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이영욱 사진집 『접촉』 - 예술, 사진을 다시 묻기

이영욱 사진집 『접촉』 - 예술, 사진을 다시 묻기



‘사진’은 예술인가? 이 질문은 낡은 질문이다. 이미 ‘그렇다’고 답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낡은 것이 아니다. ‘아니다’라고 답하더라도 그 낡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어느 것에 대해 이것이 예술이다, 혹은 예술이 아니다 하는 식으로 경계를 설정하는 모든 시도가 부질없어진지 오래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어쩌면 ‘예술’ 그 자체가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렴풋하게, 그런 (사라진) ‘예술’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어떤 완결적인 작품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정서를 변용시키는 사물, 행동, 음향 등으로 표현된 창작활동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진’은 예술이 맞다. 맞는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 어떤 소리나 음향, 사물이든 그것을 주의 깊게 듣거나 본다면 정서에는 언제나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세상에 예술이 아닌 것이 없다. 예술은 그렇게 사라진다. 




사진집 『접촉』은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 무엇인지, 사진은 어떤 예술인지……. 책은 하나의 ‘작품집’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작품 각각은 작품이 가진 ‘내적 완결성’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듯하다. 말하자면 사진의 구도나 흑백필름의 톤, 명암대비 등등, 이른바 사진을 ‘읽는’ 기호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이는 것이다. 차라리 흔히 말하는 이른바 ‘못 찍은 사진’에 가깝다. 만약 ‘잘 찍은 사진’에 익숙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대체 뭘 찍은 거야’ 싶을 정도의 사진들이다. 어째서 그런 사진들을 ‘애써’ 찍은 걸까? 


이 사진들을 ‘보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사진을 왜 그렇게 찍었는지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길’ 기대한 사진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사진들이 보여주는 것은 ‘사진’이면서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시각에 내장된 어떤 ‘도상’이다. 플라톤주의는 언제나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말하자면 ‘잘 찍은 사진의 신화’ 같은 것이랄까. 대상의 비율은 어떻게 하고, 주제와 관련이 없는 것은 화면 밖으로 빼고, 빛은 어떻게 다루고 등등……. ‘기초교양’처럼 굳건하게 자리 잡은 시각 틀을 드러내고, 결국엔 그것들을 엉크러뜨려야 ‘보인다’. 보일까? 뭐가 보일까? 이번에도 보이는 것은 ‘사진’이 아니다. ‘사진’을 보려고 하면 할수록 정작 보이는 것은 사진에 가서 들러붙는 나의 기억, 혹은 의식의 조각들이다. 그 와중에도 사진은 말을 하지 않는다. 사진을 앞에 두고 오로지 ‘나’만 떠든다. 결국 작품의 성패는 ‘접착력’에서 갈린다. 잘 붙거나, 오랫동안 누르고 있고 싶거나. 


사진집 『접촉』이 보여주는 것은 제목 그대로 ‘접촉’이다. 접촉인데, 이것은 대상과 작가 사이의 접촉,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접촉이다. 왼쪽 항들은 ‘침묵’한다. 오른쪽 항들과 접촉할 때, 침묵이 말하기 시작한다. 다시 ‘예술’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예술은 자기 스스로를 지울 때, 예술이 된다. 사라져야 ‘있게’ 되는 역설이다. 사진은 말이 없다. 말이 없어야 말하게 되는 역설이다. 그럼 점에서 보자면 사진은 마음대로 풀리는 압축파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 때나, ‘의미’가 고갈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펼쳐보면 된다. 『접촉』의 용도다.


접촉 - 10점
이영욱 지음/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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