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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백수는 고전을 읽는다

[맹자] 어떤 용맹함을 가질 것인가

by 북드라망 2016. 10. 19.

어떤 용맹함을 가질 것인가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에 산다고 상상해보자. 덩치도 작고 힘이 약한 사람은 덩치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누구 비위를 맞춰야 할까 고민할 것이다. 전국시대의 등나라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제나라는 반대였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힘으로 밀어붙였던 것은 아니다. 제 선왕은 제 나라가 땅도 크고, 힘도 세고, 문화적으로도 발전했는데 여러 나라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제 선왕의 고민에 맹자는 어떤 대답을 내 놓았을까? 




천리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


제 선왕이 물었다. “이웃 나라와 사귈 때에 방법(道)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있습니다. 오직 인자(仁者)만이 대국을 가지고 소국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탕왕이 갈나라를 섬기시고, 문왕이 곤이를 섬기신 것입니다. 오직 지자(智者)만이 소국을 가지고 대국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왕이 훈육을 섬기시고 구천이 오나라를 섬긴 것입니다." 『맹자』, 「양혜왕 하」


제 선왕은 맹자에게 이웃 나라와 교제하는 방법을 물었다. 이 때 ‘방법’이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는 ‘도(道)’이다. 우리는 ‘도’라는 것을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자신이 택하는 방법, 걸어가는 길, 그것이 바로 ‘도’이다. 헌데 매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제 선왕은 왜 또 방법에 대해 묻는 것일까? 아마도 자신이 가는 길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닐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하던 습관대로 하거나,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방식으로 하기 쉽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게 정말 옳은 방법인가를 고민한다. 제 선왕은 전국시대에 보편적이었던 힘의 논리 앞에서 한 발 멈추고 이웃나라와 교제하는 방법을 맹자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맹자가 7년 동안이나 제 나라에 머물면서 왕도 정치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것도 제 선왕의 이 같은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맹자가 말한 것처럼 대국이면서 소국을 섬기고, 소국이면서 대국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맹자는 단서를 달았다. 인한 사람만이 소국을 섬길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만이 대국을 섬길 수 있다고. 그럼 인자와 지자는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일까? 


대국을 가지고 소국을 섬기는 자는 천리를 즐거워하는 자요, 소국을 가지고 대국을 섬기는 자는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이니, 천리를 즐거워하는 자는 온 천하를 보전하고,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 나라를 보전합니다. 


인자는 천리를 즐거워하는 자이고, 지자는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이다. 인자와 지자의 공통점은 바로 천리를 안다는 것이다. 천리라는 것은 이 우주가 운행되는 이치이다. 그 이치를 아는 사람들은 그것에 근거해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마땅히 따라야 하는 법칙을 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천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무언가를 실천할 때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천리가 드러난다. 인자와 지자가 따른 천리는 무엇일까? 대국은 소국을 섬김으로써 천하를 보전하고, 소국은 대국을 섬김으로써 자신의 나라를 보전했다. 천리란 곧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삶을 보전하는 것이다. 맹자는 제 선왕에게 대국의 군주로서 천하를 보전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큰 용맹을 발휘하라


큰 나라를 섬겨야 하는 것도, 작은 나라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는지 제 선왕은 말한다. “선생님의 말씀은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용맹함을 좋아합니다.”라고. 제 선왕이 말하는 용맹함은 무엇인가? 맹자는 그것을 ‘작은 용맹함’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을 우습게보거나 대적하려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정도의 용맹함이다. 타인과 맞서려고 해도 분명 용맹함은 필요하다. 작은 용맹조차 없다면 상대에게 바로 굴복하고 말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맹자는 제 선왕에게 작은 용맹을 추구하지 말고 용맹을 더 넓히라고 말한다. 용맹을 넓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시경』에 이르기를 ‘왕께서 혁연히 노하사 이에 그 군대를 정돈하여 침략하러 가는 무리들을 막아서 주나라의 복을 돈독히 하여 천하에 보답하였다.’하였으니 이것은 문왕의 용이니 문왕이 한번 노하시어 천하의 백성을 편안히 하셨습니다. 


맹자는 왕에게 옛날에 문왕이 군대를 일으킨 일화를 들려주었다. 문왕은 밀나라가 원나라로 쳐들어가려고 할 때 군대를 일으켜 밀나라 군대를 막았다. 그래서 천하의 백성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작은 용맹이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큰 용맹은 천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군주의 욕심 때문에 다른 나라로 쳐들어간다면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군사도, 상대편의 군사도 모두 목숨이 위태롭다. 또 많은 희생자 없이 다른 나라를 차지한다 해도 욕심 많은 군주가 다스리는 정치 아래에서는 죽는 것보다 못하게 사는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 


문왕의 용맹은 바로 천하의 백성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발휘되는 용맹이었다. 문왕은 어떻게 큰 용맹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내가 난폭한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런 마음이 똑같이 있다. 문왕은 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넓혔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는 용맹은 타자와 나와의 관계에서 힘을 발휘해 단순히 다른 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종류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내 삶을 잘 살아내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도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맹자가 말하는 큰 용맹이다. 이것은 천리를 아는 자가 발휘하는 용맹이기도 하다. 


이러한 큰 용맹을 발휘한 사람으로는 또 무왕이 있다. 무왕은 당시 천자였던 주왕을 공격했다. 주왕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는데 난폭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충직한 신하들은 떠나가고 민심도 잃었다. 이럴 때에 무왕이 용맹함을 발휘하여 은나라를 쳐들어가자 그곳의 백성들이 오히려 무왕이 군대를 일으킨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무왕이 자신들의 삶을 안정시킬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왕께서 또한 한 번 노하시어 천하의 백성을 편안히 하신다면 백성들은 행여 왕께서 용을 좋아하지 않을까 두려워할 것입니다. 


자신이 용맹함을 좋아해서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하겠다는 제 선왕에게 맹자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용맹함, 그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것은 때때로 살아갈 때 적극적으로 발휘되어야 할 무엇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용맹함을 발휘해서는 곤란하다. 다른 사람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용맹함을 맹자는 요구한다. 천리를 아는 사람이 큰 용맹을 발휘하여 천하를 보전하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것이 곧 나의 삶을 구원하는 용맹함의 원리와 통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구원하는 맹자의 용맹함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용맹함이 아닐까.


글_이기원(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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