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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공손함이 부른 개혁 - 중풍손

by 북드라망 2015. 12. 17.

중풍손, 공손함이 부른 개혁



왕안석(王安石, 1021년 12월 18일~1086년 5월 21일), 중국 역사에서 명실상부한 개혁의 아이콘이다. 신법이라는 과감한 개혁안으로 송나라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던 인물. 개혁은 너무 급진적이었고,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워낙 포부가 컸던 탓일까. 욕심을 부리다가 감당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간 그의 행적은 그를 권력의 화신으로 보이게도 한다. 


하지만 좀 더 밀착해서 그와 만난다면 의외의 왕안석과 만날 수 있다. 얼굴에 때가 끼어 검게 되어도 모르는 무심함, 한 가지 반찬으로 식사할 수 있는 소박함, 정치 개혁의 조건이 사라지자 미련 없이 불교에 귀의하는 모습. 세속의 어떤 욕망도 그를 무겁게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는 늘 '때'를 강조했다. 개혁의 때가 오면 개혁을 하고 은둔의 때가 오면 은둔을 한다. 때에 맞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그의 힘은 무엇일까.



왕안석은 늘 '때'를 강조했다.



중풍손 괘사


중풍손괘(重風巽)는 바람이 중첩된 형상이다. 강한 기운이 지배적이지만 한쪽 문은 항상 열려 있어서 외부의 기운과 늘 소통하는 괘이다. 왕안석의 행보는 중풍손괘를 떠오르게 한다. 센 개혁 추구로 정적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처참한 최후를 맞지 않는다. 그의 말년은 오히려 평안하게 보일 정도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에게는 사심이 없었다. 오직 요순임금의 시대를 구현하려는 의지, 그것이 실현 가능할 때가 오자 한바탕 비바람이 몰아치듯 개혁을 감행했지만 때가 지나가자 어떤 미련도 없이 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제 중풍손괘를 통해 바람과 같은 그의 삶을 만나보기로 하자.


巽은 小亨하니 利有攸往하며 利見大人하니라 

巽은 조금 형통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며 大人을 봄이 이로우니라.


손은 바람을 뜻한다. 바람이 두 번 연이어 있어서 중풍손이 되었다. 바람은 부드러운 기운으로 공손함을 뜻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손하다면 막힐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어려운 때일수록 공손한 태도로 대인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대인의 도움을 받아야 이롭다는 것이 중풍손괘가 전하는 바이다. 



중풍손 효사


初六은 進退니 利武人之貞이니라 

초육은 나아가고 물러남이니, 무인의 바름이 이로 우니라


초육은 가장 아래에 있고 약하기 때문에 나아가고 물러남에서 과감성이 필요하다. 무인의 등장은 과감성이 있는 자세를 취하라는 의미이다. 중풍손은 공손함의 괘이다. 손괘 자체가 공손한데 처음부터 약하면 문제가 있으므로 과감성 있는 자세로 바르게 해야 이롭다는 것이다. 


왕안석은 16년 동안 지방관으로 근무하다가 중앙으로 복귀하면서 황제에게 자신의 현실 인식과 정치 이념을 혼신을 다해 피력한다. 즉, 요순임금 시대의 구현을 주장한 것이다.


九二는 巽在牀下니 用史巫紛若하면 吉코 无咎리라.

구이는 손이 평상 아래에 있으니, 사와 무를 씀이 어지러운 듯하면(많은 듯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 


처음 등장한 초육을 앉고 누울 수 있는 평상으로 표현했다. 구이는 양 기운의 공손함으로 평상 앞에 있으니 귀신에게 공손해야 한다. 귀신에게 공손하라니? 사(史)란 점치는 자를 말하고, 무(巫)란 굿하는 무당을 의미한다. 이때는 점과 굿을 동원하라고 했다. 정신이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지극하게 비는 것이 공손함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지극하게 빌어라.



왕안석의 신법은 지방에서 16년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방편이다. 요순임금을 향한 공손함이 신법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九三은 頻巽이니 吝하니라

구삼은 자주 겸손함이니, 인색하니라


구삼은 강한 자리에 강한 자가 있어서 공손하려고 하지만 기운이 강성해서 어려움이 있다. 손괘는 전체가 공손해야 하는 상황이다. 구삼의 속마음은 공손해지고 싶지 않지만 분위기상 공손하려고 애써야 하니 공손함이 잘되지 않아서 인색하다고 한 것이다. 왕안석의 신법은 요순시대의 복원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해법이었다. 그것은 성인의 시대를 이 땅에 구현하겠다는 공손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안석은 갑자기 신종의 총애를 받아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고, 급진적 개혁은 기존 세력에게 과격함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九四는 悔 亡하니 田獲三品이로다. 

육사는 후회가 없어지니, 사냥하여 삼품을 얻도다.


육사는 구오 인군 밑에 있는 대신이다. 대신은 구오 밑에서 공손하게 왕의 명령을 시행하는데 그것을 사냥으로 표현했다. 삼품이란 인재 발굴을 의미한다. 왕안석 신법 핵심내용 중 하나는 인재를 구하는 것이다. 그는 인재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세워 자신의 안락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 수양이 가능한 군자 양성을 하고자 했다. 전획삼품이란 사람을 잘 발굴해서 정치를 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왕안석은 자기 수양을 하는 군자를 양성하고자 했다.



九五는 貞이면 吉하야 悔 亡하야 无不利니 无初有終이라.  

구오는 바르면 길해서 뉘우침이 없어서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처음은 없고 마침은 있느니라.

 

先庚三日하여 後庚三日이면 吉하리라.

경으로 앞서 삼 일하면, 경으로 뒤에 삼 일하면 길하리라. 


구오는 바르고 중을 얻은 자리이다. 구오는 바른 자리에 있지만 바로 밑에 있는 육사가 마음을 흔들 수 있으니 바르게 해야 한다. 바르게 하면 구오는 흔들리다가 마음을 잡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처음부터 마음을 다잡고 시작은 못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내면 시작은 없어도 기존과 다른 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천간에서 경(庚)은 ‘고칠 경’으로 변혁의 글자이다. 경(庚)에서 먼저 사흘이란 천간의 글자 정(丁)을 뜻한다. 그리고 경에서 나중 사흘은 계(癸)이다. 정은 시작도 마무리도 아닌 중간에 있는 글자지만 끝을 의미하는 계(癸)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고친다는 의미이다.


왕안석의 신법이 처음부터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왕안석은 39세에 개혁안을 입안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황제 영종은 4년 만에 붕어하고 청년 황제 신종은 20세에 그 뒤를 이었다. 황제는 야심 찬 인물로 나라의 운명을 걸고 변혁을 추진코자 했다. 신종의 열렬한 기대와 왕안석의 신법은 서로를 당겼고 마침내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의 개혁 규모는 엄청나다. 그가 신법을 제안했다고 바로 시행되지는 못했으나 어느 순간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전 분야에 걸쳐 사회 구조와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려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왕안석의 기획 하에 송나라는 재 세팅된 것이다.


 

송나라는 왕안석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빅뱅~!



上九는 巽在牀下하야 喪基資斧니 貞에 凶하니라

상구는 겸손한 것이 상 아래에 있어서, 그 몸에 지닌 도끼를 잃으니 고집함에 흉하니라.


상구는 상 아래에서 엎드리는 것으로 공손함이 지나쳐서 비굴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공손함이 지나치면 비굴하다 못해 자기 망신을 당하게 된다는 것. 자부(資斧)란 노자와 도끼로 권력을 위해 아첨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다 잃게 된 것이다. 이렇게 권력이 목표가 되면 비굴해 질뿐이다.


신종의 총애로 권력의 정점을 찍었던 왕안석의 말년은 어떠했는가. 그의 신법 실행이 권력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상구의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재상직에서 물러난 후 어떤 원망도 없이 남경으로 내려와 유유자적한 삶을 보낸다. 그는 유독 남경에 있는 종산을 좋아했다. 세속 안에 우뚝 솟아 있지만 세속의 티끌도 없는 곳. 종산이야말로 자신이 추구했던 요순의 마음이 담긴 곳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는 정치에 물러나서 시를 많이 지었다. 


세간에 있으면 나이가 들수록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 이 같은 천박한 재주로 어떻게 우리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말을 타고 홀로 모래 먼지 이는 남쪽 대로를 걷고 있자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오직 종산에 걸린 구름뿐이다.”



왕안석의 눈에 아른거렸던 구름같은 순간들



요순을 흠모하듯 공손한 마음으로 그 시대를 복원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임을 자각해야 했던 시간들. 정치, 열정, 젊은 날의 순간들이 모두 종산의 구름처럼 보였으리라. “요를 칭찬하고 걸을 비난하기보다 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 좋다.” 마침내 자신의 분별마저 내려놓고 오직 도를 향한 마음만이 본질임을 꿰뚫는다. 진정한 공손함이란 이런 통찰력이 아닐까.


'사해궐음 풍목'이라는 육기가 있다. 화끈한 불기운 뱀은 물 기운 해수를 불러들인다. 물과 불이 한바탕 대격돌을 벌인 후 그 자리에는 바람만이 남는다. 불은 숨기는 것이 없다. 일 점 사심이 없는 불 왕안석이 해수라는 때 신종을 만나 한바탕 사건 신법개혁이 발생한다. 그리고 비바람이 한바탕 몰아친 후 흔적 없는 바람의 시공간만이 남겨진다. 그의 마음에 일 점의 사심이 없었기에 세찬 비바람 후에 청풍만이 남은 것은 아닐까. 중풍손, 아이러니하게도 왕안석이야말로 바람이 두 번 겹쳐져서 만들어진 중풍손의 공손함과 닮아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과감한 개혁은 진정한 공손함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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