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누구나 글을 ‘낳아야’ 한다!
석영(남산강학원)
역시 곰샘은 파격적(?)이다. 제목을 보라.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부제: 양생과 구도 그리고 밥벌이로서의 글쓰기)! 혹여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해 달라는 것일까. 긴긴 제목으로 할 얘기를 전부 짚고 들어가신다.
뿐만이랴. 책에선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재적 차원에서 글쓰기를 열망한다. 모두 글을 써야 한다!’라는 말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던지신다. 읽고 있자면 샘이 글을 쓰며 느끼는 충만함이, 또 그걸 ‘모두’와 나누고 싶어 하는 맘이 절로 느껴진다.
창조하지 않으면 허망하다
물론, 리뷰를 쓰는 나는 주춤했다.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을 비웃을 얼굴들이 스쳐간다. 책을 추천하면 자신은 ‘문자 공포증’이니 괴롭히지 말라는 친구. 공부가 재밌냐며 신기해하시는 부모님 등. 그 외에도 대다수 사람들이, 글 안 쓰고도 잘 살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 나는 글쓰기가 아무리 재밌어도 나의 취향으로 남겨 두려 했다. 헌데 곰샘은 ‘안 쓰는’ 모든 삶에 딴죽을 거신다. 어떻게 수습하시려고…!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무 맞는 말이잖아!’ 설득하기 어려운 명제라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그렇다.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은, 곰샘의 명령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명령’이다!
낳고 낳고 낳고 … 오직 낳을 뿐! 이것이 우주의 이치다. 초월자라 부르건 창조주라 부르건 아니면 빅뱅이라 부르건 우리의 우주는 오직 만물을 낳고 기를 뿐이다. 인간 또한 그렇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우주적 행위에 동참한다. 그것이 본성이고 생존의 법칙이다.
─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북드라망, 2019, 118쪽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낳고자’ 한다. 괴짜 예술가나 ‘창의적 인재’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이것은 취향, 성향 문제가 아니라 ‘우주의 이치’다. 인간은 우주(자연)에 ‘속해’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우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도 인간이 그 바깥, 혹은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 자연의 이치가 계속 흐르며 ‘낳고 또 낳는 것’이니, 인간의 본성도 단연 그러하다.
생각해 보라. 새로운 상품과 패션에 열광하고, 만사가 귀찮다면서 주말이면 D.I.Y. 클래스로 몰려들고, 늘 상 사진을 찍어대고 낙서를 끄적이는 사람들, 다른 이의 아주 사소한 창작물에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이 모든 것은 ‘새로운 것’, ‘창조’에 대한 열망이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창조’는 온통 ‘소비’로 가로막혀 있어서 내 몸이 근원적으로 원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낳는 것’인지 ‘새로운 것을 취하고, 감상하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을 뿐.
의심이 든다면 생각해 보라. 새로운 것은 가져도 가져도 갈증이 난다. 가진 게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갖고 싶은 게 아니라 ‘낳고 싶은’ 거다. 낳지 못하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허무하다! (아, 행여 걱정은 말라. 우리는 분명 ‘낳을 수 있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니까!^^)
글쓰기로 자연의 이치에 접속하라!
당신의 본원적 창조력을 인정하겠는가? 그럼 이제 무엇을 낳을까? ‘낳는 것’의 기본은 단연 여성의 출산과 글쓰기다. 얼핏 보면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이 두 가지 활동에 절묘한 공통점이 있다. 강력한 ‘수렴성’과 ‘신체의 변용’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곰샘은 아기와 책의 ‘임신기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몸에 아기의 씨앗을 품었다면 기운을 수렴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기운이 산만하면 씨앗이 잘 클 수 없다. 그래서 임산부들은 9~10개월의 기간 동안 음식도, 관계도, 활동도 절제한다.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쓰는 것은 ‘쉼 없이 재잘거리는 뇌의 카오스적 운동’에 방향과 강도를 부여해 ‘사유’로 키워내는 것이다. 기운이 망동하면 의식이 카오스상태에 머무를 뿐, 글이 되지 못한다.
‘절제’라 하니 고단하게 들릴지 모른다. 누리던 걸 못 누릴까 걱정도 될 것이다. 허나 염려 마시라. 절제란 ‘원하던 걸 갖지 못하게 되는’게 아니라, 원하던 걸 ‘갖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다. 고되고 아쉬운 건 잠깐. 곧,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이건 소비와 소유의 늪에서 벗어나 ‘창조하겠다’는 욕망을 되찾아야만 가능하다. 돈을 많이 벌겠다, 인기를 얻겠다 하는 자잘한 원(願)으로 하는 절제는 가혹한 금욕만 되기 쉽다. ‘존재의 본질’에 닿지 않는 활동들이니, 욕망의 벡터를 완전히 돌려줄 힘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도 영성이 필요하다’는 게 곰샘의 주장이다!)
출산과 글쓰기의 의미는 아기나 글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생산물’에 있지 않다. 생산의 과정에서 ‘내 몸의 욕망이 바뀌는 것’ 그 자체에 있다. 겉보기엔 정적으로 보이는 글쓰기의 과정은 사실 우리 몸 전체가 생산의 주체이자 생산물 자체가 되는 역동적 과정인 것이다. 우리 몸은 이러한 역동성을, 즉 ‘낳고 낳는 우주 자연의 흐름에 자신도 동참’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글 출산, 새로운 ‘나’를 낳는 일!
나는 커피 중독이었다. 몸에 안 맞아 끊기를 수십 번 시도해도 늘 실패였다. 글을 쓰며, 커피가 나를 산만하게, 책, 사람, 사건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단 걸 알았다. 그 때 뚝 끊었다. 1년 이상 되었고, 이제 잘 생각도 나지 않는다.
커피를 끊고 카페에 가는 횟수와 식탐이 줄고, 길을 걸으며 음식점과 카페로 온 정신이 쏠리는(^^;) 습관도 많이 사라졌다. 끊임없이 음식을 갈애하던 상태에 놓여있던 내 몸이 기운을 안으로 수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완전 새로운 ‘나’다. 새로운 ‘나’의 출산!
딱 그만큼 나는 자유롭다. 외부로 치닫던 에너지는 나와 소통하고, 감정과 사유를 바라보고, 그만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진전시키고 있는 힘으로 쓰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여성도 남성도 창조 대신 소유, 생성 대신 쾌락이라는 블랙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회로에서 벗어나는 길이야 말로 앞으로 인류가 수행해야 할 진정한 혁명이다.
─ 앞의 책, 122쪽
커피는 하나의 작은 예시다. 우리의 몸은 온통 소유와 쾌락을 향해 달려가도록 세팅이 되어 있다.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내 삶을 되찾는 가장 쉽고 가까운 길이 바로 글쓰기다. 그러니 ‘거룩하고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다 그들이 나를 놀릴까 두려워 글 쓰는 기쁨을 혼자만 누리려 했는데... 과감하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설파하지 않을 수 없는 곰샘 맘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갈애에 허덕이고 통하지 않아 외롭고 괴로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다. 누구든 글을 써야 ‘낳고 낳는’ 우주 자연에 접속할 수 있음을. 새로운 신체를 맞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그러니 단연, 누구든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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