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연암을 만나다] 웬수에서 벗되기

웬수에서 벗되기



요즘 내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주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연구실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밥당번을 하고, 온갖 선물들까지! 주방에는 수많은 마음들이 오간다. 이런 주방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막힌 곳 없이 잘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주방매니저의 임무다. 그런데 주방매니저인 나와 명이언니는 흐름을 만들기보다는 자꾸 삐걱거렸다. 언니는 저번 시즌에 이어 계속 주방 매니저를 하면서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의욕이 많이 사라졌고, 주방인턴에서 주방매니저가 된 나는 주방을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생각보다는 여전히 언니에게 묻어가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플레이를 했다. 각자 자기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 할 뿐, 그 외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 문제가 터져도 속수무책이었다. 잔반이 처리가 잘 안되어도 함께 이야기를 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려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전임 주방매니저가 회계에서 빵꾸가 나고, 내가 바로 뒤이어 빵꾸를 냈을 때도, 잘못한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정신 차리자는 다짐만 했다. 하지만 우리가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걸 똑똑히 보란 듯이 또 그 다음 달에도 빵꾸가 났다.


주방이 총체적 난국이 되어서야,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선생님과 주위친구들의 피드백을 받아 뭐가 문제이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둘이서 틈틈이 짬을 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눌수록, 답답함만 커져갔다. 서로 상대의 의견에 대해서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가 내 말을 안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되풀이해서 말했다. 아, 그땐 정말 울화만 치밀었다.


이것은 단지 숭상하는 바가 동일하지 않을 뿐인데도 의론이 서로 부딪치다 보니 진(秦)과 월(越)의 거리보다 멀어진 것이요, 단지 처한 바에 차이가 있을 뿐인데도 비교하고 따지는 사이에 화(華)와 이(夷)의 구분보다 엄하게 된 것이다. (중략) 마을도 같고 종족도 같고 언어와 의관도 나와 다른 것이 극히 적은데도, 서로 알고 지내지 않으니 혼인이 이루어지겠으며, 감히 벗도 못하는데, 함께 도를 도모하겠는가?

박지원,「회우록서」, 『연암집』(상) ,  돌베개,  19쪽


같은 마을, 같은 종족, 같은 언어와 의관…. 수많은 공통점에도 다른 입장은 분명히 존재한다. 함께 청년프로그램에서 공부하고, 주방활동을 하고, 같은 건물에 사는 나와 명이언니가 그렇듯이. 잔반 하나만 봐도 그렇다. 나는 잔반은 빨리 상하니까 모든 잔반은 한꺼번에 내 놓아야하고, 음식은 넉넉히 준비하는 게 밥당번쌤들이나 먹는 사람들에게 좋다고 생각했다. 반면 언니는 한꺼번에 내놓으면 먹기 싫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잔반은 최대 2개로 내고, 잔반을 줄이기 위해서는 딱 맞게 혹은 약간은 모자르듯이 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언니가 겉모양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밉쌀스러웠다. 반면 언니는 내가 대충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억울했는데, 언니와 이렇게도 이야기해보고 저렇게도 이야기하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언니와 나는 회의를 할 때마다, 시시각각 의견차이가 있다. 메뉴하나를 놓고도, 밥당번샘들이 시간 안에 할 수 있다/없다로 열심히 논한다. 그리고 이젠 내가 옳다고만 생각하기보단, 주방을 주의 깊게 본다. 그러면서 간혹 내가 고집 부렸던 것에 대해 이실직고하기도 한다. ‘언니 그땐 언니가 옳았네요.’라고. 언니와 투닥거리며 서로의 차이를 잘 배우길 바래본다. 이 마음이라면 왠지, 언니와 벗으로 지내며, 주방의 도를 함께 도모해갈 수 있을 것 같다.


글_남다영(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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