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조금 지나친 사람들을 위한 삶의 기술 - 뇌산소과


조금 지나친 사람들을 위한 삶의 기술 

- 뇌산소과



한동안 외국에 나가 있던 친구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친구의 연락을 받은 나는 대청소를 시작했다. 방에 물걸레질하고 반질반질 윤기 나게 닦고 나서, 밥을 짓고 된장찌개도 끓였다. 같이 점심을 먹고 그동안의 밀린 수다를 떨었다. 친구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으로 한껏 들떠있었다. 나도 요즘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변화에 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 모든 것이 봄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부지불식간에 만들어내는 변화와 사건들. 약간의 흥분과 기대감이 동반되는 떨림이 친구와 나에게서 묻어났다. 유쾌하고 발랄하고 가벼운 봄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유쾌하고 발랄한 봄기운을 만나다.



그러다 이 기운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새로운 것은 다시 지겹고 고루한 것이 되겠지? 싶었다. 왜 우리는 이 뻔한 구조에 늘 발목 잡히고 마는 걸까? 그것은 많은 사람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가 소유한 것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소유하고 연인을 소유하고 관계를 소유하려고 한다. 한데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삶의 무게는 무거워질 뿐이다. 결국 내가 소유한 것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면 항상 ‘유쾌 발랄한 봄기운’과 조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사람의 욕망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깨달음을 향해 올곧게 수행하는 구도자가 아닐진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란 힘든 법. 그러니 조금 적게 소유하는 삶의 풍요로움은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주역에도 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괘로 그려놓았다. 조금 지나치다 싶은 괘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뇌산소과(雷山小過)다. 뇌산소과는 위에는 우레가 있고 아래는 산이 있는 괘다. 주역에서 양(陽)은 대(大)이고 음(陰)은 소(小)인데, 뇌산소과는 음인 소가 다섯 번째 자리에 와서 ‘작은 것이 지나쳤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늘 조금씩 지나치게 되는 우리들. 뇌산소과 괘에서 크게 지나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술을 배워보자.



뇌산소과 괘사


小過 亨 利貞(소과 형 이정)

소과는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가소사 불가대사 비조유지음 불의상)

작은 일은 가능하고 큰일은 가능하지 못하니, 나는 새가 소리를 남김에 올라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宜下 大吉(의하 대길)

마땅히 아래로 내려오면 크게 길하리라.


彖曰 小過 小者 過而亨也 過以利貞 與時行也(단왈 소과 소자 과이형야 과이이정 여시행야)

단전에 이르길 소과는 작은 것이 지나서(지나쳐서) 형통한 것이니, 지나되(지나치되) 바름이 이로운 것은 때와 더불어 행함이라.  


柔得中 是以小事 吉也(유득중 시이소사 길야)

유가 중을 얻음이라. 이로써 작은 일은 길함이요


剛失位而不中 是以不可大事也(강실위이부중 시이불가대사야)

강이 위를 잃고 가운데 하지 않음이라 이로써 큰일은 가능하지 아니하니라.


有飛鳥之象焉(유비조지상언)

나는 새의 상이 있느니라.


飛鳥遺之音不宜上宜下大吉 上逆而下順也(비조유지음불의상의하대길 상역이하순야)

‘비조유지음불의상하대길’은 올라가는 것은 거스르고 내려오는 것은 순하기 때문이라.


象曰 山上有雷 小過 君子 以(상왈 산상유뢰 소과 군자 이)

상전에 이르길 산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소과니, 군자가 이로써 


行過乎恭 喪過乎哀 用過乎儉(행과호공 상과호애 용과호검)  

행실은 공손한 데 지나치며, 초상은 슬퍼하는 데 지나치며, 쓰는 것은 검소한 데 지나치느니라.


뇌산소과는 비록 조금 지나치나 형통하다고 하였다. 그 형통함은 바르게 하는 데서 온다. 뇌산소과에서 ‘바르게 함’이란 무엇일까? 뇌산소과는 근본이 이미 조금 지나쳐 있는데 때도 모르고 자꾸 지나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갈 때가 되면 가고 설 때가 되면 서서 때와 더불어 행하는 것이 바르게 지나치는 것이다. 하여 이때는 작은 일은 길하다. 그렇지 않고 큰일을 벌리면 좋지 않다. 작은 일이 길하다고 한 것은 육오 인군의 자리가 외괘에서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양(陽)은 강(剛)으로 대(大)이고 음(陰)은 유(柔)로 소(小)인데 육오 유(柔)가 위에서 중(中)을 얻었으니 작은[小] 일은 길하다는 것.





뇌산소과를 옆으로 놓고 보면 가운데 있는 삼효와 사효의 두 개의 양[二陽]은 새의 몸뚱이가 되고, 양쪽으로 초효, 이효와 오효, 상효의 네 개의 음[四陰]은 새의 날개가 된다. ‘나는 새가 소리를 남기면서 올라감이 마땅치 않고 마땅히 아래로 내려가야 크게 길하다’는 것은 올라가면 거스르는 것이고 내려가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과는 조금 지나친 괘인데 새가 제 분수도 모르고 자꾸 올라가려고만 하면 욕심을 부리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소과에서는 순하게 내려가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크나큰 잘못을 치르는 대과가 되고 만다. 이미 소과는 중용에서 이탈한 상태이므로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조금 지나쳐도 좋다고 하는 세 가지를 괘사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행동함에 조금 지나치게 공손한 행동은 좋다. 

둘째, 상을 당해서 슬퍼하는 데 조금 지나친 것은 괜찮다. 

셋째, 쓰임새에 있어 검소함이 조금 지나친 것은 괜찮다. 


소과로 말미암아 대과가 주어진다. 무엇이든 그렇다. 작은 데서부터 점점 커지는 법이다. 적게 가졌을 때 그것에 만족하고 멈출 수 있을 때 삶은 풍요롭다.



뇌산소과 효사


初六 飛鳥 以凶(초육 비조 이흉)

초육은 나는 새라. 흉하니라.


象曰 飛鳥以凶 不可如何也(상왈 비조이흉 불가여하야)

상전에 이르길 ‘비조이흉’은 어찌할 수 없음이라.


음이 맨 처음에 있어 초육이다. 소과의 때를 당해 초육의 음이 이제 막 나왔다. 이것은 마치 새의 날개 죽지가 조금 나온 것과 같다. 이제 막 나온 새가 날려고 한다면? 흉할 뿐 아니라 날지도 못한다. 초육은 되지도 않는 일을 공연히 벌여놓고 흉하게 된 꼴이다. 소과의 때에 초육이 과욕을 부리고 있으니 어찌할 수가 없다.


六二 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육이 과기조 우기비 불급기군)

육이는 그 할아버지를 지나서 그 할머니를 만남이니, 그 인군에 미치지 아니하고


遇其臣 无咎(우기신 무구)

그 신하를 만나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不及其君 臣不可過也(상왈 불급기군 신불가과야)

상전에 이르길 ‘불급기군’은 신하가 지나칠 수 없음이라.


음이 두 번째 있어 육이다. 육이에게 구삼은 아버지가 되고 그 위의 구사는 할아버지가 되고, 육오는 구사 할아버지 위에 있으므로 증조할머니가 된다. 육이에게 ‘그 할아버지를 지나서’라고 한 것은 구사 할아버지를 지난다는 말이고, ‘그 할머니를 만난다’는 말은 구사 위의 육오 할머니를 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육이는 구사 할아버지를 지나서 육오 할머니를 만난다.



이것을 군신 관계로 말하면, 육오는 인군이고, 구사는 내직 신하이고, 구삼은 외방에 있는 외직 신하이다. 선비인 육이가 인군인 육오를 만나기 위한 절차를 말하고 있다. 즉 육이가 육오를 대번에 만나려고 구사를 지나치는 것은 대과한 일로서 불가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소과의 때이니 육이가 육오 인군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사 신하를 먼저 만나라는 것이다. 소과의 때이므로 육이가 이렇게 하면 더는 허물을 짓지 않게 된다. 육이에서 소과의 때는 절차를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九三 弗過防之 從或戕之 凶(구삼 불과방지 종혹장지 흉)

구삼은 지나친 듯이 막지 못하면 좇아 혹 해롭게 하니라, 흉하리라.


象曰 從或戕之 凶如何也(상왈 종혹장지 흉여하야)

상전에 이르길 ‘종혹장지’니 흉이 어떠하리요. 


양이 세 번째 있어 구삼이다. 구삼은 중을 얻지 못했고 양이 양자리에 있어 강하기만 하다. 소과 괘인데 너무 강하기만 하니까 적이 많다. 그래서 구삼의 아래에 있는 육이와 초육이 구삼의 뒤를 밟으며 해치려고 하는 검은 그림자가 된다. 그러므로 구삼은 자기의 뒤를 따르는 육이와 초육을 지나치게 방어하지 않으면 그들이 구삼의 뒤를 따라와 해쳐서 흉할 것이라는 말이다. 구삼은 소과의 때를 맞아 삼가고 삼갈 수밖에 없다.



육이와 초육이 구삼의 뒤를 밟으며 해치려고 하는 검은 그림지가 된다.



九四 无咎 弗過 遇之 往 厲(구사 무구 불과 우지 왕 여)

구사는 허물이 없으니, 지나치지 아니하여 만남이니, 가면 위태하니라.


必戒 勿用永貞(필계 물용영정)

반드시 경계하며, 써 길이 고집하지 말지니라.


象曰 弗過遇之 位不當也 往厲必戒 終不可長也(상왈 불과우지 위부당야 왕려필계 종불가장야)

상전에 이르길 ‘불과우지’는 위가 마땅하지 아니함이요, ‘왕려필계’는 마침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라.


양이 네 번째에 있어 구사다. 구사는 양이 음자리에 있어 자리가 부당하고 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구사는 육오 인군 밑에 있는 대신으로서, 육오가 음으로 어둡지만 구사는 양으로 어진 신하다. 이 현명한 신하 구사가 지나친 짓을 하지 않으니 허물이 없다. 다시 말해 구사가 허물이 없는 것은 구사가 육오를 지나치지 않고 육오 밑에서 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구사가 육오를 우습게 보고 경솔한 짓을 하여 지나치게 되면 사람들이 구사를 경계하고, 육오 인군 또한 구사를 가만 놔두지 않게 되어 위태롭다. 그렇다고 구사가 그저 인군에게 아부만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조금 지나친 행동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고 하니 때를 아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六五 密雲不雨 自我西郊 公 弋取彼在穴(육오 밀운불우 자아서교 공 익취피재혈)

육오는 빽빽한 구름에 비가 내리지 않음은 내가 서쪽 교외로부터 함이니, 공이 저 구멍에 있는 것을 쏘아 취하도다. 


象曰 密雲不雨 已上也(상왈 밀운불우 이상야)

상전에 이르길 ‘밀운불우’는 이미 올라갔기 때문이라.


음이 다섯 번째 있어 육오다. 육오는 음이 다섯 번째 자리까지 차올라온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구름이 꽉 차 있다고 한 것이다. 구름이 빽빽하게 차 있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 일이 될 듯 말 듯하면서 결국은 안 되는 것을 말한다.



구름이 빽빽하게 차 있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압이 너무 상승하면 비가 오지 않는다. 저기압이 되어야 비가 오니 아래로 내려가라는 얘기이다. 즉 아래로 내려가 어진 신하를 발굴해서 등용시켜야만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


소과에 처한 육오는 정치를 해도 안 되니 이런 때에는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능력이 있는 어진 신하를 찾아서 등용하여 자기를 보필하게 하고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이처럼 구멍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어진 신하를 발굴해내서 자기를 보필하게 하여 선정을 베풀라는 말이다.


上六 弗遇 過之 飛鳥 離之 凶 是謂災眚(상육 불우 과지 비조 이지 흉 시위재생)

상육은 만나지 아니하여 지나치니, 나는 새가 떠남이라. 흉하니, 이를 이르되 ‘재생’이라.


象曰 불우과지 이항야(상왈 불우과지 이항야)

상전에 이르길 ‘불우과지’는 이미 높음이라.


음이 여섯 번째 있어 상육이다. 상육은 아래에 있어야 할 음이 맨 꼭대기에 있으니 육오를 만나지 않고 육오 위로 지나쳐버렸다. 상육은 소과가 너무 지나쳐서 대과가 된 상태다. 이를 두고 새가 떠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렇게 너무 지나친 짓을 하다 보니까 내외적으로 화가 생기게 된다. 천재지변으로 생긴 재앙은 ‘재(災)’라 하고, 자기가 잘못해서 생긴 재앙은 ‘생(眚)’이라고 하는데 소과가 지나치다 보니 재생이 끊이지 않는다. 상육은 지나침이 극에 이르러 이제 내려가지도 못하고 흉하게만 된다. 욕심을 지나치게 부려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욕심을 지나치게 부려 큰 재양을 맞이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지나침은 언제나 경계해야 할 덕목이긴 한데 그것을 절제하기란 매우 어렵다. 뇌산소과에서 소과는 이미 조금 지나친 상태다.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이와 같은 상태를 매 순간 겪는다. 소과에서 대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비법을 뇌산소과는 괘사와 효사에서 열거하고 있다.


우선 괘사에서는 크게 일을 벌이지 말라는 것. 절제하기가 힘들다면 규모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초효에서는 새가 날개 죽지도 안 난 상태에서 날려고 하듯이 능력도 없으면서 되지도 않을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공연히 일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효에서는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절차를 고려하라는 것이고, 삼효에서는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지 말라는 것이고, 사효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알고 지나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고, 오효에서는 잘난 체하지 말고 겸손하게 실력 있는 사람과 연대하라는 것이고, 상효는 너무 지나친 짓을 해버려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소과에서 대과로의 점프는 순식간이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자. 과욕이 삶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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