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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우리 시대의 자화상 - 뇌화풍

by 북드라망 2015. 11. 19.


우리 시대의 자화상, 뇌화풍 



뇌화풍에 대처하는 제왕의 자세 


<주역>의 55번째 괘는 뇌화풍이다. 뇌화풍은 모든 것이 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귀매괘의 다음에 오며 ‘풍성하다’, ‘풍만하다’라는 뜻이 있다. 모든 것이 한곳에 모이니 풍성할 수밖에. 그래서 괘명도 ‘풍년 풍(豊)’을 써서 뇌화풍인 것이다. 뇌화풍의 핵심 문장인 괘사에서는 뇌화풍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豊은 亨하니 王이아 假之하나니 勿憂홀전 宜日中이니라.

(풍은 형하니 왕이아 격지하나니 물우홀전 의일중이니라.)

풍은 형통하니, 왕이어야 지극히 하나니, 근심치 않으면 마땅히 해가 가운데 하니라(한낮이니라).


지극할 격(假), 마땅 의(宜)


만물이 모여들어 풍성한 뇌화풍을 형통하다고 한다. 한데 아무나 뇌화풍의 시기를 다스릴 수는 없다. 제왕의 지위 정도는 되어야 뇌화풍을 제어할 힘이 있다. 해가 중천에서 온 천하를 밝게 비추듯이 강건한 제왕이 바른 정치를 해야 풍성한 것을 더욱 윤택하게 다스릴 수 있다. 괘사가 아리송하다면 괘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공자의 「단전」과 「상전」을 보도록 하자.


彖曰 豊은 大也니 明以動이라 故로 豊이니

(단왈 풍은 대야니 명이동이라 고로 풍이니)

단전에 이르길 풍은 큰 것이니, 밝음으로써 움직임이라. 그러므로 풍이니

王假之는 尙大也오 勿憂宜日中은 宜照天下也.

(왕격지는 상대야오 물우의일중은 의조천하야)

왕격지는 큰 것을 숭상함이요(숭상함이 큰 것이요), 물우의일중은 마땅히 천하를 비침이라.

日中則昃하며 月盈則食하나니 天地盈虛도 與時消息이온

(일중즉측하며 월영즉식하나니 천지영허도 여시소식이온)

해가 가운데 하면 기울어지며 달이 차면 먹나니, 천지가 차고 빔도 때가 더불어 줄고 부는데, 

而況於人乎며 況於鬼神乎여.

(이황어인호며 황어귀신호여)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이랴.


기울 측(昃) 찰 영(盈) 줄 소(消) 불을 식(息)



만물로 풍성한 괘, 뇌화풍



만물로 풍성한 뇌화풍의 형세를 공자는 크다고 말한다(大也). 이어서 괘의 구조를 설명하며 뇌화풍을 풀이한다. 아래에 있는 내괘(內掛)는 가운데가 비어 있는 이허중 불괘(☲)로 밝고(明), 위에 있는 외괘(外掛)는 아래가 붙어 있는 진하련 우레괘(☳)로 움직인다(動). (이허중-불-밝다 / 진하련-우레-움직인다 <- 이건 <주역>에서 일종의 공식과 같은 것이므로 외워야 한다. 조금 더 알아보려면 아래 표를 참고하시라)



 괘/이름

 괘의 모양

 뜻

 ☲(리괘)

 이허중(离虛中) : 보다시피 세 개의 작대기 중에서 가운데 것이 음(⚋)으로 틈이 있다. 이것을 ‘비었다(허:虛)라고 표현한 것이다. 정리하면, 이(리)괘의 가운데가 비었다는 뜻에서 이허중이라고 한다. 

 리괘는 불괘이므로 ‘밝다’는 뜻이 있다.

 ☳(진괘)

 진하련(震下連) : 보다시피 세 개의 작대기 중에서 가장 아랫것, 그러니까 양(⚊)만 붙어 있다. 정리하면, 진괘의 아랫부분만 연결되어 있다는 뜻에서 진하련이라고 한다.

 진하련은 우레는 뜻하는데 우레는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므로 ‘움직인다’는 뜻이 있다. 



고로 뇌화풍은 밝은 것이 움직이므로 성대한 형상이다. 기운이 너무 성한 탓에 제왕이라도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다. 자칫 풍성한 것 현혹되거나 성대한 기운에 짓눌려서 정사를 그르칠 수도 있다. 그런 근심을 하지 않으려면 창공의 태양이 천하를 비추는 것처럼 명명백백한 정치를 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성대한 시기에 마땅히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주역>을 보고 ‘복이 다하면 재앙이 오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것을 배웠다. 뇌화풍에서도 다르지 않다. 뇌화풍의 성한 기운도 때가 다하면 곤궁해지기 마련이다. 천지와 해와 달이 그것을 잘 보여주지 않는가. 하물며 인간이나 귀신이 이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천하를 비추는 명명백백한 정치를 행해야 한다.



象曰 雷電皆至 豊이니 君子 以하야 折獄致刑하나니라.

(상왈 뇌전개지 풍이니 군자 이하야 절옥치형하나니라.)

상전에 이르길 우레와 번개가 다 이르는 것이 풍이니, 군자가 이로써 옥을 끊고(판결하고) 형벌을 이루느니라.


이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주역>은 고대의 자연과학이다. 앞서 본 「단사」에서도 나오듯이 <주역>에서는 “일중즉측(日中則昃)하며 월영즉식(月盈則食)하나니 천지영허(天地盈虛)도 여시소식(與時消息)”하는 천지자연의 움직임을 보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유추했다. <주역> 64괘가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고 뇌화풍도 다르지 않다. 뇌화풍에서는 우레(진하련)와 번개(이허중 : 불빛이 번쩍하는 번개를 화火로 본다)가 치는 것을 보고 제왕의 도리를 강구했다. 하여 뇌화풍의 때가 되면 사람, 구체적으로 제왕은 번개의 섬광처럼 명백하게 죄인의 형량을 판단하고,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와 같이 위엄 있게 형벌을 집행해야 한다. 이때 재판과 형벌이 등장하는 이유는 시대가 풍요로워지면 그것을 노리는 죄인도 덩달아 많아지기 때문이다.



집중탐색! 뇌화풍의 여섯 얼굴


初九는 遇其配主호대 雖旬이나 无咎하니 往하면 有尙이리라.

(초구는 우기배주호대 수순이나 무구하니 왕하면 유상이리라.)

초구는 그 짝이 되는 주인을 만나되 비록 평등하게 하나 허물이 없으니, 가면 숭상함이 있으리라.


만날 우(遇) 열흘 순, 고를 순(旬)


초구는 정한 자리에 있으며, 짝은 구사이다. 음양의 원리가 담긴 <주역>은 곳곳에 음양이 배치되어 있다. 가령 가장 아랫자리인 1(초)효는 양, 2효는 음, 3효는 양, 4효는 음, 5효는 양, 6(상)효는 음이다. 여기서 각 효의 음양과 자리의 음양이 합치되면 정(正)하다고 한다. 뇌화풍의 경우 1(초)효가 양의 자리이고, 효도 양효(⚊:숫자로는 9로 표시)이므로 정(正)하다고 하는 것이다. 짝으로 말하면, 1(초)효는 4효와 짝이고, 2효는 5효와 짝이며, 3효는 6(상)효와 짝이다.



보통 <주역>에서는 아래에 있는 효보다 위에 있는 효의 지위가 높다고 본다. 고로 초구와 구사 두 짝꿍에게도 엄연히 지위의 차등이 존재한다. 한데 뇌풍항에서는 좀 다르다. 초구는 구사보다 지위는 낮지만 정한 자리에 있고, 구사는 초구보다 지위는 높지만, 양이 음의 자리에 있어 부정(不正)하다. 고로 여기서는 둘을 평등하다고 본다. 초구가 자신이 강한 것만 믿고 구사를 업신여기지 않으면 구사도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초구를 극진하게 숭상하고 대우한다.


象曰 雖旬无咎니 過旬이면 災也리라.

(상왈 수순무구니 과순이면 재야리라.)

상전에 이르길 수순무구니 평등함을 지나치면 재앙이리라.


한데 만약 초구가 구사를 업신여겨 평등한 관계가 어그러지면 심한 재앙을 받게 된다.


六二는 豊其蔀라 日中見斗니 往하면 得疑疾하리니 有孚發若하면 吉하리라.

(육이는 풍기부라 일중견두니 왕하면 득의질하리니 유부발약하면 길하리라.)

육이는 그 큰 포장이 (그 부에) 풍대함이라. 한낮에 두성을 보니 가면 의심의 병을 얻이리니, 믿음을 두어 발하면 길하리라.


큰 포장 부(蔀), 말 두(斗) 병 질(疾)


육이 또한 음(⚋ : 숫자로는 6으로 표시)이 음의 자리에 바르게 있다. 게다가 이허중 내괘의 가운데자리(中)에 있으니 더욱 좋다. 이것을 정중(正中)을 얻었다고 한다. 반면 짝인 육오도 음이므로 짝과의 음양은 부조화하다. 여섯 효를 지위로 구분하면 초구는 백성, 이효는 재야의 신하, 삼효는 외직 신하, 사효는 중앙 관료, 오효는 제왕, 육(상)효는 상왕이라고 본다. 한데 재야의 신하인 육이와 인군 육오가 서로 맞지 않아 몰라보는 것이다. 게다가 음효인 육오는 식견이 어둡고 몽매한 군주다.


이런 상황을 효사에서는 육이가 큰 포장에 둘러싸인 것으로 표현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두성이 보일 정도로 칠흑같이 어두운 포장 안에 갇힌 탓에 육오가 육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는 육오에게 발탁되려고 애쓰기보다 조용히 자신의 덕을 갈고 닦으며 때를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 괜히 나섰다가 의심을 받고 내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육오의 믿음을 얻어 발탁될 때까지 조용히 엎드려 있는 게 육이에게 합당한 포지션이다.



육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포장 안에 갇힌 육오를 알아보지 못한다.



九三은 豊其沛라. 日中見沬오 折其右肱이니 戊咎니라.

(구삼은 풍기패라. 일중견매오 절기우굉이니 무구니라.)

구삼은 그 깃발에 풍대함이라. 한낮에 매(작은별)를 봄이요. 그 오른팔을 끊으니 허물할 데 없느니라.


깃발 패(沛) 작은별 매(沬) 팔뚝 굉(肱)


구삼은 양이 양자리에 있는 정중한 효이다. 게다가 내괘의 끝에 있는 탓에 기운도 강성하다. 문제는 자신을 알아줄 만한 군주가 없는 불우한 시대를 타고났다는 것. 고로 포장보다 더 두껍고 어두운 큰 깃발에 갇혔다고 한 것이다. 얼마나 어두운지 두성보다 더 작은 매성이 보일 정도란다.(참... <주역>의 표현은 한편으로는 삼박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직설적이다)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오른팔마저 꺾여버린다. 기백에 제주까지 겸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서 구삼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九四는 豊其蔀라. 日中見斗니 遇其夷主하면 吉하리라.

(구사는 풍기부라 일중견두니 우기이주하면 길하리라.)

구사는 그 포장에 풍대함이라. 한 낮에 두를 봄이니, 그 평등한 주인을 만나면 길하리라.


구사의 사정도 구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이 음자리에 있어서 자리도 바르지 않고, 바로 위에 있는 육오 군주는 어둡다. 구이처럼 어두운 포장에 둘러싸여서 두성을 바라보는 처지인 것이다. 물론 구삼과 달리 구사에게는 솟아날 구멍이 있다. 자신의 짝인 초구를 만나러 가면 되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구사가 초구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이주(夷主)’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주란 ‘산의 언덕이 무너져서 평평해지는 것’을 말한다. 구사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초구에게 가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중앙 관료인 구사가 어두운 인군을 대신해 백성인 초구를 만나서 민심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산의 언덕이 무너져서 평평해지는 것을 '이주(夷主)'라고 한다.



六五는 來章이면 有慶譽하야 吉하리라.

(육오는 내장이면 유경예하야 길하리라.)

육오는 빛난 것을 오게 하면, 경사와 명예가 있어서 길하리라.


육오는 인군의 자리이지만 음이 양자리에 있어 부정하다. 그래서 어두운 인군이라고 한 것이다. 이 어두운 인군을 깨우쳐줘야 하는 건 전적으로 아래 효들의 임무다. 하여 ‘빛날 장’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육오와 짝인 육이의 임무가 막중하다. 현명한 육이가 때를 만나 인군 육오에게 발탁되면 육오 인군 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가 경사와 명예로 길하게 된다.


上六은 豊其屋하고 蔀其家라.

(상육 풍기옥하고 부기가라.)

상육은 그 집을 풍대히 하고 그 집을 덮음이라.

闚其戶하니 闃其无人하야 三歲라도 不覿이로소니 凶하니라. 

(규기소하니 격기무인하야 삼세라도 부적이로소니 흉하니라.)

그 집을 엿보니 고요해서 그 사람이 없어서 세 해라도 보지 못하니 흉하니라.


엿볼 규(闚) 지게 호(戶), 고요할 격(闃), 엿볼 적(覿)


상육은 풍대하고 기운이 성한 뇌화풍의 끝자리다. 보통 상육은 괘의 힘이 극단에 이르렀을 때다. 뇌하풍에서도 다르지 않다. 풍대하고 성한 기운이 극에 이른 탓에 흉하다. 효사에서는 집으로 그걸 설명하는데 상육은 과하다 싶을 만큼 크고 높은 집을 짓는다. 한데 그 집을 엿보니 그 큰 집에 사람은 없고 적막과 고요만 가득하다. 그러기를 삼 년, 흉가도 이런 흉가가 없다. 그러니 흉할 수밖에.


뇌화풍의 괘를 보면 꼭 성대하고 풍성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음양의 법칙상, 화려하고 풍요로운 시대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러고 보면 뇌화풍만큼 지금 우리 시대를 잘 설명해주는 괘도 없는 것 같다. 유사 이래 지금처럼 풍요로웠던 시절이 있었던가? 이전 시대 어떤 왕후장상도 지금의 우리만큼 누리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는 행복한가? 아니다 육이와 구삼, 구사 그리고 상육이 처한 상황을 우리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특히 상육이 짓는 장엄하고 거대하지만,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흉가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곳곳에 만연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 뇌화풍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그 답을 우리는 이미 얻었다.



글_곰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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