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가족, “사무쳐서 찢어지고 찢어진 데서 새고야 마는”

가족, “사무쳐서 찢어지고 찢어진 데서 새고야 마는”



빚 준 자와 빚진 자가

이생에 전(全)생의 빚이 꺼질 때까지

전생의 빛을 걸고


한집에 모여

피와 땀과 눈물을

밥과 돈과 시간을 같이 쓰면서


서로의 채무자가 되어 

어딜 가든 알려야만 하는


사무쳐서 찢어지고

찢어진 데서 새고야 마는


한평생을 써내려가는 

빚 좋은 살구빛 탕감 서사


_정끝별, 「가족장편선」,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문학동네, 2019, 57쪽



아이가 생기고 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지만, 아직 ‘가족’이라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아이-나-애아빠의 구성보다는 나의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엔 남동생들(올케들과 조카들이 생기기 전의)이 떠오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신 재난상황을 가정하며 동생들을 내가 돌보아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을 가졌다. 아무도 내게 그런 의무감을 심어 주지 않았고, 심지어 동생들 역시 나에게 의지하거나 그런 타입도 전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건, 책임감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부모’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나. 나이가 먹고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도 아니고(적어도 내가 대학에 갈 때까지는 아버지가 안정적인 중견 기업을 다니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이셨다), 가정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아버지는 간혹 큰소리를 내기는 해도 물리적 폭력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지나친 간섭을 받은 적도, 방치된 적도 없는데,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 부모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금 가엽기도 했고, 조금 귀찮기도 했고, 더러 밉기도, 부끄럽기도 했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좋아지지는 않았다(그에 비해 동생들에 대해서는 늘 내가 기꺼이 돌보고 싶은 존재라는 의식이 강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세상 어느 가족에게나 ‘문제’가 있다는 걸, 그것도 하나 정도가 아니라 보통은 여러 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늪’ 같은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가족의 문제가 덜 심각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도 작은 위안은 된다. 안 그런 인생은 없다는 점에서, 살아 있다면 겪어갈 수밖에 없는 거라는 점에서.


문득 내가 가정을 꾸리고도 이 가정의 구성원들을 ‘가족’이라는 말과 연결시켜 떠올리지 못하는 건 ‘아직은’ 이 구성원들에게 좋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우리 딸에게도 이 가족이 벗어나고 싶은 ‘늪’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지혜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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