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신간 『대중지성, 소세키와 만나다』지은이 인터뷰

『대중지성, 소세키와 만나다』 지은이 인터뷰


1.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가 쓴 장편소설 14권 전 권에 대한 꼼꼼한 리뷰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작가의 작품을 전부 읽고 글을 쓰려면 작가에 대한 굉장하고 오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듯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선생님께서는 나쓰메 소세키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기 전에는 소세키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 어떤 계기로 소세키와 접속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2013년 초에 ‘감이당’에 갔을 때 처음 소세키를 알게 되었습니다. 감이당은 서울 남산골에 있는 인문의역학 공부공동체인데요. 삶과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대중지성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일명 대구의 강남, 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학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사업이 엄청 번창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신없이 일에 끌려 다니는 화폐-기계가 되어 있었고, 존재가 헛헛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지요. 물질적인 성취와 정신적인 충만감이 어긋나고 있다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매주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서 공부하고 밤기차를 타고 내려오기를 4년 동안 지속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인문학과 찐한 연애에 빠졌던 시간이었지요. 제가 처음 만난 화두는 ‘근대’였습니다. 그때 동아시아의 근대문학의 거장, 소세키와 루쉰 등의 작가를 만났습니다. 소세키는 물질문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던 시대에 등장한 모던보이와 신여성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상하게 황폐했습니다. 끝없이 자아를 의식하고, 타자를 의심하고,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경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헛발질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마치 제 자신을 거울에 비춰본 것 같았습니다.


아주 우연한 마주침에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고 인생이 바뀌나 봅니다. 소세키를 알게 된 이듬해 저는 학원을 매각하고 전격적으로 ‘공주’(공부하는 주부^^)로서의 인생 3막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인문학 강사로 변신했고, 또 이렇게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으니 소세키가 제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준 작가인 셈입니다.

  


2. 앞의 질문과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소세키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던 선생님께서 소세키의 소설들을 읽고 그것을 가지고 선생님만의 문제의식을 살린 글까지 쓰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랄까, 또는 계속해서 읽고 쓰실 수밖에 없었던 소세키 소설의 매력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소세키에게 마음이 끌린 지점은 일종의 ‘찌질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세키는 1900년대 초 자본주의로 진입했던 일본의 시대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과 과학발전으로 상징되는 근대는 이른바 풍요의 시대가 아닙니까? 그런데 개인이 겪고 있는 내면의 풍경은 찬란하지 않았습니다. 한없이 왜소하고 고독했습니다. 소시민들은 무력감과 피 말리는 죄책감 같은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거세게 밀려오는 서구문명의 물결 위에 기름처럼 부유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찌질함’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설에 빠져들게 되더군요. 


소세키는 국가와는 동떨어진 개인의 내면을 다루었습니다. 제국주의가 대세였던 일본사회에서 아주 작은 것을 클로즈업하는 시선입니다. 소세키는 신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도 거스르지도 못하는 불안감을 포착했고, 화폐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인간관계의 뒤틀림을 집요하게 파헤쳤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100년 후에 어떻게 가족도 친구도 사회관계도 왜곡시키게 될지 예견하고 시대적 징후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작품들입니다.




3. 이 책의 부제로 짐작건대, 선생님께서 소세키의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꼽으신 것은 ‘불안’입니다. 그 불안이 소세키로 하여금 계속 질문을 던지게 했을 테고요. 그런데 당시 일본의 성장세나 제국대학에 영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소세키 개인의 이력을 보면 ‘불안’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요, 소세키가 감지한 불안은 어떤 것이었나요? 그리고 그것이 백 년 후의 우리에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소세키는 일본제국대학 출신의 보기 드문 최상위 엘리트입니다. 국비장학생으로 뽑혀 영국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마음만 먹으면 권세와 부를 누릴 자격을 갖췄다고 봐야죠. 실제 그의 동료들은 식민지 정책의 고위관리가 되어 출세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인생역정은 아주 드라마틱한데요. 소세키는 어느 날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합니다. 장편소설을 쓰고 월급을 받는 전속작가가 된 겁니다. 국립대 교수를 마다하고 소설을 쓰다니 제 정신인가 주변사람들이 깜짝 놀랐을 정도로 획기적인 선택입니다. 


사실 소세키는 영문학을 가르치는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라마다 문화와 전통과 역사가 다르면 문학도 다를 터인데 서양문학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에 저항감을 가졌던 것이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고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 노동하느라 신경쇠약이 깊어졌습니다. 누구보다 소세키 자신이 극도의 불안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자기본위의 문학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소설을 썼습니다.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특징짓는 굵직한 키워드는 근대문명 비판, 마음의 탐구, 개인주의입니다.


공동체적 사회질서가 무너진 후 근대인은 자유를 얻은 대신 고독을 지불해야 합니다. 소세키는 바로 이 양면성을 포착했습니다. 끝없이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흔들리는 자본주의형 인간이 불안의 원천입니다. 돈이 흘러가는 외부 속도를 따라가느라 외면과 내면이 불일치하는 데서 불안은 깊어갑니다. 그 근저에는 비대해져 가는 자의식이 있었습니다. 소세키는 자기 마음도 알지 못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도 없는 인간이 과연 진보한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본성에 맞게 자기 속도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소한 항변입니다. 


그의 질문은 유례없는 디지털 문명의 변동에 휩쓸려 있는 우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소세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와 닮았습니다. 그들이 고뇌했던 근대의 명암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핑크빛 미래를 예고하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불안합니다. 막상 자신이 설 자리가 어디인지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소세키가 근대인의 행로에 대해 던진 질문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 아닐까요.



4. 소세키의 소설을 모두 읽으셨으니 독자분들께 꼭 소개해 주시고 싶은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소세키 소설 속 명장면 베스트 3와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소세키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속마음을 후벼 파는 능력이 있는데요. 그중 『마음』에서 ‘선생’이 친구의 자살을 발견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선생은 한밤중에 잠이 깨어 옆방에서 친구가 동맥을 끊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는 덜덜 떨면서 몰래 유서부터 읽습니다. 친구는 하숙집 딸을 연모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알게 된 선생이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먼저 혼인 승낙을 받아낸 날 밤의 일입니다. 선생은 친구를 배신한 사실이 알려지면 세간 사람들에게 경멸을 당할까 봐 공포심을 느낍니다. 저는 이 대목을 덜덜 떨면서 읽었습니다. 친구의 생명보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까 봐 더 두려운 게 사람이라니, 이토록 세상의 이목을 의식하는 인간이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명장면입니다.


제가 소세키의 소설들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사람들이 애정의 삼각관계에 얽혀서 지지고 볶는다는 점입니다. 남녀상열지사는 예나 지금이나 흥행보증수표지요. 『그 후』에는 다이스케가 옛 친구의 아내가 된 미치요에게 빠져드는 장면이 아주 탐미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돈입니다. 쫄딱 망하고 병든 미치요가 다이스케의 집에 돈을 빌리러 옵니다. 그녀가 시집간 후 첫 재회입니다. 그녀는 흰 백합 세 송이를 들고 오는데 옛날에 다이스케가 그녀에게 백합꽃을 들고 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급히 걸어 온 그녀는 숨을 헐떡입니다.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그녀는 꽃병의 물을 마십니다. 창백했던 그녀의 뺨에 화색이 돌자 다이스케는 오랜만에 자신을 되찾은 기분을 느낍니다. 이 격정멜로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집안에서 호적을 파 버리네 인연을 끊네 사달이 나고 자발적 백수였던 다이스케가 노동전선에 나서게 되는 등 스토리가 흥미진진합니다. 




소세키는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맺을 것인가 고민하는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구샤미는 친구들과의 지적인 농담을 재미 삼아 살아가는 가난한 영어 선생인데요. 어느 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대부호 사업가인 가네다 부인이 방문합니다. 가네다 부인은 구샤미의 후배가 사윗감으로 적당한지 뒷조사를 하러 찾아온 것입니다. 가네다가 누구지? 구샤미는 심드렁하게 반응합니다. 가네다 부인은 기가 막힙니다. 지금까지 자기 집안을 몰라보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굽실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선생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네. 빈정 상한 가네다 부부가 구샤미를 골탕 먹이려는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돈이 지배하는 홈 파인 공간에서 탈영토화해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구샤미 일행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해학과 익살을 무기삼아 속물적인 집단을 무력화시키는 장면이 매우 통쾌합니다.



5.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공부에 뛰어들게 되셨고, 소세키를 읽고, 쓰고,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되셨는데요, 이 과정에 늘 기쁨만 있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특히나 (추측건대^^) 글을 쓰시는 과정은 굉장히 괴로우셨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공부하고, 질문하고, 읽고, 써야 하는 것일까요? 그 과정을 다 겪고 나시니 어떤 점이 가장 좋으셨나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세키는 생애 첫 소설을 썼을 때의 심경을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 남겨놓았는데요. 피를 쥐어짜 내듯이 글을 쓰고 바닥에 쓰러져서 짐승처럼 신음하는 소리가 처절합니다. 글을 쓰는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대문호도 이럴진대 저 같은 학인은 말할 것도 없지요. 마른 행주를 쥐어짜듯이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정직하게 자신과 대면하는 일입니다. 자기만의 사유와 해석이 없다는 비참함도 맛보고 철석같이 믿어 왔던 가치관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당황스러움도 겪었습니다. 뭔가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자기과시의 욕망과도 대적해야 했지요. 부끄러움으로도 화상을 입습니다. 글쓰기가 자의식을 떨쳐 버리는 수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게 가장 큰 성과입니다.


니체는 인간은 매 순간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했지요.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좋은 강의를 듣는다 해도 한 줄이라도 구슬을 꿰지 않으면 흩어져 버립니다. 글쓰기란 구슬을 꿰듯 의미 있는 가치를 생성해내는 일입니다. 읽고 쓴다는 것은 자신을 극복하는 용기이자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더욱이 대중지성의 글쓰기는 학벌과 권력, 자본이 결합된 카르텔에 균열을 내는 창의적인 가치생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책을 필두로 ‘감성 시리즈’가 활발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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