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점, 점진적으로 나아가라
풍산점은 산 위에 나무가 자라는 상이다. 제아무리 거목도 단번에 자라지 않는다. 어떤 나무라도 씨앗이 발아하고 싹이 트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면서 자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란다는 것은 봄의 기운을 타는 것이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새롭게 솟구치려면 단단하게 응축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과정도 거치지 않고 결과부터 내려고 달려들지만 그럴수록 삶은 공허해질 뿐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은 봐주는 법이 없다. 한 번 수렴해야 한 번 발산하는 운동성을 반복한다. 하루만 봐도 알 수 있다. 낮이 오면 어김없이 밤이 오지 않는가. 그러니까 화려해지고 싶다면 음지에서 묵묵히 훈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법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자라고 성장한다.
단단하게 응축하는 과정, 묵묵히 훈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자랄 수 있다.
송나라 대문장가 구양수(歐陽脩, 1007년~1072년)가 있다. 구양수 또한 원래부터 대문장가는 아니었다. 구양수가 구양수가 된 이유는 늘 배움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원래 문장력을 타고났겠지만 늘 친구들에게 부족한 점을 배워서 문장을 다지고 또 다진다. 그런 과정이 풍산점괘와 닮았다. 점진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나아간다는 점에서. 풍산점괘를 통해 대문장가 구양수의 삶을 잠시나마 만나보려고 한다.
漸,女歸吉,利貞。
점은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길하니,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로우니라.
彖曰:漸之進也,女歸吉也。
단전에 이르길 점의 나아감이 여자가 시집가는 것의 길함이라.
進得位,往有功也。進以正,可以正邦也。
나아가서 位를 얻으니 가서 공이 있음이요, 나아감에 바름으로써 하니 가히 나라를 바루니
其位剛,得中也。止而巽,動不窮也。
그 위(位)는 강이 중(中)을 얻음이라. 그치고 공손하기 때문에 움직여서 궁하지 않음이라.
象曰:山上有木,漸;君子以居賢德,善俗。
상전에 이르길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점이니, 군자가 이로써 어진 덕에 거해서 풍속을 착하게 하느니라.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점괘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나아감을 왜 시집가는 것으로 보았을까. 여자가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첫 난관을 결혼으로 봤을 것이다. 새로운 관계로의 진입은 당연히 길하고 바르게 해야 이롭다. 풍산점괘의 효들은 모두 올바른 자리에 놓여 있다. 풍산점은 아래는 안정된 산이고 위에는 공손한 바람의 형상으로 어디를 가든 자리(位)를 얻고 공을 세우니 아무리 움직여도 궁하지 않다고 말한다.
풍산점의 형상은 아래는 안정된 산이있고, 위에는 공손한 바람이 부는 모습이다.
구양수는 문장으로 나아간 사람이다. 그의 문장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문장은 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구양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도의 문제였다. 도를 담겠다는 의지를 산처럼 세우고 밖으로는 공손한 바람처럼 배우고 또 배우면서 문장을 벼린다. 이런 구양수의 태도는 어느 자리를 가든 문장으로 공을 세우고 움직이니 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양수는 궁함을 피한 게 아니라 오히려 궁함을 글이 제련되는 기회로 삼기까지 한다.
初六 鴻漸于干,小子厲,有言,无咎。
초육은 기러기가 물가에 나아감이니, 소자가 위태해서 말이 있으나 허물이 없느니라.
象曰 小子之厲,義无咎也。
상전에 이르길 소자지려나 의리가 허물이 없느니라.
기러기는 물가에 있지만,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물가에 있는 기러기는 아직 어리고 맨 뒤에 쳐진 것이 위태로워서 울지만 나아가고 있으니 허물이 없다고 보았다. 구양수는 당나라 문장가 한유를 흠모하면서 자신의 문장 또한 도를 향한 문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는 한유의 문장을 연마하여 두 번의 과거시험에 도전하지만 모두 낙방한다. 그 당시 한유의 문장으로는 과거시험에 합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구양수는 일찍 아버지를 잃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낙방은 구양수를 울게 했을 것이다. 그는 결심한다. 우선 과거에 급제하는 게 급선무이다. 그다음에 도를 향한 문장을 쓰면 되지 않는가. 그는 당시 기교중심의 문장인 시문으로 과거에 합격하지만 합격 후 초심을 잃지 않고 한유 정신을 잇는 도를 담은 문장에 주력한다.
구양수는 당나라 문장가 한유의 문장을 연마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六二 鴻漸于磐,飲食衎衎,吉。
육이는 기러기가 반석에 나아감이라, 마시고 먹는 것이 즐겁고 즐거우니 길하니라.
象曰 飲食衎衎,不素飽也。
상전에 이르길 식음간간은 공연히 배부르려 하지 아니함이라.
물가에 있는 기러기가 반석에 올랐다. 편안하게 나아가면서 동료들을 불러들이니 즐겁고 즐거우니 길하다. 상전에서는 음식이 즐겁고 즐겁다는 것은 공연히 배부르게 한 것이 아니라 반석에 올랐기 때문에 즐겁고 즐거우니 길하다고 말한다.
구양수의 문장은 그냥 써진 것이 아니다. 친구 매요신과 윤수와 교류하며 서로 문장을 나누고 우정을 돈독히 해서다. 구양수의 배움의 자세 때문인지 그를 넘게 해줄 친구들이 늘 함께했다. 구양수 문장의 변곡점이 되게 한 절친은 윤수이다. 청년 시절 구양수는 문장이 간결하지는 못했는데 윤수의 조언으로 최소의 글자로 원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쾌거를 이룬다. 기러기가 하늘로 나아가듯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한 친구들과의 만남은 즐겁고 즐거우니 길한 것이다.
구양수의 문장은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한 친구들과 함께 갔다.
九三 鴻漸于陸,夫征不復,婦孕不育,凶;利御寇。
구삼은 기러기가 뭍(陸)에 나아감이니, 지아비가 가면 돌아오지 못하고 지어미가 애를 배더라도 기르지 못하여 흉하니, 도적을 막는 것이 이로우니라.
象曰 夫征不復,離群丑也。婦孕不育,失其道也。利用御寇,順相保也。
상전에 이르길 夫征不復은 무리를 떠나서 추한 것이요, 婦孕不育은 그 도를 잃음이요, 利用御寇는 순하게 서로 도움이라.
기러기는 하늘로 날아야 하는 데 뭍으로 나아가니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다. 이것을 구삼이 짝도 아닌 육사를 탐내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고 본 것이다. 구삼 남자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육사 여자는 임신을 하지만 기르지 못하기 때문에 흉하다. 이렇게 흉하니 도적을 막는 것처럼 흉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구양수는 정치적 동지 범중엄과 신정 개혁의 주역이 되었다. 신정은 관리의 승진과 강등 제도와 군비 개선, 노역 경감, 교육 등 전 방위적으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귀족 관료와 대지주 층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그들은 구양수 측근들을 붕당으로 몰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때 구양수는 붕당을 부정하기는커녕 붕당이 맞는다고 긍정한다. 그리고 말한다. 붕당은 군자가 도의를 같이하는 자들의 모임이라는 것. 소인은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붕당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소인은 도의를 모른다. 매 순간 이익을 위해 관계를 구성할 뿐이다. 구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짝도 아닌 구사를 탐내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듯이. 도적이란 도의를 져버리고 이익에 치우치는 것이다. 사심이 솟구칠 때 도적을 막듯이 하라고 주역은 경고한다.
六四 鴻漸于木,或得其桷,无咎。
육사는 기러기가 나무에 나아감이니, 혹 그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或得其桷,順以巽也。
상전에 이르길 或得其桷은 순해서 써 공손하기 때문이라.
기러기가 나무로 나아갔으니 잘 나아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편안하게 앉을 수 있어서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기러기가 평평한 가지를 얻는다는 것은 사람이 순하고 공손하게 행동하면 마음이 편하고 아무 탈이 없다는 것이다.
기러기가 나아갈 곳은 어딘가?
구양수는 두 번의 좌천을 겪는다. 하지만 좌천은 백성들의 실상을 보는 계기가 되었고 스스로 절개를 굳건히 하는 등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기회로 삼는다. 첫 번째 폄적지 이능에서는 외롭고 쓸쓸한 정서가 느껴졌다. 하지만 두 번째 폄적을 당해 저주로 왔을 때는 새로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글을 쓴다.
구양수의 백미 취옹정기는 저주에서 쓰였는데 자신을 취옹으로 자처한다. 여기서 취옹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산수에 취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건과 하나 되는 능력을 지녔다. 기러기가 하늘이 아닌 나무에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나무를 평평하게 여기는 지혜를 구양수는 터득했으니 허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九五 鴻漸于陵,婦三歲不孕,終莫之勝,吉。
구오는 기러기가 언덕에 나아감이니, 지어미가 3년을 애 배지 못하나 마침내 이길 수 없는 지라, 길하리라.
象曰 終莫之勝吉 得所愿也。
상전에 이르길 ‘終莫之勝吉’은 원하는 바를 얻음이라.
구오는 하늘을 날아야 하는 기러기가 언덕으로 나아감은 편한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늘로 날기 마지막 단계이므로 언덕에서 좀 더 힘쓰면 마음껏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언덕만 넘으면 된다. 구오가 육이를 만나야 임신을 하는데 육사와 구삼의 방해로 육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정한 구오와 육이는 끝내 만나니 길하다는 것이다.
좋은 글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구양수가 친구 매요신의 시집 서문을 썼는데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자신이 쌓은 것은 많지만, 세상에 펼칠 길이 없는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 묘사하게 된다는 것. 마음에 울분이 쌓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묘사하게 되므로 곤궁하면 곤궁할수록 훌륭해진다는 것이다. 기러기는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언덕까지 왔다. 이제 언덕만 넘으면 된다. 구양수와 친구 매요신이 나아가기 위해 부딪힌 것은 곤궁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곤궁함에 절대 갇히지 않는다.
구양수의 글은 절대 곤궁함에 갇히지 않았다.
上九:鴻漸于逵,其羽可用為儀,吉。
상구는 기러기가 하늘에 나아감이니, 그 깃이 위의(모범)를 삼을 만하니 길하니라.
象曰 其羽可用為儀 吉 不可亂也。
상전에 이르길 其羽可用為儀은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라.
드디어 기러기가 하늘로 나아갔다. 물가에 있는 어린 기러기가 반석과 뭍과 나무와 언덕을 거쳐 하늘을 날게 된 것이다. 날기 위한 과정을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밟은 덕분에 날개를 쭉 펴고 위의를 보이면서 기세 좋게 날고 있다. 그 기세가 본받을 만하니 길한 것이다. 하늘에서 깃을 쭉 펴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질서정연하여 어지럽지가 않다.
기러기가 하늘로 나아가듯 마침내 구양수는 문장으로 자신을 펼친다. 어떤 한계가 오더라도 한계를 무화시키면서 도를 향한 뜻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관문인 곤궁함조차 자신의 한계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 구양수에게 곤궁이란 결핍이나 불우함이 아니라 하늘을 날게 하는 동력이었다. 그는 곤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펼친다.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곤궁한 사람이 된 다음에 시가 훌륭해지는 모양이다.’라고. 다른 시선의 창조. 도를 향한 문장을 쓰겠다는 구양수의 마음이 통념을 벗어나 곤궁함의 본래 면목을 보게 하는 것 같다.
풍산점, 나아가고 자란다는 괘이다. 나에게 주어진 한계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일 때 그때마다 경험은 나를 나아가게 한다. 매 순간 새로운 존재의 탄생. 이것이 풍산점의 나아감인 것이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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