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것’과 ‘다스림’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화풍정-
오늘 살펴볼 화풍정은 어떤 괘일까? 「서괘전」을 먼저 살펴보자. 「서괘전」은 64괘의 순서를 설명한다는 뜻이다.
井道 不可不革 故 受之以革 革物者 莫若鼎 故 受之以鼎
(정도 불가불혁 고 수지이혁 혁물자 막약정 고 수지이정)
우물의 도는 가히 바꾸지 않을 수 없음이다. 그러므로 혁괘로 받았고, 사물을 바꿈은 솥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괘로 받았고…
井(정)은 ‘수풍정’괘를 뜻한다. 우물의 도는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변혁의 때인 ‘택화혁’괘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을 바꾸는 데는 鼎(정)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화풍정(火風鼎)’으로 그 뜻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鼎’이 대체 뭐길래 사물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봉선서』에는 오제 중의 한 명인 “황제가 정(鼎)을 만들어 완성되자 수염을 늘어뜨린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황제를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라고 나온다. 『중국신화전설』에서는 우임금이 천자가 된 후 구주(九州)의 금속을 모아 보정(寶鼎)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임금이 만든 보정(寶鼎)은 어떤 것이었을까?
‘鼎’은 다리가 셋 달리고 손잡이가 두 개 있는 솥이다. 우임금이 만든 보정은 9만 명이 있어야 겨우 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우임금은 솥에 구주에 있는 요괴, 짐승들의 모습을 새기도록 했다. 그리고 길에 이 솥단지를 내놓고 사람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행을 갈 때 솥에 새겨진 것들을 조심하라는 일종의 여행 가이드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주나라 때부터 궁궐 안의 보물이 된다. 이제 이 솥은 아무나 볼 수 없었다. 오직 천자만이 솥을 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었다. 몇몇 제후들이 이 솥단지를 갖고자 했는데, 진시황제의 증조할아버지인 소양왕이 옮기다 1개를 잃어버렸고, 그 후에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1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처럼 ‘鼎’은 여행 가이드북이었으며,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고, 요리를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화풍정 괘사
鼎 元亨 (정 원형)
정은 크게 형통하니라
彖曰 鼎 象也 以木巽火 亨飪也 (단왈 정 상야 이목손화 팽임야)
단에 이르길 정은 象이니 나무로써 불을 지펴 음식을 삶으니
聖人 亨 以享上帝 而大亨 以養聖賢 (성인 팽 이향상제 이대팽 이양성현)
성인이 삶아서 상제에게 제사 올리고 크게 삶아서 성현을 기른다
巽而耳目 聰明 柔進而上行 得中而應乎剛 (손이이목 총명 유진이상행 득중이응호강)
겸손하고 귀와 눈이 밝으며 부드러움이 나아가 위로 가고 中을 얻어 강함에 응함이라
是以元亨 (시이원형)
이로써 크게 형통하니라
象曰 木上有火 鼎 君子以 正位 凝命 (상왈 목상유화 정 군자이 정위 응명)
상에 이르길 나무 위에 불이 있는 것이 정이니 군자가 이로써 자리를 바르게 하여 命에 응집되나니라
정괘는 솥단지의 모습에서 취한 뜻이다. 화풍정은 상괘가 리괘, 하괘가 손괘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아래에 있는 초효는 음효이다. 이는 솥의 다리를 의미하고, 구이-구삼-구사의 양효는 솥의 몸통을 의미한다. 육오는 솥의 귀를 뜻하고, 맨 위의 상구는 손잡이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하괘인 巽(손)은 오행 상으로는 木(목)이고 상괘인 離(리)는 오행 상으로 火(화)이다. 마치 땔감을 넣어 불을 지피는 형국인 셈이다. 이렇게 솥에 음식을 삶는 요리의 과정으로 괘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화풍정’이다.
여기서 ‘亨’이 재미있다. 형통하다는 의미일 때는 ‘형’이라고 읽지만, 삶는다는 뜻으로 쓸 때는 ‘팽’이라고 읽는다. 烹(팽)과 통용되는데, 제사를 흠향한다고 할 때의 ‘享’(향)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살아가는 데 밥은 중요하다는 걸 말해 무엇하랴.
괘의 모양도 솥이다. 아래에서 나무를 넣어 불을 때고 있는 형상이다. 도구가 준비되었으니 이제 그 안에 음식을 넣을 때다. 쌀을 넣고 밥을 하려고 하면 얼마나 넣을지, 얼마나 조리해야할지 잘 가늠해야 한다. 이렇게 가늠하는 것을 巽而耳目 聰明(손이이목 총명)으로 보았다. 木의 기운은 겸손하게 따르는 것을, 火의 기운은 밝은 것을 뜻한다.
음기운이 위로 오른다는 것은 연기가 위로 끓어올라 음식물을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많이 올라가지도 않고 딱 5효까지만 올라와 中을 얻었기에, 설지도 않고 타지도 않은 적당한 밥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 지은 밥을 상제에게 감사의 의미로 먼저 올린다. 그리고 사람을 크게 삶아 성현을 기른다고 했다. 여기에서 ‘삶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로써 크게 형통하다는 것이다.
화풍정 효사
初六 鼎顚趾 利出否 得妾 以其子无咎 (초육 정전지 이출비 득첩 이기자무구)
초육은 솥의 다리가 넘어졌으나 나쁜 것을 내놓는 것이 이로우니 첩을 얻으면 그 자식으로써 허물이 없어지리라
象曰 鼎顚趾 未悖也 利出否 以從貴也 (상왈 정전지 미패야 이출비 이종귀야)
상에 이르길 ‘솥의 다리가 넘어졌으나’ 법도에 거스르지 아니함이오, ‘나쁜 것을 내놓는 것이 이로운 것’은 귀함을 따름이라.
초육은 솥의 다리이다. 다리가 위로 올라가게 확 뒤집힌 상황[鼎顚趾]이다. 아직 음식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음식을 하려고 솥을 엎어놓은 것이다. 솥에 있던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낸[利出否] 다음 밥을 짓는다. 그다음 새로운 쌀을 넣고[得妾] 불을 지피면 잘 익어서 밥이 나오니[其子] 허물이 없다.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吉 (구이 정유실 아구 유질 불아능즉 길)
구이는 솥에 실물이 있으나 내 원수가 병이 있으니 내가 능히 나아가지 아니하면 길하리라
象曰 鼎有實 愼所之也 我仇有疾 終无尤也 (상왈 정유실 신소지야 아구유질 종무구야)
상에 말하길 ‘솥에 실물이 있으나’ 삼가여 가는 바니, ‘내 원수가 병이 있는 것’은 마침내 허물이 없어지리라
구이에는 음식물이 들어있다. 그래서 陽(양)으로 實(실)하게 차있다고 했다. 구이는 하괘에서 가운데 자리를 얻었고, 육오와 응한다. 그렇기에 음식이 보글보글 끓어 음식이 잘 익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구이의 바로 아래, 음효인 초육이 있다. 가까운 곳에 음효가 있다 보니 시선이 육오를 향하지 않고 아래에 쏠리기 쉽다. 만약 구이가 초육과 만나게 되면 음식이 잘 익지 않기 때문에 구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자꾸 달라붙는 초육이 원수가 되는 것이다.
밥을 짓기 위해서는 솥에 넣을 쌀이 필요하다.
구이는 육오가 병에 걸린 것처럼 매달리더라도 그쪽으로 가지 않고, 갈 바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 구이는 자신과 짝이 되는 육오에게 가야 허물이 없다.
九三 鼎耳 革 其行 塞 稚膏 不食 (구삼 정이 혁 기행 색 치고 불식)
구삼은 솥의 귀가 바뀌어 그 행함이 막혀 꿩의 기름을 먹지 못하나
方雨 虧悔終吉 (방우 유회 종길)
바야흐로 비가 내려 이지러진 후회가 마침내 길하게 되리라
象曰 鼎耳 革 失其義也 (상왈 정이 혁 실기의야)
상에서 말하길 ‘솥의 귀가 바뀌는 것’은 그 뜻을 잃기 때문이다
구삼의 상황을 보자. 솥의 귀가 바뀌었다는 게 뭘까? 정괘에서 솥귀는 육오의 자리이다. 육오는 군주이니 ‘솥의 귀가 바뀌었다’는 것은 왕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새로운 왕은 아직 구삼을 알아보지 못하니 등용되지 못한다. 그래서 구삼이 육오의 녹, 꿩의 기름을 먹지 못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구삼은 양으로서 양의 자리에 있고, 현명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니 결국 새로운 왕이 그를 알아보고 등용하게 된다. 여기서 ‘바야흐로 비가 내린다’는 것은 육오가 구삼에게 오게 됨을 이야기한다. 『주역』에서는 양과 음이 만날 때 ‘비가 만난다’는 표현을 쓴다. ‘수풍정’괘의 구삼과 비슷하다. 수풍정의 구삼도 깨끗한 우물인데, 처음에는 왕이 알아보지 못하다가 나중에 등용되니 후회가 없어지고 길하게 된다고 하였다.
솥의 귀가 바뀌고, 바야흐로 비가 내린다.
九四 鼎折足 覆公餗 其形 渥 凶 (구사 정 절족 복공속 기형 악 흉)
구사는 솥이 다리가 끊어져 공의 밥을 엎으니 그 얼굴이 젖음이라 흉하도다
象曰 覆公餗 信如何也 (상왈 복공속 신여하야 )
상에 말하길 ‘공의 밥을 엎으니’ 믿음이 어떠한고
초육에서도 솥을 엎었고, 구사에서도 솥이 엎어진다. 비슷해 보이지만 펼쳐지는 상황은 너무 다르다. 초육에서는 솥을 씻기 위해 뒤집었던 것이다. 구사가 육오에게 바칠 밥을 초육에게 지으라고 시켰다. (구사는 초육과 짝이기에 둘은 응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초육은 약하고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밥이 들어있는 솥을 엎어버리고 만다. 구사는 육오가 저지른 사태를 뒷감당 해야 한다. 육오에게 바칠 밥이 없으니 구사가 두려움에 떨다 얼굴이 땀으로 줄줄 젖는 상황, 그래서 흉하다. 어쨌거나 구사는 밥을 바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육오의 신뢰를 잃게 된다.
六五 鼎黃耳金鉉 利貞 (육오 정황이금현 이정)
육오는 솥에 누런 솥귀와 솥 쇠고리이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
象曰 鼎黃耳 中以爲實也 (상활 정황이 중이위실야)
상에 이르길 ‘솥에 누런 솥귀와 솥 쇠고리’는 중으로써 實을 함이라
육오가 중앙의 자리를 얻었다. 황색은 중앙이자 천자의 상징이기 때문에 솥의 귀가 누렇다고 하였다. 밥을 하면 처음에 넣은 쌀의 양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 그것처럼 육오의 자리도 처음엔 비어있지만, 밥이 익으면서 육오의 자리까지 차오른다. 이것을 ‘實(실)’이라 본다.
쌀이 잘 익어 실한 밥이 되다.
上九 鼎玉鉉 大吉 无不利 (상구 정옥현 대길 무불리)
상구는 솥에 옥고리이니 크게 길해서 이롭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象曰 玉鉉在上 剛柔 節也 (상왈 옥현재상 강유 절야)
상에 이르길 ‘솥의 옥고리’는 강과 유가 조절했기 때문이다
이제 밥이 다 됐다. 불 위에서 솥을 옮겨야 한다. 그때 잡아야 하는 것이 솥 고리이다. 여기서는 솥 고리를 ‘옥’이라고 표현했다. 金(금)은 그냥 단단하기만 한데, 玉은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을 겸한 것이다. 상구의 자리는 본래 음의 자리이나 음의 자리에 양이 있으니, 강하고 부드러운 것이 함께 있다고 보았다. 밥을 먹게 되니 길하고, 정치를 잘하니 모든 백성이 배불리 먹게 된다. 그래서 크게 길하고 만사가 이롭게 된 것이다.
위에서도 얘기했듯, 정의 다리는 세 개다. 이 균형이 잘 맞아야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다. 그것처럼 솥 안에 있는 밥이 잘 익으려면 쌀과 물과 불, 세 요소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불이 너무 세면 밥이 타고, 불이 너무 약하면 밥이 설익기 때문이다. 잘 지은 밥은 함께 먹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또, 정치에서 필요한 자리에 적절한 사람이 있으면 나라가 평안하다. 밥 짓는 방법으로도 나랏일을 다스리는 지혜를 알 수 있다니, 『주역』은 정말 생활밀착형(!) 고전이다.
글_만수(감이당)
'출발! 인문의역학! ▽ > 주역서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진적으로 나아가라 - 풍산점 (2) | 2015.10.22 |
---|---|
욕망의 그침 - 중산간 (3) | 2015.10.08 |
천지가 토해내는 사자후 - 중뢰진 (2) | 2015.09.24 |
혁명의 계절에 듣는 주역의 지혜 - 택화혁 (0) | 2015.08.27 |
더운 여름날을 식혀줄 차갑고 시원한 우물의 지혜 - 수풍정 (0) | 2015.08.13 |
험난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지혜 - 택수곤 (0) | 2015.07.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