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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신간 [자기배려의 책읽기] - 은행원 철학자 강민혁을 소개합니다

by 북드라망 2019. 1. 31.


은행원 철학자 강민혁을 소개합니다



처음에 그는 저의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를 처음 안 것은 오래 전 <수유너머> 시절이었습니다. 어느날 고미숙 샘이 그러더군요. 대중지성프로그램 학인 중 은행에 다니는 중년 남성이 있는데 에세이가 매우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아, 글재주가 있는 진지한 학인이 한 명 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개 직장을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 특히 남성들이 공부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 저는 거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기에 그들은 불가피한 야근, 회식, 기타 등등의 사교활동이 너무나 많더군요^^ 사실 아줌마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은행원은 좀 다르더군요. 아주 오래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4년 전엔 책까지 출판했습니다. 와우, 놀라웠습니다.




그는 나의 편견을 깨뜨려준 소중한 벗입니다


그는 단순한 직장인이 아닙니다. '은행원'인데, 음.. 요즘 말로 하면 '금융맨'이지요.  KB국민은행 자본시장본부에 근무하고 있으니까요.어쩌면 그는 금융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니까, 온종일 회사 일에 집중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항상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해서 6시 반 이전에 집을 나섭니다. 지금은 차를 몰고 회사에 가지만, 팀장 때까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반가량 걸려 출근했습니다. 출근하면 7시 반이 넘어 있는데, 그때 시장 단말기를 통해서 간단하게 간밤의 시장 상황을 점검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침 8시 반이면 본부 직원들이 모인 '모닝 미팅'에 참석해서 딜러들과 함께 시장 리뷰를 하고, 오늘을 어떻게 대응할지 마음을 가다듬지요. 

그리고 9시에 한국 시장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시장 움직임을 파악하고, 때때로 들어오는 리스크 요소를 판별해서 의사결정 해줘야 할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합니다. 그러느라 온종일 딜링룸을 돌아다닙니다. 또 내부 행정이나 기획 업무와 관련해서도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며 때론 전화로, 때론 회의로 온종일 정신이 없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오후 시간도 다 갑니다. 오후 네 시가 되면 한국 시장도 마무리가 되고, 이어서 유럽 시장이 시작됩니다. 이즈음에 한 번 더 시장 체크를 하는데, 그때도 우리 부서 포지션에 영향이 없을지 리뷰하고 필요하다면 의사결정을 해줘야 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북(book)을 운용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직원들과 함께 진땀을 흘리며 상황수습에 온통 정신을 빼앗깁니다.

그러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 다시 한 시간 반 걸려 성남 집으로 돌아가면 대개 저녁 아홉 시에서 열 시가 됩니다. 그러나 그즈음 뉴욕 시장이 시작되므로 핸드폰의 블룸버그 어플에서 손을 떼지 못합니다. 미국 트레저리 채권이나 에스앤피(S&P)지수 움직임뿐 아니라, 스왑(Swap)과 원자재 가격들, 그리고 시장의 중요 뉴스들이나 코멘트·분석들은 사실상 이때 마구 쏟아지니까, 가능한 현지 기사나 메시지를 여러 개 찾아 읽어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지요. 혹시 리스크에 노출된 오버나잇 포지션이 좀 있기라도 하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 (강민혁 인터뷰 중에서)



버뜨, 그런데 그는 퇴근 후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는 아침 6시에서 저녁 9시까지의 직장생활을 제외한 자신의 모든 시간을  읽고 쓰는데 전념합니다.


말하자면 평일 아침 6시부터 최소 저녁 9시까지 제 시간은 촘촘하게 일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선 감당할 수 없지요. 하긴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 시간 동안엔 전혀 다른 짓을 하지 못합니다. 회사에서도 저는 굉장히 전투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그래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수련을 받아 온 사람입니다. 그래야 마음도 편안하고요. 

그러므로 제 입장에서 여분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시대 스토아주의 정치가들은 ‘여가’(Otium)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냐, 그리고 그 시간에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공부(글쓰기나 책읽기)를 하고 있느냐로 사람들을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것 자체가 역량이었죠. 

꼭 그 관점이 아니더라도 제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일입니다. 저는 회사일을 제외하고는 필사적으로 글쓰기와 책읽기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팀장 때까지는 출퇴근 시간만큼 중요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현재 제가 읽은 것들과 쓴 것들은 거의 모두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출근 전 짜투리 시간에 저의 모든 전투력을 쏟아서 나온 것들입니다. 아주 보잘것없는 것들도 저에겐 제 모든 것을 걸고 획득한 것입니다. 글도 순간순간 스마트폰 메모앱을 이용해 조각조각 정리한 것을 모아다가, 주말이나 저녁에 조그만 틈을 내 단락문장과 에세이 형태로 바꾸어 냅니다. 어디 발표할 것도 아니면서, 이런 생활방식은 거의 10년에 걸쳐 형성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장이 되고, 차를 몰게 되었는데도 집에 가면 반드시 한두 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그게 제 공부의 전부입니다. (강민혁 인터뷰 중에서)


그렇습니다. 그는 그렇게 낮의 시간과 다른 '밤의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밤의 시간'은 '낮의 시간'에까지 침투합니다. 그의 자본주의적 동료^^들은 늘 그의 첫번째 독자가 되고, 나아가 독자가 아니라 스스로 학인이 되어갑니다.  여기에서 임노동자와 백수의 이분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안고서도 철학자가 되는 길을, 그는 만들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는  이제 나의 스승입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자본주의의 첨병의 이면에서 그는 술을 끊고 모든 잡기를 끊고 오로지 읽고 쓰는 일에 몰두하면서 4년만에 두번째 책을 펴냈습니다.  이번엔  <자기배려의 책읽기>!  무려 800쪽에 해당하는 대작입니다.

어떤 공리적 목적도 없이, "아무런 후회도 없이 매 순간 '자기'가 새롭게 생산되면서 그 순간 단숨에 향유되고 있는 사건들의 집합"인 읽기의 결실! 어떤 철학책도 꾸역꾸역 읽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렇게 읽어나가면서 어느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기쁨의 책읽기" (9쪽)의 결과물입니다.




저는 그의 책을 펼치고 서문을 읽고, 프롤로그를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런 문장을 만납니다.


물론 니체의 암석같은 문장들은 너무 답답합니다. 그러나 뭔가 내 정신과 공명하는 부분이 꼭 한두 부분 있습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런 공명이 있을 것만 같은 단락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와 니체 사이의 종자골입니다. 그런 부분을 공책에다가 모조리 베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여백에다 메모를 해가면 다시 읽어봅니다. 공책을 통째로 쓰니까, 손이 아파서 더는 못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책을 보면서 컴퓨터로 똑같이 타이핑을 해봅니다. 그것을 인쇄해서 거기다가 다시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메모를 해봅니다. 그리고 베끼거나 타이핑한 문장 밑에 그 문장들의 어구나 단어를 바꾸어 내 식으로 문장을 만들어보기까지 해봅니다. 그것은 체중부하가 종자졸에 가하는 역할과 같아 보입니다....

저는 지금 책읽기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니체와 마르크스와 푸코의 암석 앞에서 온갖 짓을 하며 뒹굴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암석의 정신'이 있으려니 하며, 북한산 어느 구석에서 암석을 쓰다듬고 껴안으면서, 때론 다른 돌로 깨부숴 보면서, 그것을 느껴 보려는 허무맹랑한 짓을 하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저는 니체와 마르크스와 푸코의 암석 앞에서 정신이 나가 버렸습니다. 어쩌면 철학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소간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35쪽)


아,  나도 한 때는 그랬는데, 나도 한 때는 무식하고 용감하게, 오로지 앎의 기쁨만을 느끼면서 책읽기를 했었는데.... 이제 저는 게으르고 약삭빠른 학인입니다.. ㅠㅠㅠ

오랜만에 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도 반가와하며 "와.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좋아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제 책에서 이반일리히를 쓰게 된것은 전적으로 문탁샘에게 일리히 강의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도 477~481쪽에 썼습니다."고 하더군요. 헐, 이런 말을 들으니까 더 부끄러워지더군요.  진짜 옷깃을 여미게 되었습니다. 나로 하여금 초심을, 읽기를, 공부를 다시 환기시킨 그는, 이미 저의 스승입니다.



그의 이름은 강민혁입니다


네, 그의 이름은 강민혁입니다. 밥벌이의 고단함과 귀중함을 알지만 또  어떤 공리적 목적이 없는 읽기에 몰두하고, 그것을 매번 다시 고쳐 읽는(쓰는) 그는 더 이상 은행가도 아버지도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는 철학자입니다. 그는 은행원-철학자입니다. 


어쩌면 전문가들이 내가 쓴 글들을 보고, "그것은 철학이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 수 없다. 이미 내처 간 길이라 이제 돌아갈 수도 없다. 모든 잘못을 꼭꼭 씹으면서 가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더군다가 언젠가부터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철학들이 내 현장으로 침입하고 말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철학적 대상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철학은, 그것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현장의 질문에 답하려고 토해 내는 가쁜 숨소리일 테니까. 질문이 없으면 답이 없으니, 현장이 없으면 철학도 없다.




조만간 우리 모두 그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그의 집은 성남이라네요.) 그를 만나서 그의 읽기와 쓰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하여 문탁의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길 대중지성에서 그와 같은 공무원-철학자, 교사-철학자,  회사원-철학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좋으시죠?



글_문탁(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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