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치열한 삶에 찬사를!
연암이 함양군 안의현에서 수령으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밤, 한 아전의 조카딸(이하 박녀朴女:박씨의 딸이라는 뜻 정도 된다)이 약을 먹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원인은 남편의 죽음이었다. 박녀는 남편이 죽자 곧바로 따라 죽을 결심을 했고, 남편의 삼년상을 다 치르고는 목숨을 끊었다. 나이 열아홉에 결혼했고, 남편은 반년도 못되어 죽었다. 그러니 그녀의 나이 겨우 스물 둘.
당시 조선에서는 사대부의 아내(마찬가지로 사대부 집안의 딸)는 재혼을 하지 못하는 풍습이 있었다. 재혼을 하더라도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관직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니 연암의 말에 따르면, 그 ‘절개 풍습’은 일반 백성들에게 굳이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여자들은 그 집안이 “미천하거나 현달했거나” 남편이 죽으면 생활이 어려워도 평생을 과부로 살았다. 시간이 지나서는 그것으로 절개가 되기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남편을 따라 죽기까지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과부로 수절해도 ‘열녀’라고 여겼는데, 이제(연암의 시대)는 목숨을 끊을 정도는 되어야 ‘열녀’라고 불릴 수 있었다.
연암은 박녀의 죽음을 듣고 탄식하며 (“열녀로다, 그 사람이여!”) 「열녀 함양 박씨전」을 쓴다. 그런데 이 “열녀전”은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어찌 열녀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연암집』(상), p153)라고는 하지만 ‘남편을 따라죽다니 품행이 훌륭하다!’고 박녀를 칭찬하는 내용 같지는 않고, “열녀는 열녀지만 어찌 지나치지 않은가!”(같은 책, p148)라고는 하지만 박녀의 죽음이 지나쳤다고 나무라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박녀의 마음이 어찌 이렇지 않았으랴! 나이 젊은 과부가 오래 세상에 남아 있으면 길이 친척들이 불쌍히 여기는 신세가 되고, 동리 사람들이 함부로 추측하는 대상이 됨을 면치 못하니 속히 이 몸이 없어지는 것만 못하다고.” (박지원, 『연암집』(상), 「열녀 함양 박씨전」, 돌베개, p153)
만약 박녀가 남편을 따라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연암이 보기에 그녀는 친척들의 동정을 받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질 나쁜 소문을 견디고, 고독을 견디면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나쁘면 위협이나,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다.
연암은 박녀를 ‘칭찬’하거나 ‘나무라는’ 대신, 과부들을 “이 몸이 없어지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조선의 세태에 대해서 한탄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녀는 ‘조선의 악습’에 의한 피해자거나, 자기 삶을 두고 도망친 도망자라는 건가? 아니, 바로 이어지는 문단에서 연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아! 슬프구나. 성복成服을 하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장사 지내는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요, 장사를 지내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소상小祥이 있었기 때문이요, 소상을 지내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대상大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상이 끝이 났으니 상기喪期가 다한 것이요, 한날 한시에 따라 죽어 마침내 처음 뜻을 완수했으니 어찌 열녀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같은 책, p153)
박녀는 피해자도, 도망자도 아닌 ‘열녀’였다. 연암은 조선의 풍습을 비판하면서도, 그 맥락 위에 있던 박녀의 죽음을 비참하거나 비겁한 것으로 그리지 않으려고 한다. 박녀는 결혼할 사람이 건강하지 않다는 걸 몇 달 전부터 알았으면서도 정해진 사람과 결혼하겠다 했고, 자신에게 남은 소임을 다한 뒤에야 생을 정리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죽어서, 혹은 절개를 지켜서 열녀가 아니다. 자신의 ‘처음 뜻’을 치열(熾烈)하게 ‘완수’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삶을 끝까지 내버리지 않았기에, ‘열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열녀’들을 비인간적인 구습에 억압당한 피해자라던가, 그 습속에 투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은 쉽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고작 스무 살 남짓된 그들이 그렇게 자기 생을 담담히 끌고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 존경스럽고, 그래서 그들의 삶을 격하시키지 않으려 하는 연암의 시선이 더 좋다.
글_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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