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法古)하니 창신(刱新)이?!
다음 주면 곰샘의 글쓰기 책인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와 48인의 대중이 함께 쓴 『나는 왜 이 고전을』이라는 책이 나온다. 그래서 지금 강감찬TV에서는 이 두 권의 책을 소개하는 북트레일러 작업이 한창이다.
우리 팀은 그 중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의 북트레일러를 맡았다. 출판사에서 온 영상의뢰서에는 “북트레일러인 듯 인터뷰인 듯한 영상”을 요청한다고 적혀있었다. 오옹?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잠시, 한편으로 걱정이 밀려왔다. ‘어떤 영상을 말씀하시는 걸까? 할 수 있겠…지?’ 강감찬 신입 직원(?)인지라 걱정이 앞섰다. 이런 마음을 읽으셨는지, 인터뷰 형식으로 제작된 다양한 북트레일러의 영상링크를 첨부해서 보내주셨다. 영상들을 보고, 우린 좀 더 혼란스러워졌다. 영상들의 느낌도 제각각이었고, 무엇보다도 어떤 이야기로 영상을 채워 가야할 지 막막했다. 사례영상들과 느낌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혹은 특별한) 영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우리는 영상콘티를 보기로 한 날 텅텅 빈 콘티를 가져가고야 말았다.
아! 소위 ‘법고’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이다. 진실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즘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다.
(박지원, 「초정집서(楚亭集序)」, 『연암집 (상)』, 돌베개, 24쪽)
국장님은 우리에게 우선 어떤 영상이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물어보셨다. 그리고는 그 영상을 똑같이 따라 해보라고, 정말 그렇게 하고자 하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어떤 아저씨’의 북트레일러를 롤모델로 삼고, 그 느낌부터 이야기 전개흐름까지 따라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완전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기술력의 차이 때문일까…?ㅎㅎ)
법고(法古)란 옛것을 본받는다는 뜻이고, 창신(刱新)이란 새롭게 창조한다는 뜻이다. 연암은 옛 것을 잘못 본받으면 그 형식적인 껍데기만을 따르기 쉽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하면 일반적인 도리에 어긋나 괴벽한 것을 만들기 쉽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옛 것을 본받아도 문제라 하고, 새로운 것을 해도 문제라 한다면?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연암은 말한다. 옛 것을 본받더라도 변화시킬 수 있고(法古而知變), 새 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는다(刱新而能典)면 옛 것이 곧 새것이 되고, 새것은 곧 옛 것이 된다고. 그래서 법고(法古)와 창신(刱新)은 결코 다른 말이 아니다.
우리는 사례영상의 형식과 내용을 보여주는 방식 등을 차용했다. 어떤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려 했는지, 그것을 따르려 했다. 그리고 우리의 내용과 맥락에 따라 변주시켰다. 평소 곰샘의 모습과 일상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정말 새로운 영상이 탄생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여기서 핵심은 “변(變)”에 있다. 변(變)하면 통(通)한다고 했다. 우리의 롤모델 영상이 아무리 좋았다하더라도 그것을 똑같이만 따라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의 상황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맥락 속에서, 또 이 영상을 볼 사람들과 통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새로움이다. 국장님의 조언대로 법고(法古)하니 창신(刱新)이 되었다!
세상 만물은 법고와 창신의 흐름 속에 있다. 썩은 흙에서 버섯이 무럭무럭 자라고 썩은 풀이 반디로 변하기도 한다(같은 책, 26쪽). 옛 것에서 새것으로. 스스로 그 변화를 만들어내든 변화 속에 몸을 싣든 만물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하고 있고,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그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연암은 삶의 지혜를, 글쓰기의 병법을 자연의 이치 속에서 읽어내던 사람이었다. “法古而知變刱新而能典”, 연암이 읽어낸 법고창신의 지혜를 마음속에 품고 가야겠다.
글_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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