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드라망은 『다른 이십대의 탄생』 출간을 자축하기 위해서 이 세 명의 저자들처럼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혹은 경험이 있는) 이십대 분들에게 리뷰를 부탁드렸습니다. 남산강학원, 규문, 문탁네트워크에 여러 방식으로 접속하고 있는 이십대(사실... 한 분은 십대...) 분들께서 뜨끈뜨끈한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6일간은 이 리뷰들이 올라갑니다. 이십대들이 본 이십대들의 이야기, 함께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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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십대의 탄생』
: 공부하는 삶을 선언한다
『다른 이십대의 탄생』은 김고은, 김지원, 이동은, 세 이십대의 이야기다. 보통의 이십대라면 대학이나 회사에 다닐 시기이지만, 이들은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넷)에서 살고 있다. 셋은 그곳에서 같이 공부하고, 생활하고, 활동한다. 문탁넷에 접속한 경로는 각자 다르지만, 그들을 그곳에 모이게 한 건 하나의 같은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이 질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십대라면 그렇다. 학교의 학생, 부모님의 자식으로 살아오다가 이십대가 되면 갑자기 네 삶은 네가 책임지라는 명령이 들이닥친다. 나는 사실 그 명령 앞에서 좀 방관적이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뭐 어떻게 살아도 괜찮지 않겠어? 세상에는 이런저런 삶들이 있을 수 있고, 그중에 뭐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잖아?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이런저런 삶들을 껴안을 수 있을 만큼 품이 넓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삶이 좋은지, 싫은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공부하는 삶’이 내게 절대적으로 좋았던 것은 아니고, 내가 ‘너무 빈약하다’고 여겼던 삶(노동과 소비로 이루어진 삶)이 그렇게 살 수 없을 정도로 나빠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게 단지 내가 사회에서 굴러보지 않아서, 자본주의 삶의 끝까지 가본 적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십대의 탄생』을 읽으면서 그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 앞에서 미적지근했던 나와 다르게, 세 저자는 그것을 치열하게 질문하면서, 삶의 길을 적극적으로 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것도 공부와 글쓰기를 통해서 말이다. 나는 저자들의 그 ‘지난한’ 과정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선언의 문제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사는 삶
고은이 문탁넷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100일 수행”이 첫 미션으로 주어졌다. 그것은 100일 동안 아침 9시까지 문탁넷에 나와 청소하고 공부를 하라는 미션이었다. 원래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동은을 위한 지령이었지만, 막 자퇴를 해서 딱히 갈 곳 없는 고은도 동참하게 되었다. 수행기간 동안 매일 문탁넷의 공간에 머물게 되면서, 고은은 그곳을 “삶의 근거지로 삼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고은이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다. 고은은 공부방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자리를 지켰고, 어디에 색도화지가 있는지도 잘 알게 되었지만, 같이 공부방에 앉아있던 사람들을 자신의 ‘근거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문탁넷 선생님들이 사적인 질문을 하면 웃음으로 넘기곤 했고, “왜 밥을 혼자 먹으러 가냐”는 질문에 놀라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같이 ‘수행’을 하게 된 동은은 고은과 거의 정반대였다. 동은은 안 끼는 대화가 없고, 그냥 지나치는 게 없는 “참견대장”이었다.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 고은은 동은을 따라서 오지랖을 부려보기로 한다. 여기저기 참견해보고, 사람들과 수다 떨고, 같이 밥을 먹고… 그러다가 사람들과 활동을 조직하게 된다. 고은은 주어진 공부,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는 게 다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어떤 곳이든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고 활동을 꾸릴 수 있게 될 때, 그때서야 그곳이 ‘근거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프롤로그에 나오듯이 우리는 타인과 함께하는 것보다 타인을 차단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어느 정도 타협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나도 싫은 소리 듣지 않기. 이거야말로 윈윈 아닌가?
그런데 세 명의 저자가 『다른 이십대의 탄생』을 쓴 과정은 이와 반대였다. 이 책은 각자가 쓴 원고를 서로 읽고 피드백하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 나왔다. ‘함께 쓰는’ 이 과정은 너무 다른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자, 글을 통해서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또 “변화를 요구하는”과정이었다고 한다. 고은은 괜찮은 결과물을 냈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진 못하겠지만, 글을 쓰는 과정이 생산적이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생산해낸 것(배움이든, 변화든, 관계든, 결국 책이 되지 못한 글이든), 그것들은 정말 어떻게 무엇으로도 환원시킬 수 없는 값진 것일 테다.
사람을 앞에 두고, 만나는 것 말고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 귀찮으면 눈 감아 버리고, 짜증나면 벽을 쳐버리면서, ‘옳은 나’와 ‘그른 타인, 그른 세계’를 매번 공고히 하면서 살기는 사실 힘들다. 정말 말 그대로 살기 힘들다. 그런 삶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아무런 ‘근거지’도 만들지 못한다. 여기에는 여지가 없다. 눈앞의 타인과 최대한으로 만나려 노력하고, 타인을 내 삶에 기꺼이 개입시키는 것 말고는, 살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삶이 이런 식의 관계 맺기라는 것을 잊고 살곤 한다.
삶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앞으로 뭐 하고 살 거니?”라는 질문은 ‘방황’하는 듯 보이는 이십대에게 주구장창 주어지는 질문이다. 물론 앞으로 뭘 하며 살 건지는 이십대 때만이 아니라 늘 고민거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십대에게 이 질문은 (동은이 백수가 되었을 때 마주했던) “하고 싶은 걸 찾아라”는 말과 같다. ‘앞으로 할’ 무언가, 그리고 찾아야 할 ‘하고 싶은 것’은, 빨리 정해서 달려가야 하는 도달 지점과 같다. 거기에는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고, 덤으로 성공도 하면 좋지 않겠냐는 말도 얹혀있다.
동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회사나 대학에 가는 대신, 문탁넷의 청소년 인문 프로그램 <파지스쿨>에 접속했다. <파지스쿨> 프로그램 중에는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N프로젝트’라는 것이 있었다. 처음 ‘N프로젝트’를 선생님들과 계획할 때 동은은 무엇을 하는 것이 ‘유용’할지 고민했다. 컴활을 딸까, 토익 공부를 할까, 등등. 그러자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선생님이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해보고 싶은 것”은 없냐고 묻는다. 그제서야 동은은 그동안 자신에게는 ‘나중’의 일이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나중’을 위한 일이 아니면 그게 무엇이든 불필요한 일로 생각됐었다는 것을 알았다. 곧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다 취업과 진학만을 위한 것들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탁넷에서는 여러 활동이 꾸려지고 진행되고 있다. 그중 <길드다>는 청년들끼리(이 책의 저자 세 명+한 명의 청년) 공부로 경제활동과 자립을 모색하는 활동이다. 문탁넷에서 첫 자금 500만원을 지원받아 ‘사업인 듯 사업 아닌 사업 같은 것’을 꾸리기 시작한 <길드다> 멤버들은 아주 맨땅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전례가 없으니까! 어떤 일을 벌일 것인가, 어디에 돈을 쓰고,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모든 것이 회의 거리였다.
<길드다>는 공부로 경제활동을 하려는 ‘길드’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길드는 아니다. 지원은 <길드다> 활동이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길드다> 활동 자체가 멤버들의 목적이다. 활동의 과정 자체가 배움이 되고 관계가 넓어지는, 능력의 증대라는 것이다. ‘나중’ 없이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본 적 없던 동은은 <길드다>와 <예술프로젝트>를 매듭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내 현장인 것 같다”고. 그 현장이라는 건, 지금 여기가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공부가 일어나는 곳, 내 삶이 놓여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들의 활동 이야기를 읽으면서, 삶의 어떤 부분이 수단화되어버리는 것은 정말 무기력해지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 그리고 남는 여가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 겉으로 보기엔 쉽고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삶을 기꺼이 선택하기는 이제 어렵겠다는 것을 알았다. 지원은 문탁넷의 활동들을 지속하게 해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공통의 질문, 크게는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는 공통의 필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돈보다 삶을 욕망한다. 우리는 삶에 관한 질문을 놓고 살기 어렵다. 그걸 위해서 공부를 하지 않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이 공부가 되고, 삶의 현장이 되는 길, 그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하고 글 쓰는 삶
사람들이 싸우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 하고, 돈은 덜 되더라도 일 자체를 목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건, 어쨌든 그냥 이렇게 저렇게 되는 대로 사는 것으로는 충분히 사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왕 태어난 김에 태어난 몫은 다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세상 내 멋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고전을 읽는 중이다.”(『다른 이십대의 탄생』, 91쪽)라고 고은은 말한다.
책의 에필로그, 끝부분에서 그들은 “과거와는 ‘다른’, 요구되는 통념과는 ‘다른’ 삶”(231쪽)을 살기 위해서,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글을 쓰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내 기존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어떻게든 자기 길을 내면 그것이 ‘다른 이십대’다, 라는 결론이 나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거쳐 온 일의 기록을 보고 그런 뭉개기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이제는, “태어난 몫”을 다해 보려는 노력에는, ‘다른’ 삶을 사는 데에는, 즉 살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이십대의 탄생』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공부하고 글 쓰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 이윤하(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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