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말하는 보르헤스』, 우리가 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페이지가 적힌 종이와 거죽으로 만들어진 육면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나는 그것이 읽을 때마다 바뀐다고 믿습니다.

이미 수없이 말했듯이,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누구도 똑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적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강물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우리가 강물보다 유동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읽을 때마다 책은 바뀌고, 단어에 함축된 의미는 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과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이 쓰인 날로부터 우리가 읽은 날까지 흘러간 모든 시간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_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말하는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민음사, 2018, 26~27쪽




책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산 지 어언 20년째. ‘장인’이 될 법도 한 시간을 보냈건만, 시간 덕분에 익숙해진 부분은 당연히 있으나,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은 뭘까. 그것은 독자에게 책이 전해지도록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만든 책들은 두 번 보고 세 번 보아도 예쁘기만 한데, 이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일은 참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아직은 덮어놓고 팔리는 것보다는 읽히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물론 대부분의 경우... 팔려야... 읽히기도 한다는 것이... 쿨럭). 태어나 한번 펼쳐짐을 당하지도 못한 책은 얼마나 불쌍한지.... 차라리 막 읽혀져서 모퉁이가 해지고 찢기고 페이지마다 낙서와 밑줄이 가득한 책이 좋지, 반짝반짝한 상태로 서점이나 출판사의 물류창고에 가만히 놓여 있는 책은 안쓰럽기 짝이 없다. 


그러고 보면 문득 사람도 그런가 싶다. 사람 사이에서 이리 치이다가 저런 상처 받기도 하고 더러 오해도 당하고 또 가끔 이해도 받고 이러면서 사는 게, 아무도 만나지 않고 관계 맺지 않아서 상처도 없고 짜증 나는 일도 귀찮은 일도 없이 사는 삶보다, 나는, 더 좋다. 책처럼 사람도 읽을 때마다 바뀌고, 읽혀야 살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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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강가에나무 2019.08.01 12:11 답글 | 수정/삭제 | ADDR

    한 권의 책을 두고두고 읽으며
    미처 밑줄긋지 못했던 문장들을 새롭게 만나게 될 때마다,
    사람 역시 시간을 두고, 오래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무더위 속에서도 온 마음을 다해
    오래오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좋은 책을 만들어 주시는
    북드라망 식구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부디 이 여름도, 무탈히 보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