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삼중주를!
- 오창희(감이당 금요대중지성)
2012년 감이당에 오기 전까지, 이런 저런 책들을 읽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를 썼지만, 그건 ‘읽은’ 게 아니었고 ‘쓴’ 게 아니었구나! 곰샘의 책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북드라망)가 깨우쳐 준 진실이다.
그래도 다 쓸데없는 건 아니었겠지. 친구들은 모두들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도 하는데, 나만 류머티즘이라는 놈에 발목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도 하고 외롭기도 하던 그 당시의 복잡한 심사. 책을 읽다가 내 맘을 절묘하게 표현한 구절들을 만나면 시원도 했고, 비슷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를 만날 때면 위로도 됐다. 일기 역시 들끓는 감정들을 맘껏 털어놓을 수 있는 배설구가 되어 주었고. 그러니 “고작 감상적 토로나 자기 위안 정도”(107쪽)의 읽고 쓰기였을망정 그 덕분에 지금 정도의 몸 상태라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나의 뇌 구조와 오장육부, 나의 일상과 관계를 강도 높게 리셋하”(20쪽)진 못했지만, 적어도 진통, 해열제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니까.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해야 읽었다 하고 썼다고 할 수 있을까.
두 발로 선다는 것
산다는 건 ‘서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선다’는 건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온몸을 지탱하는 것, 곧 자립(自立)을 의미한다. 그것이 인간의 길이다.(25쪽)
땅은 구체적이고 리얼하다. 이것이 생활의 원리다.(…) 하늘은 무한하고 무상하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인식의 지평이다.(…) 땅의 두터움과 하늘의 가없음을 동시에 누릴 때 삶은 비로소 충만하다.(…) 이것이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길이다.(28쪽)
스무 살 초반 4년을 병상에 누워 지내다가 물리치료실 복도에서 처음 두 발로 서던 날, 발바닥에서부터 허벅지를 타고 팔뚝을 거쳐 지지대를 잡은 두 손으로 뻗쳐오르던, 처음 느껴보는 그 힘의 정체가 늘 궁금했다. 태어난 이후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기어코 두 발로 서려고 안간힘을 썼을 테지만, 정작 걷기 시작한 이후에는, 왜 그렇게도 기를 쓰며 걸으려고 했는지를 깨우쳐주는 그 어떤 배움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잊고 있었던 욕구. 인간이 두 발로 서면서 품게 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몸을 굽혀 땅을 살펴 구체적이고 생생한 ‘생활의 원리를 깨우쳐서’ 그 둘을 동시에 누리는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 그 본능적인 욕구가 다시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되살아났던 게 아닌지….
“천지도 모르고 나댄다, 아직 천지를 몰라, 천지 분간을 못 한다” 등등의 ‘천지 시리즈’에도 천지 사이에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의 일이며, 그래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천지의 이치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아직 천지를 보면서 길을 찾던 그 시절에는 ‘천자문’으로 공부의 첫발을 뗐고, 그 시작이 ‘하늘 천 따 지’였나 보다. 그런데 20세기를 지나면서 우리 삶에서는 천지가 사라져 버렸고, 그 길을 갈 생각도 방법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니!
천지 만물을 연결하는 글쓰기
<감이당> 대중지성은 고전 리-라이팅을 지향한다. 고전의 바다는 넓고 깊다. 그 지혜는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세상을, 몸과 우주를 이어준다. (…) 발은 굳건하게 땅을 디디고 시선은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의 길을 찾아가는, (…) 고전과 현대, 지혜와 일상, 나아가 천지인이 자연스럽게 교감하는 글쓰기의 길.(318쪽)
곰샘 왈, ‘천지의 지혜를 담아 놓은 책이 있으니 낙담하지 말라. 동서양의 고전을 지도 삼아, 그 동안 내팽개쳤던 하늘과 땅을 다시 이으면 되니까.’ 무엇으로? 언어로. 읽기와 쓰기로. 그러니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말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어주”며, “그 모든 것이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51쪽)준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당부한다. 눈앞의 것만 좇지 말고 근본적인 것을 탐구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 쉬워 연결이지, 알아야 연결을 하든 접속을 하든 할 것 아닌가. 언제 나를 알려고 해 봤으며, 진정 “간절히 궁금해하는(운성스님)” 마음으로 동서양의 고전들을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감이당에 와서 글쓰기 미션을 처음 받았을 때 참 생소했다. 고전에 담긴 이치를 자기 삶의 문제와 연결하라는, 들어본 적도 배운 적도 써 본 적도 없는 글쓰기라니. 기껏 섞는다고 섞어 놓고 나면 일기가 되거나 감상문이 되거나.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주역』을 만났고 ‘내 인생의 텍스트’로 정했다. 그리고 올 봄, 생전 처음으로 “고전에 담긴 지혜와 비전을 내 삶의 현장에 생생하게 연결해 주는” 고전 리-라이팅을 시작했다.(315쪽)
2학기 미션은 수천 년에 걸친 『주역』의 역사와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님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저술 동기와 배경 등을 내 문제의식과 연결해서 A4 두 쪽 반에 담는 것이었다.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앞에 두고 발표 전날까지 끙끙댔다.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그걸 하나로 엮을 수가 없었다. 발표 당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공자님의 마음이, 세상 모든 이에게 『주역』의 지혜를 알려주고 싶다는 간절한 ‘그 마음’이 내 몸에 너무도 생생하게 전해졌고, 비로소 ‘그 마음’을 키워드로 정보의 조각들을 하나로 꿰어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주역』과 공자님은 수천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나의 벗이자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혜의 파동에 접속하는”(170쪽) 읽기와 쓰기라야 진정 읽고 쓴 것이라 할 수 있음을! 그래야만 그 지혜를 내 삶의 현장에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는 곰샘이 오랜 시간 지식인 공동체를 꾸리며 터득한 비전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끊어진 천지를 잇고 그 사이에서 길을 찾는 천지인 삼중주에 동참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원대한 비전과 튼실한 일상이 하나 되어 충만한 삶을 살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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