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의 배움
공자의 애제자로 알려진 안회, 그는 노(魯)나라 사람으로 자는 연(淵)으로 흔히 안연이라고 불린다. 공자보다 30세가 어렸다. 『논어(論語)』에는 그를 덕(德)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안회는 공자나 맹자와 같이 안자(顔子)로 불리기도 하고, 후에는 아성(亞聖)으로 불렸다. 안회는 명이 길지 않아서 공자보다 일찍 죽었는데 안회가 죽었을 때 공자는 하늘이 자기를 버린다고 소리치며 울었다고 한다. 평소에 감정을 심하게 드러내는 것을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공자의 태도로 보아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공자의 안회에 대한 사랑은 깊었다. 이처럼 공자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안회. 그러나 『논어(論語)』를 읽다보면 정말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스승이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제자치고는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공자가 안회에게 '극기복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중이다.
1, 안회는 바보일까
안회가 어떤 인물인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논어』에 안회에 대한 언급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직접 말하는 부분보다 대부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어지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노나라 군주인 애공이 당신의 제자들 중에 누가 학문하기를 좋아하는가를 물었을 때 '안회가 있었는데 불행히 일찍 죽어서 지금은 없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호학자(好學者)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공자가 안회가 질문이 없고 말이 없어서 바보가 아닌가 생각했다는 부분이 있다. 공자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나중에 안회의 뒤를 밟아서 저 아이가 실제 집에 가서는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궁금해 했다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회와 더불어 하루 종일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어기는 것이 없어서 어리석어 보였다. 물러나서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는 역시 내가 가르쳐준 대로 행하고 있었다. 회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다."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 『논어』, 「위정」 중
그러나 공자는 안회가 집에 돌아가서 하는 행동을 보고 그가 결코 바보거나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안회는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스승이 가르쳐준 대로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내용이 없어 보이는 이 문장이 사실 안회가 어떤 인물인가를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배워서 안다고 해도 일상생활에서는 몸에 밴 습관을 버리고 배운 대로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설사 잠깐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금방 원래 습관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배운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정말 그런지 따지고 질문한다. “이렇게 하면 정말 될까?” 나는 환경공부를 하면서 종이를 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종이컵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일도 실천은 쉽지 않았다. 텀블러와 손수건은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결국은 쓰기 편리한 휴지에 먼저 손이 갔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 교과서를 보면 알게될 것이다.
이처럼 안회가 스승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어긋남 없이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공자가 그의 일상생활을 살펴보고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안회는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 없이 실천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공자가 훌륭하다고 하지만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는 가끔 실수도 하고 제자와 의견이 달라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2, 안회와 스승 공자
"안연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아지고 뚫을수록 더욱 굳으며, 앞에 계신 듯 보이더니 홀연히 뒤에 계시는구나.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사람을 잘 이끄시어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 예절로써 나의 행동의 기틀을 잡아주신다.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능력을 다하게 된다. 그래도 또한 앞에 우뚝 새로운 지표를 세워 놓으신다. 그를 따르고자 하나 좇아갈 방도가 없구나."
顔淵 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논어』, 「자한」중
안회가 바라보는 스승의 모습은 높고 견고하며, 자기가 예측 할 수 없는 경지에 있었다. 너무 높아 보이는 스승의 가르침에 안회는 때때로 공부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스승은 그가 그의 힘을 다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끌어 주었다. 그러다보면 안회는 스승이 세워놓은 지표를 향해 묵묵히 공부하고 있었다. 이렇듯 스승에 대한 안회의 무한한 존경과 신뢰가 바로 그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떠한 의심 없이 따를 수 있었던 비결 아닌 비결이었다.
이러한 안회를 생각하는 공자의 마음도 남달랐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던 중 광(匡)땅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안회가 공자의 무리에서 뒤쳐졌다. 그 때 공자는 혹시 그가 죽기라도 했을까 몹시 걱정을 했다. 얼마 뒤에 만난 안회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제가 죽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전에 어떤 분의 강의를 들으러 간 적이 있는데,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운이 좋아야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 말씀이 수학을 좋아하지 않던 아이가 수학 선생님이 좋아서 갑자기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국어를 좋아하던 아이가 국어 선생님이 싫어서 국어 공부를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며 어떤 선생님을 만나냐에 따라서 공부를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싫어하게 되는 게 순전히 운이라는 것이다. 모두 그 이야기를 듣고 웃었지만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배움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안회가 스승 공자에 대해서 갖는 존경심이 그가 배움을 그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렇게 스승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바로 실천하는 안회를 공자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안회를 유독 사랑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 때문이 아닐까?
세상 둘도 없는 사이 좋은 스승과 제자.
3,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
이러한 공자의 안회에 대한 사랑은 『논어』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안회에 대해서 묻는 장면이 그러하다.
"공자께서 자공에게 물으셨다. 너와 안회는 누가 더 나으냐? 자공이 대답하기를 제가 어찌 감히 안회와 견주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안회만 못하지 나도 네가 그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子謂子貢曰女與回也 孰愈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 聞一以知十 賜也 聞一以知二 子曰 弗如也 吾與女 弗如也.
『논어』, 「공야장」중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제자인 자공에게 너무한 질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공이 비슷한 연배인 안회에 대해서 스승이 물었을 때 안회에 대해서 망설임 없이 그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안회는 당시 제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어떤 경지에 오른 면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자공의 말에 대해 공자의 대답은 다르게도 해석이 되는데 ‘나와 네가 모두 그만 못하다.’라고 읽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자는 안회를 스승인 자기보다 낫다고 보는 측면도 있었나 보다.
대부분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관직에 나갔으나 안회는 관직에 나간 적이 없다. 그가 일찍 죽어서 관직에 나갈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관직에 나갈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평소 돈이나 물질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안회의 성품으로 미루어 관직에 딱히 연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안회를 호학자(好學者)라고 칭했다. 오랜 주유를 끝내고 공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정치적 이상을 제자들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의 가르침을 가장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는 안회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실현되기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회는 스승보다 일찍 죽고,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소리쳐 울었다.
‘공자스쿨’에서 배움이 단지 글을 읽고 외우는 것이 아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자인 안회, 『논어』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어눌하고 느리고 순종적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 잘하는 똘똘한 이미지가 없다. 그러나 공자가 자기의 가르침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를 다 보여줌으로써 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안회 역시 자기의 배움을 자기의 실천으로 나타내고 있다. 배움은 말로 포착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자공이 안회에게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한 까닭이기도 하다.
글_진달래(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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