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배려의 책읽기』
- 고전을 읽어간 사람에 관한 책
철학책이든, 아니든, 여하간 고전(古典)을 읽으려고 한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당연히 고전을 바로 읽는 것이 가장 좋다. 나는 나름대로 고전을 읽기 시작한 20대 초반부터 그렇게 교육 받았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렇다고 굳건하게 믿고 있다. 고전을 읽기 위해 다른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고전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전으로 직접 뛰어들어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전’에 관한 그 많은 책들은 모조리 무가치한 책들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인간이 원래 무가치한 일들을 기꺼이 반복해서 하는(해내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 모든 고전에 관한 책들이 전부 무가치할리는 없다. 고전을 읽어내는 일는 결코 쉽지 않다. 시대도 다르고, 처해진 조건도 다르고, 심지어 언어도 다르다. 어떤 책은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고전에 관해 쓴 책이 큰 가치를 얻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도대체 남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 하는 예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읽은 방식으로 읽어볼 수도 있고, 그가 읽은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읽어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다보면, 이른바 ‘나만의 관점’이 어느 순간 생겨난다. 이렇게 ‘고전에 관한 책’을 하나의 예제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
예제로 사용하는 것 말고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고전에 관한 책을 고전과 무관하게 읽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고전, 그 자체가 아니어도 고전을 읽어가며 쓴 그 기록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이야기’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이나 그 외 다른 고전들을 일상적으로 읽는 삶을 살면 좋겠지만, 알다시피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대학원을 간다거나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책들을 계속 읽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순전히 그것들(고전들)을 읽어가는 데서 엄청난 쾌락을 느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그 책들을 읽어간 사람의 이야기라면 흥미롭지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고전들 속에 적힌 어떤 것들이 그를 그렇게 쾌락을 이끌어 갔을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자기배려의 책읽기』는 고전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고전을 읽어간 ‘그 사람’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언제나 우리는 단계론적인 사고로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철학 개론서를 우선 읽고, 다시 독일 철학사를 간단하게나마 훑어야만 니체 원전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 길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세미나에 들어가서 진행 중인 원전을 곧바로 읽어나갔습니다.”
- 28쪽
그가 읽어낸 책들의 목록, 그리고 한권, 한권 넘어가며 써내려간 글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솟아난다. 무엇보다 그 능선 하나를 타 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는 수많은 고전들이 이루고 있는 산맥을, 때로는 오르고, 둘러서 간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동기가 ‘쾌락’이다. 나는 그게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책읽기에 있어서 ‘단계론적 사고’ 방식만큼이나 익숙한 것이 ‘목적론적 사고’ 방식이다. 이 책들을 다 읽어서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습관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그런 곳, 도달해야하는 어딘가는 없다. 말하자면 허상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읽기’의 과정 자체가 주는 기쁨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이 책 속에서 고전의 내용이 어떻고, 어떤 고전들이 있고, 필수적으로 읽어봐야 할 것은 무언지 같은 것보다, 바로 그 점에 주목해 주었으면 좋겠다. 저자가 이 책들을 읽어가면서 얼마나 큰 해방감을 느꼈을지, 또, 다음 책으로, 다음 책으로 질주해 가면서 얼마나 큰 피로와 그에 상응하는 보람을 느꼈을지 같은 것들, 그러니까 글쓴이의 ‘기쁨’에 주목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힘든 가운데서도 고전을 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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