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공자 스쿨’을 소개합니다
나는 3년 전에 『논어(論語)』를 만났다. 처음 『논어』를 읽는다고 했을 때 고루한 훈계서 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그런 책을 굳이 읽어야 하나 잠깐 고민도 했었다. 그래도 다들 읽는 이유가 있긴 하겠지 하고, 눈 딱 감고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런데 『논어』는 내가 생각했던 훈계서가 아니었다. 그냥 별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 편이 더 낫다. 훈계를 하고 있다기보다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이 모여서 서로 묻고 대답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제자들의 질문에 스승은 친절하게 답을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자신의 고민을 제자들에게 털어 놓기도 한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사랑받는 제자를 질투하기도 하고, 서로 스승에게 자기가 더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 제후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논어』의 대부분은 제자들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창하게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거나 이런 이야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참 별 거 없는 책이다.
『논어』는 생각보다 별 거 없는 책이다. 다, 단지 한자로 씌여있을 뿐^^;;
1, 교육 사업에 뛰어 들다
그러고 보면 공자는 개인으로서 최초로 강학을 시작해 사학(私學)을 세운, 사립학교 설립자이다. 공자는 15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스스로 호학자(好學者)라고 했으며, 십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 자신만큼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할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박학하고 재주 많은 사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공부한 것을 펼칠 기회를 쉬이 얻을 수가 없었다. 20살 이후 그는 낮은 관직을 얻었으나, 그의 정치적 이상을 펴기에는 부족했다. 서른 무렵 학문에 관한 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갔다. 그러자 그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공자는 자신의 집 안에 제자들을 하나 둘 받아들였다. 이렇게 ‘공자 스쿨’은 탄생했다.
‘공자 스쿨’은 나날이 번창했다. 공자에게 배움을 구하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었다.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뿐 아니라 제(齊), 진(陳), 송(宋), 채(蔡), 정(鄭) 등 이웃나라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자 스쿨’이 나날이 번창한 이유 중 하나는 공자가 제자를 받는데 특별히 까다로운 조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 이전에 교육은 대부분 귀족 관료에 의해서 행해졌기 때문에 평민은 교육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마른 고기 조각 열 묶음만 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던 ‘공자 스쿨’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렇게 점차 유명해지자 귀족 계층에서도 ‘공자 스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노나라 귀족 맹희자는 두 아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공자를 찾아가 스승으로 삼으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층 평민에서부터 노나라 최고 귀족의 자제까지, 일설에 따르면 ‘공자 스쿨’에 제자가 3,000명에 이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2, 무엇을 배웠을까
이 당시 ‘공자 스쿨’에서는 무엇을 배웠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 먼저 공자가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알아보자.
공자는 노나라 곡부(曲阜)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숙량흘은 몰락한 귀족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공자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숙량흘과 공자의 어머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숙량흘은 초혼도 아니었다. 그래서 공자는 아마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컸던 것 같다. 이후 공자는 홀어머니와 힘들게 살았고, 17세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된다. 이것이 공자가 15살에 학문에 뜻을 두게 된 계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즈음에 자신이 미미하긴 하지만 귀족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학문에 뜻을 두게 된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나라 대부인 계손씨가 잔치를 열었다. 공자는 이 잔치에 참석하려다 계손씨의 신하인 양화에게 망신을 당하고 쫓겨났다. 이 사건으로 공자는 그저 귀족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벼슬길에 오를 수 없음을 깨달았던 같다. 이후 공자는 무섭게 공부했다. 그는 특별히 스승을 두지 않고, 자신이 있는 모든 곳을 배움의 장이라고 생각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한 사람은 반드시 스승이다.”라고 한 말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공자님, 여기에도 제 스승이 있을까요;;;
당시 귀족 정치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육예(六藝)’이다.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말하는데 예와 악은 주대의 문화전통을 사는 활쏘기, 어는 수레 몰기, 서는 글쓰기, 수는 계산 능력을 갖춰야 함을 이른다. 20살 무렵에 육예에 정통한 공자는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 등 고전 공부에도 매진하여 그들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그는 특히 교육을 통해서 주례(周禮)를 계승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주나라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각 제후국들이 힘을 다투기 시작한 때였다. 전쟁이 빈번해지자 백성들은 살기 힘들어지고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자는 이러한 시대의 문제를 주나라의 예법을 되살리면 질서가 다시 잡힐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정치에 직접 나가서 할 수 없다면 교육을 통해서 주례를 계승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공자는 시와 예를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자신의 아들인 백어(白魚)에게 시를 배우지 않고는 사람들과 더불어 말을 할 수 없으며, 예를 배우지 않으면 벼슬에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공자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더 가르치지 않았으며, 제자들에게 자신이 공부한 것을 숨김없이 가르쳐 주었다. 또 진리를 위해서는 스승의 앞이라도 물러서지 말라고 가르쳤다.
3, 우정의 공동체
‘공자 스쿨’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다양한 계층만큼이나 폭 넓은 연령대일 것이다. 지금의 학교는 대부분 같은 연령대의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 18살이 공부하는 고등학교 교실에 40대 어른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일이다. 하지만 ‘공자 스쿨’에서 이런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였던 안회는 공자보다 30세가 적었지만, 공자의 가장 측근이었던 자로는 공자와 겨우 9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공자와 더불어 살았으며, 공자가 자신의 정치적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천하를 주유 할 때도 공자와 동행했다. 지금의 학교와 비교 해 볼 때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만 만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걸쳐서 그들은 서로 배움을 주고받았다. 일례로 안회가 수업시간에 스승의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다 끄덕거리자, 공자는 도대체 저 녀석이 바보가 아닐까 생각하고 몰래 안회의 사생활을 살펴본다. 안회의 사생활이 자신의 가르침에 벗어나지 않음을 보고 공자는 그가 훌륭한 인물이라 칭찬했다.
그렇다고 ‘공자 스쿨’을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빡빡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공자는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염구가 중병에 걸렸을 때는 직접 찾아가 손을 잡고 “이렇게 착한 사람이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렸다니”하면서 통곡했다. 제자들의 사정을 일일이 꿰고 있던 그는 가난한 원사가 자신이 내린 곡식을 사양했을 때 받아두라 이르며 남으면 고향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했다. 이렇듯 공자는 제자들의 사정을 잘 알았기 때문에 각각 제자들의 사정에 맞추어 대해 주었다.
어느 드라마에 “『논어』는 공자와 그의 똘똘한 제자들이 박 터지게 싸운 이야기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공자 스쿨’에는 스승이 자기 가르침이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진리 앞에선 스승에게 양보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제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공자는 네 말이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꾸짖지 않는다. 공자도 역시 그들과 더불어 계속 배울 뿐이다.
‘문탁’에서 공부하는 친구들과 얼마 전에 ‘파지스쿨’을 열었다. 나는 여기서 젊은 친구들과 같이 『논어』를 공부한다. 공자의 집 뜰에서 시작한 ‘공자 스쿨’은 어떤 스승과 제자 사이었을까? 전에는 그저 경서의 하나로 논어를 바라보았다면 이제 좀 더 살아있는 이야기로 『논어』가 다가오는 것 같다. 공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안회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생각보다 참 별거 없는 『논어』였는데, 그들이 박 터지게 싸워가며 했던 공부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 시작하는 우리의 공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대해서 다시 살펴볼까 한다.
글_진달래(문탁네트워크)
지난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대학』과 『논어』에 관한 새로운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최유미 선생님께서 『대학』을 진달래 선생님께서 『논어』를 맡아, 각 고전과 문장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있고 재미있게' 해주실 예정이니 앞으로 많은 기대 바랍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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