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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바람아, 이 험난함을 흩어버려라 - 풍수환

by 북드라망 2016. 1. 28.


바람아, 이 험난함을 흩어버려라 

- 풍수환



연초에 많이 아팠다. 말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목이 붓고 아프더니 기침이 나고 누런 콧물이 연방 흘렀다. 약을 지어 먹어도 낫지 않더니 급기야 삼 주간 계속되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아파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하루 이틀이면 훌훌 털고 일어났고, 오래간다 싶어도 일주일이면 제법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강단 있는 몸이 못 되는 터라 나름 몸과 화평하게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 페이스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프기 시작한 며칠간은 모든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 같은 암울한 감정이 들었다. 모든 사람의 말이 고깝게 들렸다. 그러다 동생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너마저 나를 박대하다니….’ 원망과 자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몸과 마음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았다. 암담한 생각 속에서 죽을 먹고 약을 먹었다. 몸이 조금씩 나아질 무렵, 시골에 사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내려가려고 하는데 같이 안 가겠느냐고. 그 길로 짐을 챙겨 시골로 내려갔다.





선배는 기침에 좋다면서 배에 꿀을 넣고 중탕을 해서 아침저녁으로 먹게 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우족을 고아 주었다. 뽀얗게 우려낸 우족탕을 먹던 날, 도저히 나을 것 같지 않던 콧물이 멈췄다. 기침도 잦아들었다. 신기했다. 몸이 좋아지면서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했다. 솔가지와 바짝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았다. 선배가 기르는 개를 데리고 지리산 노고단으로 산행도 갔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다시 끙끙 앓았지만 암울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노고단휴게소에서 나는 토했다. 아침에 먹은 음식들과 함께 묵은 찌꺼기들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토하고, 토하고, 뱃가죽이 당길 정도로 토했다. 시원했다.


동양의학은 몸과 마음을 따로 보지 않는다. 이는 몸과 마음이 한통속으로 엉겨 붙어 유기적으로 관계한다는 말이다. 내 병의 회복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암울한 감정은 토하는 신체적 행위에서 흩어지고, 울체되고 뭉친 기운은 기침과 콧물을 다 쏟아낸 후 멈춘 것이다. 선배의 따뜻한 보살핌 또한 차갑게 얼어붙은 감정과 기운을 훈훈하게 덥혔으리라. 주역에도 이처럼 깊은 수렁 속에 갇힌 험난한 기운을 흩어버리는 괘가 있다. 풍수환(風水渙)이 그것이다. 


풍수환은 위에는 바람, 아래는 물이 있는 괘다. 수면 위로 바람이 불어 물결이 흩어지고 파문이 일어난다고 해서 ‘흩어질 환(渙)’이 된다. 주역에서 ‘흩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흩어짐 속에 여섯 효의 관계는 어떻게 구성될까?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풍수환 괘사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환 형 왕격유묘 이섭대천 이정)

환은 형통하니, 왕이 묘당(사당)을 둠에 지극하며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우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彖曰 渙亨 剛 來而不窮 柔 得位乎外而上同(단왈 환형 강 내이불궁 유 득위호외이상동)

단전에 이르길 ‘환형’은 강이 와서 궁하지 않고, 유가 밖에서 자리를 얻고 위로 같이 하기 때문이라.


王假有廟 王乃在中也 利涉大川 乘木 有功也(왕격유묘 왕내재중야 이섭대천 승목 유공야)

‘왕격유묘’는 왕이 이에 가운데 함이요, ‘이섭대천’은 나무를 타서 공이 있음이라.


上下 敵應 不相與也(상하 적응 불상여야)

상하가 적응하여 서로 더불지 못하기 때문에


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也(시이불획기신행기정불견기인무구야)

이로써 ‘불획기신행기정불견기인무구’이니라.


象曰 風行水上 渙 先王 以 享于帝 立廟(상왈 풍행수상 환 선왕 이 향우제 입묘)

상전에 이르길 바람이 물 위에 행함이 환이니, 선왕이 이로써 상제께 제사를 올리며 묘당(사당)을 세우느니라.  


풍수환은 흩어지는 괘이지만 형통하다고 하였다. 풍수환괘가 형통한 것은 왕이 사당을 지어놓고 조상의 혼령을 지극하게 받들기 때문이다. 사당에는 조상의 혼령이 모여 있어서 그 나라를 지켜준다. 역대 왕의 혼을 모신 곳을 ‘종묘’라 하고, 국토를 수호하는 신을 ‘사직’이라 한다. 종묘사직이 흩어지면 그 나라는 망한다. 그래서 왕은 사당을 지어 흩어진 백성들의 마음이 조상을 받드는 마음으로 집약되도록 한다. 이렇게 백성들의 마음이 취합되면 나라가 영화롭게 된다. 큰 내를 건너는 것과 같은 힘들고 어려운 일도 너끈히 해낸다.



사당에 조상의 혼령을 모아 받들듯 백성들의 마음을 취합하면 나라가 영화롭게 된다.



단전에는 풍수환괘가 본래 천지비괘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한다. 천지비괘의 구사가 풍수환괘의 구이로 내려와 중을 얻었다는 것. 강(剛)이 아래로 내려와 중을 얻었으니 조금도 궁한 데가 없어서 형통하다는 말씀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두 번째 있던 유(柔)가 외괘로 올라가 네 번째 자리에 있게 된다. 이렇게 네 번째 강(剛)과 두 번째 유(柔)가 서로 자리바꿈을 함으로써 유 또한 신하로서 자리하니 형통하다. 구오는 외괘에서 중을 얻어 임금이 되고, 육사는 임금 밑에서 자기 자리를 얻은 신하가 되므로 구오의 임금과 육사의 신하가 서로 뜻을 같이 한다. 그러고 보면 풍수환은 임금의 마음, 신하의 마음, 백성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모이고 있으니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풍수환 효사


初六 用拯 馬 壯 吉(초육 용증 마 장 길)

초육은 써 구원하되 말이 건장하니 길하니라.


象曰 初六之吉 順也(상왈 초육지길 순야)

상전에 이르길 ‘초육지길’은 순하기 때문이라. 


풍수환은 자기가 흩어진 상태이므로 한껏 붙들어 모아야 하고, 만나야 하고, 서로 뜻을 같이해야 하고, 힘을 같이 해야 한다. 그런데 초육을 가만히 보니 육사와 음양응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초육은 이웃에 있는 구이와 힘을 같이 모아야 한다. 구이는 양으로써 강하고 초육은 음으로써 약하다. 약한 초육이 흩어져 있으니 저 혼자 살 능력이 없다. 그래서 구이에게 매달려야 한다. 초육이 매달림으로써 구이가 초육을 구원해준다. 초육에 입장에서 구이는 건장한 말(馬)과 같다. 외롭게 혼자 흩어져 있던 초육이 구이한테 의지해 구원을 받은 것은 구이가 강하기 때문이다. 초육은 순하게 구원을 받게 되니 길하다.


九二 渙 奔其机 悔 亡(구이 환 분기궤 회 망)

구이는 환에 그 책상으로 달아나면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象曰 渙奔其机 得願也(상왈 환분기궤 득원야)

상전에 이르길 ‘환분기궤’는 원함을 얻음이라.


구이는 흩어져 있는데 그 책상으로 달아나면 후회가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책상은 공부하는 것만이 아니고 사람이 편하게 있는 자리인 평상을 말한다. 요즘 말로는 침대와 같다. 초육과 마찬가지로 구이도 역시 구오와 음양응이 되지 않는다. 구오와 음양응이 안 되기 때문에 구이는 이웃에 있는 초육과 같이해야 하는데, 초육이 음으로서 자리가 부드러우므로 침대, 평상으로 말하였다.



구이는 초육(책상, 침대, 평상)과 같이해야 한다.



구이는 양으로써 강하고 중을 얻어 궁하지는 않지만 양이 음자리에 있고, 음양응도 안 되고, 때도 마침 흩어지는 환이다 보니 자기도 외롭다. 후회가 없으려면 초육한테 달려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동안 흩어졌던 지난날의 후회가 초육을 만남으로써 모두 없어지고, 같이 협력해서 살고자 하는 구이의 소원도 이루어진다.


九六三 渙 其躬 无悔(육삼 환 기궁 무회)

육삼은 환에 그 몸이 뉘우침이 없느니라. 


象曰 渙其躬 志在外也(상왈 환기궁 지재외야)

상전에 이르길 ‘환기궁’은 뜻이 밖에 있기 때문이라. 


세 번째 효,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고 중을 못 얻었으니 다른 괘 같으면 좋지 않다. 그러나 풍수환괘에서 육삼은 상구와 음양응이 잘되어 있으므로 흩어지는 때를 당해서 더불어 함께 할 사람이 있어 그 몸에 별 탈이 없다. 육삼이 상구에 뜻을 두면, 상구가 육삼을 끌어올려 주고 그러면 육삼은 자연히 상구에 의지해서 좋아진다. 그러므로 후회가 없다. 


六四 渙 其群 元吉 渙 有丘 匪夷所思(육사 환 기군 원길 환 유구 비이소사)

육사는 환에 그 무리지음이라. 크게 길하니, 환에 언덕이 있음이 평범한 이들이 생각할 바가 아니리라.


象曰 渙其群元吉 光大也(상왈 환기군원길 광대야)

상전에 이르길 ‘환기군원길’은 빛나고 큼이라.


참으로 어지럽고 살기 어렵게 된 세상을 육사가 구제해야 하는데, 첫 번째는 흩뜨리고 나중에는 모아야 한다. 험난해진 세상을 개혁하려면 그 무리를 모두 흩어지게 하지 않고는 안 된다. 그래서 육사가 그 무리를 다 흐트러뜨렸는데 오히려 무리가 모인다고 하였다. 흩어진 후에는 모이게 되고 모이게 되면 흩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흩뜨린 후에는 모아야 한다.



九五 渙 汗其大號 渙 王居 无咎(구오 환 한기대호 환 왕거 무구)

구오는 환에 그 크게 부르짖음을 땀나듯이 하면, 환에 임금의 거함이니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王居无咎 正位也(상왈 왕거무구 정위야)

상전에 이르길 ‘왕거무구’는 위가 바름이라.


구오는 양이 양자리에 바르고 외괘에 중을 얻어 중정하다. 비록 흩어지는 환괘이지만 중정한 자리에 있어서 이때를 능히 잘 다스린다. 구오가 혼신의 힘을 기울이니 온몸에서 땀이 난다. ‘흩어지면 죽으니 뭉쳐보자’며 크게 호소하여 모든 이를 모이게 한다. 이렇게 임금으로 추대를 받아 임금 자리에 앉게 되니 이제 허물이 없다.


앞에서 육사는 앞으로 큰일을 해야 하니까, 일단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흩뜨려놓고 그다음에 다시 추슬러서 하나로 모았다. 구오는 인군의 자리이므로 흩뜨리지 않고 모이라고 크게 호소하며 정치를 새롭게 해나가는 것이다.


上九 渙 其血 去 逖 出 无咎(상구 환 기혈 거 척 출 무구)

상구는 환에 그 피가 가며, 두려운 데에서 나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渙其血 遠害也(상왈 환기혈 원해야)

상전에 이르길 ‘환기혈’은 해를 멀리함이라.


상구는 풍수환괘에서 가장 극한 자리이다. 환괘의 극한 자리면 환이 극해지는 게 아니라 환이 다스려짐으로써 끝난다. 그래서 흩어짐으로써 피를 보았던 어려움이 떠나간다. 이렇게 상구에서 흩어짐이 이미 끝난 상태이므로 두려운 곳에서 벗어나게 되어 허물이 없게 된다.



흩어짐이 끝나면 두려움에서 벗어나 허물이 없게 된다.



풍수환은 괘상 자체는 흩어지는 괘이지만 흩어짐을 흩어짐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음을 오롯이 나를 존재케 한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둔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이미 흩어진 마음이고 몸이다. 그것은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우주적 마음이고 몸이다. 사람의 마음을 우주적 마음에 둔다는 것은 채워지고 채워진 욕망을 흩뜨려야만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된다는 것일 게다.


조선 유학의 교과서와 같은 책, 『심경』의 첫머리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充執厥中” 사람의 마음(人心)은 위태롭고, 우주적 마음(道心)은 미약하다. 정밀하게 살피고 일관되게 노력하여, 진정 그 중(中)을 잡으라.(한형조 번역)


한형조 선생은 도심을 우주적 마음으로 번역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여기에 사족을 단다면 왜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우주적 마음은 미약한가이다. 사람의 마음은 흩어지기 쉬우므로 위태롭고, 우주적 마음은 흩어져 있으므로 미약하다. 흩어지기 쉬운 것과 흩어져 있는 것이 물질화되면 정(精)이 되고, 무형을 이루면 신(神)이 되니 그것을 이루는 인자는 기(氣)다. 그 모든 변용들은 기를 통해 채워지고 응집된다. 하여 사람의 마음과 우주의 마음은 일체다. 사람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 그 중심에서 분지(分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걸 모른다. 하여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자기 밖에서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개발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다. 육신에 덮이고 욕망에 절어 부자연스럽게 된 우주적 마음의 힘과 가치를 되찾는 일이다. 아직 우리의 마음은 발견되길 기다리는 불모지인 채로 있다. 풍수환은 우리에게 이것을 발견하는 용법을 제시한다. 그릇된 욕심과 비뚤어진 욕망을 흩뜨려버리라고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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