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공작(孔雀)을 만나는 일
연암이 열하 사신단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였다. 연암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공작 세 마리를 본다. 그것은 푸른 물총새도 아니고, 붉은 봉황새도 아니고, 학보다는 작고 해오라기보다는 컸다. 몸은 불이 타오르는 듯한 황금색이었고, 꽁지깃 하나하나마다 남색 테가 둘러져있는 석록색, 수벽색의 겹눈동자가 황금빛과 자주색으로 번져 아롱거리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푸른빛이 번득였다가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다가 하는 것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채(문채文彩)는 본적이 없는 듯했다.
이어서 연암은, 역시 연암답게도 이 숨 막히게 빛나는 (공작을 설명하는 연암의 문장을 직접 읽어보면, 온 세상이 환해지면서 숨 막히는 기분이 든다.) 공작을 보면서 ‘글’에 대해 생각한다.
무릇 색깔(色)이 빛(光)을 낳고, 빛이 빛깔(煇)을 낳으며, 빛깔이 찬란함(耀)을 낳고, 찬란한 후에 환히 비치게(照) 되니, 환히 비친다는 것은 빛과 빛깔이 색깔에서 떠올라 눈에 넘실거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지으면서 종이와 먹을 떠나지 못한다면 아언(雅言)이 아니고, 색깔을 논하면서 마음과 눈으로 미리 정한다면 정견(正見)이 아니다. (박지원, 『연암집』(상), 「공작관기」, 돌베개, 84~85쪽)
만물에는 제각각의 색깔이 있다. 이 색깔은 빛을 내고, 그 빛은 아스라한 빛깔을 내고, 또 찬란하며, 마침내 우리 눈에 환하게 넘실거리며 비쳐온다. 이런 만물과 만나서 쓰여지는 글이, 어떻게 종이와 먹, 흰색과 검은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겠는가?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일 뿐이라면 그것은 바른 말이 아니다. 또, 사물을 볼 때 미리 어떤 색깔을 보고자 한다면 분명 바르게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공작의 빛깔은 넘실거리며 연암에게 닿았고, 연암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 애썼다. 자개 같기도, 무지개 같기도 한 그 빛깔은 연암의 글 속에 적혀 들어갔다. 이후 연암은 북경 선비들과 술을 마시며 글에 대해서 논할 때, 공작을 예로 들며 그들의 글을 평한다. 아, 글이란 무릇 공작을 만나서 쓴, 공작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문채文彩는 없다!)
문득 연암이 중국을 다니면서 쓴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의 몇 대목이 떠올랐다. 『열하일기』는 온갖 다양한 문장들로 넘쳐나지만 (필담부터, 관찰기록, 만난 사람목록까지) 유독 내 눈에 거슬렸던 것은 연암이 청나라의 벽돌과 온돌, 수레 등에 대해 아주 자세히 운운하는 대목들이었다.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점이 좋은지… 나중에 조선에 가서 써먹으려는 것이겠거니 생각해보았지만, 그 열정적이고 세밀한 묘사의 필요(?)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제 보니 연암의 눈에는 조선의 것보다 훌륭한 청나라의 벽돌, 온돌, 수레, 수차들이 마치 공작처럼 환하게 빛나 보였던 것이었다. 그 사물들이 넘실거리면서 연암에게 생생하고 세밀한 기록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연암에게만 그런 것들이 빛나 보이는가? (이번 글을 쓰면서도 한 번 놀랐다. 공작이 어떻게 생겼던가, 사진을 찾아보다가 ‘어떻게 저 새를 보고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공작관기」에 연암의 처남이자 지기인 이재성이 달았던 평은 그 질문에 대한 촌철살인이 될 수 있다. “눈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심령(心靈)에 트이고 막힘이 있기 때문이다.”(같은 책, 86쪽)
만물은 제각기 시시때때로 색깔과 빛깔을 내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다만 우리의 마음-눈이 장님처럼 그것을 보지 못할 뿐! 우리에게도 어디는 빛이 나는 듯 환히 보이지만, 어디는 굳이 눈길을 주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보인다. 그럴 때, 이제는 의심해보자. 내 마음은 왜 저 빛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걸까, 하고.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일인 것이다. 마음을 트고 만물의 색과 빛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일. 매번의 글이 그렇게 공작 한 마리를 발견하는 일이 된다면 기쁘겠다.
글_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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