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철학 우화』- 기울어진 그릇 이야기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 환공의 사당에 들렀을 때다. 사당의 그릇을 보니 기울어져 있어서 그것을 신기하게 여긴 공자가 사당지기에게 묻는다. '저것은 무슨 그릇이오?' 사당지기가 말하길, 환공이 생전에 늘 가까이 두고 좌우명으로 삼던 그릇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릇이 어떤 용도인지 알아챈 공자는 제자에게 물 한바가지를 떠오게 하고, 그릇에 물을 부어 본다. 물이 반쯤 차자 그릇이 반듯하게 선다. 주둥이까지 물을 부으니 펑 소리를 내며 그릇이 뒤집힌다. 그 모습을 본 제자 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그릇'의 이치를 묻는다. 옮겨 놓은 글은 그에 대한 공자의 답이다.
지금이야 달리 생각하지만, 아니 적힌 그대로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역시 마음 한구석에 약간 걸리는 느낌이 있다. 뭐라고 해야할까, 모든 것을 '평균'으로 만들려는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그러니까, 그 '평균화'의 의지 때문에, 불과 5년 전이었다면 '싫다, 싫어' 정도의 느낌으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약간 다른 느낌이다. 개인적인 윤리의 차원에서 보자면, 위와 같은 태도를 갖고 사는 것이 백번, 천번 옳다고 여긴다.
타고나는 것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되는대로' 살다보면 누구나 '기울어진 그릇'이 되기 쉽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명성이 생기고, 가진 부가 늘어날수록 그렇게 기울어져 간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고, 겸손과 사양, 검소함을 익히는 가운데 삶이 반듯해 진다. 여전히 내 인생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거리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니까 '중용'中庸이 '도'道가 되는 것일테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 씨앗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네카, 현인賢人은 운명이 아니라, 실수에서 벗어나 있다 (0) | 2020.02.26 |
---|---|
김연수, 『소설가의 일』 - 문장의 일 (0) | 2020.02.19 |
우치다 타츠루 외,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 평정심과 더불어 필요한 것 (1) | 2020.02.03 |
질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도덕과 윤리의 차이 (0) | 2020.01.20 |
니체, 『아침놀』- 말에 걸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다 (0) | 2020.01.15 |
니체X들뢰즈 - 신은 죽었고 매번 차이나는 것이 되돌아 온다 (0) | 2019.12.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