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가 시집가는 괘, 뇌택귀매
풍산점 다음 괘는 뇌택귀매(雷澤歸妹)다. 뇌는 우레고 택은 (연)못이니 연못 위에 우레가 치는 모습이다. 맑은 날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가 있다. ‘여우비’라고 부른다. 옛이야기에 따르면 여우가 시집가는 게 슬퍼 구름이 눈물을 뿌린 것이라고… 이런 현상은 대기 높은 곳에서 강한 돌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생긴다. 비구름은 먼 곳에 있지만 바람으로 인해 빗방울이 맑은 곳까지 날아오게 된 것이다. 뇌택귀매는 이처럼 하늘에서 바람이 불고, 연못이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연못 위에 우레가 치는 모습, 뇌택귀매
『서괘전』에서는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오는 바가 있기 때문에 점괘(풍산점) 다음에 귀매괘가 온다고 하였다. 歸(귀)는 시집간다는 뜻이고, 妹(매)는 손아래 누이라는 뜻이다. 풍산점괘에서도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주제로 설명했는데, 귀매괘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결혼 전 육예(六禮)라는 절차가 있었다. 먼저 중매인을 통해 혼인 의사를 밝힌다. 신부 측에서 결혼을 허락하면 기러기를 신랑 측에 선물로 보낸다. 그다음으로는 신부 집안 어른들의 이름과 관직, 재산 상황, 신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받은 후 신랑이 점을 쳤다. 이런 식으로 총 여섯 번의 절차를 차례로 지켜 결혼하는 것이 풍산점괘였고, 오늘 만날 뇌택귀매는 이와 같은 절차를 밟지 않는 혼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뇌택귀매 괘사
歸妹 征 凶 无攸利(귀매 정 흉 무유리)
귀매는 적극적으로 하면 흉하니 이로울 것이 없다
彖曰, 歸妹 天地之大義也(단왈 귀매 천지지대의야)
단전에서 말하길 귀매는 천지의 큰 이치이니
天地不交而萬物 不興 歸妹 人之終始也(천지불교이만물 불흥 귀매 인지종시야)
천지가 교제하지 않으면 만물이 흥기할 수 없으니 귀매는 사람의 끝과 시작이라
說以動 所歸 妹也(열이동 소귀 매야)
기뻐하면서 움직여 시집가는 것은 여동생이니
征凶 位不當也(정흉 위부당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흉한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오
无攸利 柔乘剛也(무유리 유승강야)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은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象曰, 澤上有雷 歸妹(상왈 택상유뇌 귀매)
상전에서 말하길 못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귀매이니
君子 以 永終 知敝(군자 이 영종 지폐)
군자는 이 이치를 살펴 길이 종결지어 그 폐단을 처리하니라
아래에 있는 태괘는 음(陰)이며 쾌활하다. 위에 있는 뇌괘는 양(陽)이며 동적이다. 우레가 쳐서 연못이 우레를 따라 움직이니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형상이고 이를 ‘귀매괘’로 본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귀매괘는 정식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결혼이다. 정식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당사자들끼리 눈이 맞은 연애결혼이기도 하고, 첩을 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풍산점은 정실의 일생, 뇌택귀매는 첩의 일생으로 보기도 한다.
단전에서는 남녀의 만남을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는 것으로 설명한다. 천지가 交(교)하지 않으면 만물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일에서는 혼인이다. 예전에는 결혼할 때 남자가 신부의 집으로 가서 직접 데려왔다. 친정에서의 인연이 끝나면 시집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므로 “歸妹(귀매)는 人之終始也(인지종시야)”라 한 것이다.
하지만 (혼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흉한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괘에는 정해진 음양의 자리가 있다. 맨 아래 효(초효)는 양이다. 두 번째 효는 음이고, 세 번째는 다시 양… 이렇게 6개의 효가 양-음-양-음-양-음의 순서로 되어 있다. 양의 자리에 양이 오거나 음의 자리에 음이 오면 자리에 맞다, 합당하다고 본다. 그런데 뇌택귀매는 첫 번째 효가 양, 두 번째 효가 양, 세 번째 효가 음, 네 번째 효가 양, 다섯 번째 효가 음, 여섯 번째 효가 음이다. 첫 번째와 여섯 번째 효만 자리의 음양이 맞고 나머지 네 개는 맞지 않은 상황. 그래서 정식절차를 밟지 않는 결혼이고, 이로울 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상전에서는 군자가 ‘위는 우레이고 아래는 연못’인 모습을 보고 “시집을 가야 할 사람이 가지 않을 때 나타나는 폐단”이 어떤 것인지 잘 살피라고 했다. 고대 중국 사유에서는 사람의 일과 천지의 일이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홀로 사는 사람이 많으면, 특히 과부가 많으면 천하에 음기가 가득해지고 이것이 기후나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들은 가장 먼저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인원을 파악했다. 환과고독은 홀로 사는 남녀, 아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관리들은 기후가 이상해지면(!) 음기가 천지에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단체 미팅과 합동 결혼을 추진하고 지원했다.
뇌택귀매 효사
初九, 歸妹以娣 跛能履 征 吉(초구 귀매이제 파능리 정 길)
초구는 측실로 누이를 시집보내니 절름발이처럼이라도 능히 걸을 수 있으니 가면 길하리라
象曰, 歸妹以娣 以恒也 跛能履吉 相承也(상왈 귀매이제 이항야 파능리길 상승야)
상전에 이르길 ‘귀매이제’이나 변치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파능리길’은 서로 뜻을 받들기 때문이다
초구는 언니를 따라 첩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다. 양의 자리에 양이 왔으니 현명하다. 정실은 아니지만, 정성껏 남편을 보필하니 이렇게 하면 다리에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걷는 것과 같아 길하다.
九二, 眇能視 利幽人之貞(구이 묘능시 이유인지정)
구이는 애꾸눈이라도 볼 수 있으니 숨어있는 선비가 참고 기다리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다
象曰, 利幽人之貞 未變常也(상왈 이유인지정 미변상야)
상전에서 말하길 ‘이유인지정’은 본마음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구이는 양으로서 중의 자리에 있으니 현명하다. 육오와 응하지만 육오는 구이와 어울리지 않는 짝이다. 그래서 구이가 육오에게 시집가는 것을 ‘눈이 하나 먼 사람이 멀리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다. 조용한 곳에서 기다리며 정도를 지켜야 이롭다.
六三, 歸妹以須 反歸以娣(육삼 귀매이수 반귀이제)
육삼은 여동생을 본처로 시집보내려고 하면 도리어 첩으로 시집보내게 된다
象曰, 歸妹以須 未當也(상왈 귀매이수 미당야)
상전에서 말하길 ‘귀매이수’는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육삼은 결혼 적령기를 놓친 여동생이다. 양의 자리에 음이 왔기에 바름을 잊었다. 육삼은 양을 무시하니 정실이 되려고 하면 도리어 첩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면 좋지 않다.
뇌택귀매에는 시집가는 누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九四, 歸妹愆期 遲歸 有時(구사 귀매건기 리귀 유시)
구사는 여동생을 시집보내는데 시기를 따지다 보면 늦어지게 된다
象曰, 愆期之志 有待而行也(상왈 건기지지 유대이행야)
상전에서 말하길 ‘건기지지’는 기다렸다가 시행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다
구사는 정숙하여 결혼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니 시기를 놓쳐 결혼이 많이 늦어졌다. 그러나 배필을 기다리면 결국 결혼할 수 있다. 너무 조건을 따지지 말고 적당히 추진해야 한다. 급하게 추진하려는 육삼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六五, 帝乙歸妹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 良(육오 제을귀매 기군지몌 불여기매지몌 량)
육오는 제을이 여동생을 시집보내니 부인의 옷소매가 첩 옷소매의 아름다움만 못하니
月幾望 吉(월기망 길)
달이 거의 찼더라도 길하리라
象曰, 帝乙歸妹 不如其娣之袂良也(상왈 제을귀매 불여기제지몌량야)
상전에 이르길 ‘제을귀매 불여기제지몌량야’는
其位在中 以貴行也(기위재중 이귀행야)
그 자리가 중심에 있어 귀한 신분으로 가기 때문이다
육오는 제을이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것이라 하였다. 제을은 하나라 왕인데, 여동생을 신하에게 시집보냈다. 당시에는 비슷한 집안끼리 결혼하는 것이 관례였기에 부인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부인이 더욱 겸손해야 한다. 그 표현을 옷소매로 한 것이다. 본처의 옷소매가 첩의 옷소매보다 더 소박해야 길하다. 달은 음을 상징하므로 대개 보름달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육오의 인품이 훌륭하므로 달이 가득 찼더라도 길하다고 하였다.
上六, 女 承筐无實 士 刲羊无血 无攸利(상육 여 승광무실 사 규양무혈 무유리)
상육은 여자가 광주리를 받아도 들어 있는 물건이 없고 신랑이 양을 잡아도 피가 없으니 이로울 바가 없다
象曰, 上六无實 承虛筐也(상왈 상육무실 승허광야)
상전에서 말하길 ‘상육무실’은 빈 광주리를 받아 들기 때문이다
상육은 광주리에 물건이 없고, 양을 잡아도 피가 없다고 하였다. 결혼할 때 여성들은 바구니에 대추와 밤을 받았다. 폐백을 할 때 어른들이 신부에게 던져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많은 후손을 보라는 축원인데, 바구니가 비었으니 좋지 않다. 또, 신랑은 동물을 잡아 천지에 제사를 올리는데, 피가 나오지 않으니 역시 좋지 않다. 그래서 부부가 되는 예식을 거행하기 힘들고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다고 한 것이다.
부부가 되는 예식을 거행하는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요즘 잠들기 전 샤론 모알렘의 『진화의 선물, 사랑의 작동원리』를 조금씩 읽는다. 왜 누군가에게 끌리고, 눈길이 가는지 궁금해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 사람들의 ‘냄새’에 반응한다. 이는 다른 면역체계를 알아보는 신체적(무의식적) 방법이다. 다른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을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들과의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뒤섞는데, 여기서 어떤 유전자가 발현될 것인지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은 왜 성욕을 느낄까? 이 책에 따르면 자연에는 두 가지 명령이 있다. 생존과 번식이다. 성욕(과 사랑) 역시 생명이 이어지도록 작동하는 자연의 힘이었다. 뇌택귀매도 이러한 음양의 항구한 이치, 음양교합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 이렇게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글_만수(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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