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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나의 고전분투기

[새연재] 나의 고전분투기─스스로 사유하기 위해 『대학』을 읽다

by 북드라망 2015. 11. 4.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새로움  




『대학』의 첫 문장. 읽...읽을 수 있다!!^^



철학이 종교와 다른 것은 일체의 초월성이 배제된 내재성의 구도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철학은 끊임없이 개념을 창조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철학이 생산한 개념은 그토록 쉽게 양식(bon sens)으로 영토화 되어 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끊임없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철학이 창조한 개념은 언제나 배치에 따라 다른 의미작용을 하는 다양체였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 개념 옆에는 어떤 개념을 놓을 것인가? 각각에는 어떤 구성요소들이 있는가? 이는 개념들의 창조에 관한 질문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개념의 창조는 무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배치를 바꾸는 문제다. 그것은 익숙한 사유를 절단하여 새로 이어붙이는 작업이다. 양식으로 영토화 되어버린 사유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철학에 의해서라면 바로 이런 식의 이어붙이기에 의해서 일 것이다.


12세기 중국의 유학자, 주자가 한 작업은 무엇일까? 주자는 유가의 텍스트에 대한 엄청난 양의 주석서를 남겼다. 그의 작업은 성인이라 간주되는 공자의 가르침을 단지 체계화 했을 뿐일까? 그랬다면, 주자 말년에 그리고 그의 사후 오랫동안 그의 작업이 위학(僞學)이라고 탄압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자의 작업은 공자의 가르침에 내재성의 구도를 부여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공자의 가르침이 단지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초월적 위치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어떤 사상이 본의가 훼손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딱딱하게 굳어 화석화되어 버리는 것일 것이다. 


주자의 작업은 공자의 가르침을 개념화 하는 작업이었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양체다. 배치에 따라 새로움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 다양체다. 철학이 우리를 해방으로 나아가게 한 것도, 그토록 쉽게 양식으로 고착되어 우리의 사유를 통제한 것도 개념 자체가 다양체이기 때문이다. 주자의 위대한 작업은 공자의 가르침을 이러한 다양체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것이 다양체였기에 주자 사후 몇백년이나 지나서도 저 멀리 조선에서 4단7정(四端七情)의 그 풍성한 철학적 논쟁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 4단7정 논쟁의 이황 선생님(응?)!! 그래도 므흣(>.<)



주자가 펼쳐내는 유가 철학의 내재성의 구도는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그 면모가 드러난다. 특히 『대학장구(大學章句)』는 학문하려는 성인이 된 초학자가 맨 처음에 읽어야 될 책이라고 주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대학』은 본래는 5경의 하나인 『예기』의 제 42편이었다. 독립된 책이 아니었으니 그 이전에는 『대학』이 많이 읽혔을 리 없다. 그러나 북송시대의 지식인들, 사마광과 이정자(二程子)인 정명도, 정이천 형제 등에 의해서 주목 되었다. 독립적인 텍스트로 『대학광의』라는 대학의 주석서를 최초로 펴낸이는 사마광이다. 이미 송 대의 지식인들에서부터 탈영토화의 이질적인 벡터는 꿈틀대고 있었고, 그것은 『대학』으로부터 시작되었던 듯하다. 주자의 『대학장구(大學章句)』 작업은 이들 북송의 지식인들의 작업에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주자는 훨씬 더 멀리 밀고 나갔다.


주자의 개념화의 첫 작업은 새로운 배치를 만드는 것이었다. 주자는 원문의 내용을 장(章)으로 나누고, 자신의 주석을 구(句)로 나누었다. 또 『대학』 원문은 경(經)과 전(傳)으로 나누었다.  주자는 경(經)은 공자가 말씀하신 것을 증자가 술(述)하신 것이고, 전(傳)은 공자의 말씀하신 뜻을 증자가 풀이하는 것을 증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述)! 동양철학의 위대함은 바로 이 술(述)에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것은 공자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공자가 말씀하신 것을 증자가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이니, 술(述)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탈영토화의 벡터가 잠재해 있다. 공자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말한 것은 단지 겸양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좁게 보는 것일 것이다. 작(作)한다는 것은 무(無)에 만들어 냄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런 전제 없이 사유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에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을 말했다. 플라톤이 철학자는 이데아를 관조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이데아라는 개념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새로움이란 오직 이미 있는 것을 통해서다. 술(述)한다는 것은 옛 성인의 말씀이 이미 새로운 배치 속으로 들어갔음을 말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음을 말한다. 


주자는 새로운 유학(성리학)의 체계를 세우면서 『예기』에서 「중용」과 「대학」의 두 편을 독립시키고, 장구(章句)를 짓고 자세한 해설을 붙여 사서 중심의 체재를 확립하였다.



『대학장구(大學章句)』는 경(經)1장과 전(傳)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 1장은 3강령과 8개의 조목, 그리고 본말(本末))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傳)은 이 경(經)을 상세히 해설한 작업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의 구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전에서 드러나는 본말에 대한 주자의 해석인 것 같다. 일단 전(傳)에서 본말장(本末章)은 8조목을 말하기 전에 배치된다. 8조목은 본말에 근거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치밀한 배치다. 하지만 정작 전(傳)에서 본말을 해석하는 부분은 좀 빈약해 보인다. 단지 자왈(子曰)로 시작하는 단 한 문장이 전 4장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물(物)과 일(事)에는 본과 말이 있고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본과 말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는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본말의 다이나믹한 특징이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전 7장부터 10장까지의 장을 분리하는 구성이다.


전 7장은 정심수신(正心修身), 전 8장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전 9장은 제가치국(齊家治國), 전10장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로 이루어져 있었다. 즉 각각의 장은 본말의 구도다. 전7장에서 정심(正心)은 본이고 수신(修身)은 말이다. 그러나 전 8장에서는 수신(修身)이 본이요 제가(齊家)가 말이다. 이처럼 본과 말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배치에 따라, 본이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과 말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전 5장 바로 뒤에는 격물(格物)에 대해 주자가 끼워 넣은 보망장(補亡章)이 있다. 주석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전(傳)5장이다. 격물은 본말의 시작점이다. 이 구도에서는 격물은 본이고 수신은 말이다. 즉, 앎(知)이 본이고 행(行)이 말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배치에서는 앎으로 행을 이루고, 또 어떤 배치에서는 행으로 앎을 이룬다. 그러나 앎과 행이 같은 것은 아니다.


주자가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한 작업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구성요소를 뽑아내고, 새롭게 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초학자가 가장 먼저 읽어야 될 기초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이것은 철학이 새로운 사유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들뢰즈 자신은 중국의 사유를 절대의 내재성으로 철학의 내재성과 구분하고 있지만 말이다.) 


***


초학자인 주제에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연재를 시작한다. 나로서는 처음 접한 동양의 텍스트가 『대학장구대전(大學章句大典)』이다. 대전(大典)은 명나라때 편찬된 것으로 주자의 『대학장구(大學章句)』와 그 후학들의 어마어마한 주석들을 모두 모아서 편찬한 책이다. 내가 공부하는 책은 대전(大典)에 우리나라 학자들의 해석인 비지(備旨)까지 붙여서 조선시대에 편찬된 책이다. 처음에 선생님께서 강독을 해주실 때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조금도 익숙한 사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굴의 생김새만 제외하고 이미 나는 서양인이다. 아마 여러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은 잊고 있던 기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서양인이듯, 우리에게 돌아갈 기원 따위는 없다. 익숙한 양식(bon sens)에서 탈주하기 위해, 양식이 대신 사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기를 위해 『대학장구(大學章句)』와 만나려 한다. 대학을 엉뚱하게 읽어서 선생님께 불벼락을 맞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글_최유미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마다대학』과 『논어』에 관한 다. 최유미 선생님께서 『대학』을 진달래 선생님께서 『논어』를 맡아, 각 고전과 문장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있' 해주실 예정이니 앞으로 많은 기대 바랍니다.^ㅁ^



대학중용 (全) - 10점
김혁제 옮김/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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