있었던 이유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정답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내가 연암에게서 어떤 태도를 배울 것인가’를 묻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수동적으로 누군가 밥을 떠먹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태도를 바꿔야 저도 연암처럼 달라질 수 있는데 말이죠. 

 

 

5. 연암의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과 그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원자연 : 『연암집』을 앞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읽다 보면, 몇 장 넘기지 않고 만나게 되는 글이 있는데요.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백영숙에게 증정한 서문」입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뽑아 달라는 질문에, 이 글을 택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씨앗문장을 쓰면서 가져왔던 글 중에 있지도 않고, 연암의 글 중에서도 자주 회자 되는 글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연암집』을 다시 한번 쓱 넘기다 보니, 『연암집』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스민 글이 바로 이 글이었습니다. 연암 어른과 그 벗과의 우정에 반하게 된, 첫 글이던 거에요. 이 글은 백영숙이 식구들과 함께 강원도로 떠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살기가 어려워져 떠나는 친구를 붙잡을 수도, 편히 보내줄 수도 없는 마음이 애잔하게 담겨 있었는데요. 연암은 이 글의 끝에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백영숙의 뜻을 응원하고 존중합니다. 저 또한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고 있어서 그런지 ‘벗’에 관한 글들이 확실히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다른 길을 가게 되는 친구를 붙잡는 일 또한 저의 욕심이라는 걸 알게 해줬던 글이었습니다. 친구들에 대해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 배웠던 첫 글이었네요.

 

이윤하 : 연암이 이서구의 「하야방우기」(夏夜訪友記)에 답한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이 글은 연암이 식구들은 처가로 보내고 홀로 서울에 남아 지내던 때의 이야기인데요. 이때 연암은 망건도 잘 쓰지 않고, 낮잠 자고, 행랑사람과 잡담하고, 경조사에는 가지 않으며, 일종의 은신을 합니다. 이때 찾아온 이서구가 과거를 아쉬워하는 듯하자 연암은 이제 세상에 뜻이 없다고 밝힙니다.

  일련의 이야기들에서 벼슬을 하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에 서기로 한 연암의 맥락과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풀어 읽어야 하는 어려운 글은 아니지만 읽을수록 드러나는 맥락이 있고, 저에겐 연암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했던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남다영 : 제가 가장 많이 읽고, 마음에 새기고 싶은 글은 「원사」(原士)입니다. ‘原士’는 글자 풀이를 하면 ‘본디 선비’라는 뜻인데요. 이 글은 연암의 ‘선비란 어떻게 글을 읽는가’에 대한 짤막짤막한 메모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사」를 읽고 있으면 ‘온 마음을 다해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어요. 연암은 글을 읽을 때, 조급하거나 내달리는 마음 없이, 자세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습니다. 글 읽는 소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도 말합니다. 「원사」에는 이렇게 연암의 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연암은 부모님을 대할 때나 손님을 맞이할 때는 단호히 책을 덮어요. 이것이 글을 읽는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저는 일상은 물론 무언가에 오로지 마음을 쓸 줄 아는 연암이 참 멋있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점이 제가 연암에게서 가장 닮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원사」는 저에게 두고두고 펼쳐볼 글입니다.       

 

 

6.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 특히 청년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연암을 비롯한 동양철학, 동양의 고전들은 다른 고전들에 비해 특히 청년들에게 잘 읽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낡은 것이고, 뻔한 것이라는 생각에 잘 접하지 않게 되지요. 그렇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런 생각은 선입견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들이 참 진부하고, 그들의 사유가 신선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에게도 참 진부한 담론들이 있잖아요. ‘너 자신을 사랑해라’라든지,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한 게 중요하다’라든지. 그런 말들은 진부한 만큼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들로 풀리지 않는 문제도 많고요. 저희는 연암의 글(또, 다른 동양고전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생각의 길을 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양고전을 만나다 보면 그들이 누구보다 ‘삶의 달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잘 해결되지 않는 삶의 고민들을 마주하고 계시다면 동양고전의 지혜를 빌려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또 특히 연암은 ‘우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립니다. 연암의 편지나 묘지명을 읽어보면 벗들과 깊고 애틋한 관계, 삶을 함께 도모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저희는 공동체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늘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데, 그럴 때 종종 이런 연암의 글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친구가 된다는 게 뭐지? 친구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의 질문에 연암과 그의 벗들이 하나의 방향이 되어주었습니다.

  

연암과 그의 벗들이 함께 도모한 삶은 ‘학문’하는 삶이었습니다.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끼는 사람에게 기꺼이 함께 가자고 말할 수 있는 길, 그것은 공부의 길이 아닐까요? 청년들의 고민 중 8할(적어도 5할)은 친구가 아닐까 합니다. 연암은 그런 고민에 말을 걸고, 질문을 던져주는 좋은 우정의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청년들이 ‘정말 아무나’ 읽고 쓸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읽고 쓰는 일은 특별한 사람이나 전공자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할 수 있고, 또 잘 살기 위해서라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배우고, 그것을 글로 소화해내고, 내 생각을 부수고 또 나아가게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누구나 사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저희도 ‘남산강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정말 어쩌다 이런 책까지 나왔습니다만, 읽고 쓰는 것을 계속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수련하고 있습니다. 많은 청년 분들이 저희 글을 읽고 ‘이런 건 나도 쓰겠다!’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시길 바라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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