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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

[연암을만나다] 씨앗문장으로 글쓰기 병법을 익히기!

by 북드라망 2020. 1. 9.

씨앗문장으로 글쓰기 병법을 익히기!




동양고전을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연암집』으로 씨앗문장을 MVQ에 매주 연재하게 되었다. 그러자 갖가지 걱정들이 몰려왔다. 매주 글을 쓰는 이 스케쥴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써서 망신만 당하는 게 아닐까? 글이 재미가 없어 아무도 보지 않으면 어쩌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게 부끄러우면서도, 동시에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예비 구독자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내심, 글을 잘 써서 선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잘 쓰려고 하는 나를 보다보니, 나에게 있는 하나의 전제가 보였다. 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눈길을 끌만한 경험이나 크게 공감할만한 경험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번 연재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내가 매주 연재를 할 만큼 이야기거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나는 너무 밋밋해 보였던 것이다. 뭐 하나 특출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연애를 해서 투닥거리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태껏 공부를 계속 하고 있긴 한데 잘 까먹어서 아는 게 남아있을지 의문이었다. 대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만약 이런 나의 걱정들을 연암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었다. 내가 글쓸거리가 없다고 걱정하는 건 특별한 소재가 없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릇 장평의 병졸은 그 용맹이 옛적과 다르지 않고 활과 창의 예리함이 전날과 변함이 없었지만, 염파가 거느리면 승리할 수 있고 조괄이 거느리면 자멸하기에 족하였다. 그러므로 용병 잘하는 자에게는 버릴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에게는 따로 가려 쓸 글자가 없다. 진실로 좋은 장수를 만나면 호미자루나 창자루를 들어도 굳세고 사나운 병졸이 되고, 헝겊을 찢어 장대 끝에 매달더라도 사뭇 정채를 띤 깃발이 된다. 만약 이치에 맞다면, 집에서 늘 쓰는 말도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고 동요나 속담도 『이아』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글이 능숙하지 못한 것은 글자의 탓이 아닌 것이다.

( 박지원, 『연암집』(상), 「소단적치인」, 돌베개, 131쪽)


연암은 「소단적치인」에서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한다. 똑같은 병사들을 데리고 있어도 어떻게 지휘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승리로 이끌었고 누군가는 자멸했다. 더 좋은 병사를 찾는 건, 장군으로서 무능력을 나타낼 뿐이다. 좋은 장군은 자기가 있는 곳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헝겊과 호미자루도 적절히 쓴다면 그 순간 최적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치에 맞다면 집에서 흔히 하는 말로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듯이, 나의 글쓸거리는 어떤 특이한 경험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주위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이때,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주위에 아무리 흔하게 헝겊과 호미자루가 있다 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내 손에 익숙하지 않아서 쓸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때에 맞게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먼저 평소에 잘 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내가 글쓸거리가 있을까 걱정하는 것은 평소에 내가 얼마나 일상에 무관심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 하나, 말 한 마디부터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이 씨앗문장의 첫 스텝일 것이다. 뭔가 특이한 경험만 찾다가는 내 주위에 있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컨대 앞으로 씨앗문장들도 많이 허접할 것이다. 여태껏 더 좋은 조건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에 대한 착각도 많아서 일상을 보는 데 많이 헤맬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저렇게 이해하지?’ 갸우뚱할 정도로 헛발질도 많이 보일 것 같다. 하지만 호미자루가 날카로운 창이 되고, 헝겊이 정채로운 깃발이 되도록 꾸준히 연마해가겠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가장 흔한 말로 이치에 맞게 말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글_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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