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 '죽음을 건너뛸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말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이데거와 나치의 관계, 나치가 '죽음'을 어떤 식으로 선동했는지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적어놓은 저 문장 앞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다. 자라면서 보고 들어온 수많은 영상들이 잠시 스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저 문장을 읽고 적으면서 어떤 '편안함' 같은 걸 느꼈다. 저 끝에 '소멸'이 있다는 것, 내가 어떻게 하든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안도감을 주는지…….
사실 '죽음이 저 끝에 있다'는 말은 커다란 오해다. '죽음'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내내, 생(生)의 바로 옆에 거리 없이 있다. 하이데거가 '탁월한 앞에 닥침'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리라. '현존'의 가능근거로서의 '죽음' 말이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죽음을 곁에두고 살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다. '끝'이 있으니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이 생(生)이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말하자면 내가 가진 낙천성의 근거는 '끝'에 대한 믿음인 셈이다. 이 신앙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아,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 씨앗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틴 하이데거, 『근본개념들』 - '잊어버린 앎'을 깨닫는 일 (0) | 2019.03.06 |
---|---|
신간 [자기배려의 책읽기] - 은행원 철학자 강민혁을 소개합니다 (1) | 2019.01.31 |
『자기배려의 책읽기』- 고전을 읽어간 사람에 관한 책 (0) | 2019.01.30 |
보르헤스, 『칠일 밤』- "열반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0) | 2018.12.17 |
『청년, 니체를 만나다』 - 익숙한 것들 속에서 낯설게 (0) | 2018.11.29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 유머와 자비 (0) | 2018.1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